'중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억이 있다.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를 앞두고 벼락치기 공부 중이었다. 외울 게 많아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다가 참고서를 덮어버리고 창가로 가서 사람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집 앞을 오가는 이들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펴는 순간에는 답답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아유, 오늘 저녁은 뭐 먹을 거야?"
"있는 거 대충 먹지 뭐. 맨날 밥 해 먹는 게 일이야."
"깔깔깔깔"
이층 내 방 창 아래에 서너 명의 아주머니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갈림길에 위치한 상가주택이었는데 근방에 슈퍼, 정육점, 쌀가게 등이 있어서 저녁 무렵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찬거리를 사러 모여들곤 했다.
왁자한 웃음과 말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 저 밑바닥에 있던 정체 모를 감정이 불쑥 치솟아 올랐다. 그건 부러움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 아주머니들은 시험공부나 성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그저 저녁식탁만 신경 쓰면 되는구나.'
그날 내 눈엔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 환하게 웃고 있던 중년의 그들이 인생의 모든 숙제를 끝낸 사람의 여유, 즉 아직 내겐 허락되지 않은 달콤함을 누리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이라는 관문들을 다 건너뛰고 바로 나이를 먹어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나이 드는 걸 선호했던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당시 나는 마흔 이후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너무 오래 살 필요 없이 사십 대까지만 살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적도 있으니 참 철딱서니 없던 시절이었다.
나이 먹는 것에 양가감정을 가졌던 중학생은 어느덧 마흔 후반의 주부가 되었다. 어릴 때는 나이 들면 무슨 낙으로 사나 싶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느낄 수 있는 재미들이 있다.
요즘 건강을 위해 주 3~4회 만보 걷기를 하고 있는데 걸으면서 내게 흘러드는 풍경으로 인해 위로받는다. 철 따라 다양한 옷으로 갈아입는 나무들, 아침마다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인사하는 하늘, 포르르 바쁘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일부가 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이 년 전 시작한 글쓰기 덕분에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블로거에서 브런치 작가로, 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점점 활동의 장을 넓혀가고 있고,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가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나이 드는 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울할 일도 아니니 몸의 노화가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어떨까. 아마도 남편이랑 손잡고 슬렁슬렁 공원을 산책하거나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옆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나른한 잠 속으로 빠져드는 재미가 있겠지. 아니면 건강을 위해 운동, 식단 등을 관리하는 할머니 갓생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니 미래를 속단하지 않고 현재를 충실히 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나이별로 그 시기에 맞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겠지. 인생은 가보지 않은 길이고 내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는 각자의 선택과 마음자세에 달려 있다고 본다.
띠링! 휴대폰 알림음이 울린다.
"지금 지하철역 도착, 오늘 할머니네 빈대떡에 막걸리 어때?"
퇴근하는 남편이 보내온 문자이다. 비는 안 오지만 빈대떡에 막걸리라면 언제든지 오케이다. 조금 취한 알딸딸한 기분으로 선선한 밤공기를 쐬며 산책하는 것도 좋겠다. 어쩌면 남편은 노래방을 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좋다. 서둘러 옷을 걸쳐 입고 지갑을 들고 나선다. 편안한 즉석 동네 데이트, 중년의 부부에겐 이런 재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브런치와 블로그에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