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내놓은 판결에 모처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고등법원 행정 1-3부(이승한 심준보 김종호 부장판사)가 동성부부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다시 인정해 달라는 원고의 손을 들어준 그 판결이다(관련 기사 :
동성부부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 "역사적 판결"). 1년 전인 지난해 1월 7일, 1심 재판부가 판단한 내용과 180도 다른 내용이었다.
"차별대우 어째서 정당한가" 질문한 재판부... 답변 못한 건보
1심 재판부는 "이전 혼인법 질서에 반하는 사실혼을 원칙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며 동성부부가 국민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영역에서 대우받을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었다.
그러면서도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등 동성 동반자 제도를 둔 다른 국가들의 예를 언급하며 "원칙적으로는 국가 입법의 문제로, 구체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혼인의 의미를 동성간 결합까지 확대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동성부부를 위한 사회보장 적용 여부에 관한 판단을 입법 기관인 국회로 넘긴 셈이다(관련 기사 :
만난 지 10년차 된 날 부부에게 떨어진 선고 "혼인관계 아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장 제도의 뜻부터 다시 짚었다. 국민건강보험은 "국가의 체계적인 조정에 의해 국민 건강을 보장하는 사회보험"으로, "소득이나 재산 없이 피보험자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강보험 수급권을 인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여기에 피부양자 제도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해설했다.
결국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는 커플이라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피부양자 제도의 목적대로 사회보장을 받을 지위에 있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이성인지 동성인지만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건강보험공단이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동성관계인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대해 하는 차별 대우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두 집단을) 달리 취급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묻는 석명을 지난해 8월에 했음에도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결합 상대방이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다는 주장만 (건보공단 측은) 반복할 뿐, 차별 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해선 구체적 주장을 입증하지 않고 있고, 전체 변론을 종합해도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입법의 책임을 꺼내기 이전에 법원 스스로의 책무에 대한 입장을 내놨다. 재판부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판결문 마무리에 '추가로'라는 부사를 덧대 붙인 문장들은 정치권과 소셜미디어 상에서 화제로 떠올랐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모든 영역에서 "차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을 판결문을 통해 소개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추가로 어떠한 차별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관하여 간략하게 덧붙이고자 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 소수자들에 대한 명시적, 묵시적 차별이 존재해 왔음은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성적지향은 선택이 아닌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성격, 감정, 지능, 능력, 행위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영역의 평가에 있어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그에따라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기존의 차별들은 국제사회에서 점차 사라져가고있으며, 남아있는 차별들도 언젠가는 폐지될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에서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을 전형적인 평등권 침해 차별행위 유형 중 하나로 열거하는 등 사법적 관계에서조차도 성적 지향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으므로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할 것이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다.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자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것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