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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신문고 홈페이지
국민신문고 홈페이지 ⓒ 국민신문고

정확히 1년 전 일이다. 교육청 감사관실로부터 '국민 신문고'에 민원이 제기되었으니 소명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현직 교사로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비방하려는 목적의 기사를 썼다는 '죄목'이다. 기사의 내용이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졸업생들과 만나 정치적 의견을 나누고 그걸 공유하는 것조차 문제 삼는 게 치졸하고 황당했다. 태어나 첫 번째 투표권을 행사할 아이들이어서인지 그때 대화의 주제는 온통 대통령 선거 관련 내용뿐이었다. 양강구도였던 선거에서 여야 두 후보에 대한 품평이 이어졌다.

민원에 맞서기로 했다

민원의 내용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건, '아이들의 입을 빌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억측이었다. 요즘 열아홉 살 아이들을 '무뇌아'처럼 여기는 망언이다. 그들 중엔 정치 유튜브를 섭렵해 시사평론가 뺨치는 아이도 있고, 미래 정치인을 꿈꾸는 아이도 있다.

그렇다고 일개 교사가 추상 같은 교육청의 지시를 거부하긴 힘들다. 어떻게든 소명해야 했다. 동료 교사들은 농담 반 진담 반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며 조언했지만, 교사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당당히 맞서기로 작정하고 이렇게 적어 보냈다.

"정치를 주제로 한 아이들과의 대화조차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한다면, 그들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그 어떤 것에도 휘말리지 않는 '안전'을 생각한다면, 대화의 주제는 연예인들의 근황과 TV의 예능 프로그램밖에 없을 듯하다. 아니 그조차 위험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내용을 두고도 우리나라 정치판을 마구 '씹어대는' 아이가 있었으니,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떠올리며 나서서 자제시켜야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민원인은 만약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한 인사 조처가 미흡하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는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 그보다 앞서 하위법인 국가공무원법이 상위법인 헌법의 정신을 조롱하고, 아이들과 정치와 시사에 관한 대화는 나누지 못하도록 교사를 겁박하는 현실을 보며 과연 지금이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는지부터 공론화하고 싶다."


아울러, 교사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고자 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는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이 언제, 또 왜 만들어졌는지도 소명서에 덧붙였다. 민원인은커녕 교육청조차 법 제정의 취지를 간과하는 듯했다. 알았다면 무조건 소명하라고 채근하지는 않았을 테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 2항에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정치적 중립'이라는 단어 뒤에 '의무'라는 말을 떠올리지만, '보장된다'고 명시한 헌법 정신은 '권리'에 가깝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는 해당 헌법 조항이 제정된 시기와 취지를 따져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 동원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제정됐다. 공무원들이 권력자의 지시나 외압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활동을 하게 되는 걸 막기 위한 보호장치인 셈이다.

명명백백 '권리'였던 헌법 조항이 느닷없이 '의무'처럼 여겨지게 된 건, 하위법인 국가공무원법 제65조 2항 때문이다. 조항 말미에 적시된 '아니된다'는 글귀가 공무원들을 철저히 주눅 들도록 했다. 하위법인 국가공무원법과 시행령이 상위법인 헌법의 정신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격이다.

참고로, 국가공무원법 제65조 2항에는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돼 있다. 다음의 행위란,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서명 운동을 기도 또는 주재하거나 권유하는 것,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기부금을 모집 또는 모집하게 하거나 공공자금을 이용 또는 이용하게 하는 것, 타인에게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에 가입하게 하거나 가입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이라 열거돼 있다.

나름 '장기전'을 각오하고 교육청에 '버르장머리 없는' 소명서를 제출했지만, 이후 별다른 제재는 받지 않았다. 입막음 용도의 민원이었던 걸까. 그로부터 한 달 뒤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고, 더는 트집을 잡지 않았다.

1년 전 기억이 떠오른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출석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출석해 있다. ⓒ 남소연

갑자기 1년 전의 씁쓸했던 기억이 떠오른 건, 국회의원에 대한 불체포 특권 관련 기사가 연일 모든 언론을 도배하고 있어서다. 야당 대표를 겨냥한 체포동의안의 가결과 부결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 모두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몰되어 민생 문제는 내팽개친 채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형국이다.

여당은 '방탄 국회'라고 비난하고, 야당은 '정치 보복'이라고 맞서며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의 가결 여부와 상관없이 국회의 정상화는 당분간 난망한 상황이다. 극단적으로 갈린 여론까지 가세하며 '치킨 게임'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여야가 더 세게 치받을수록 불체포 특권에 대한 여론의 맹목적인 반감이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국민 다수가 헌법상 불체포 특권을 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쯤으로 여기고 있다. 야당 내부에서조차 당당히 수사를 받으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불체포 특권은 '적폐'로 취급받는 모양새다.

선거제도 개혁에는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지만,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압도적인 것도 불체포 특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여야의 상호 비방과 사생결단식 갈등이 정치 혐오를 부추기면서,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의 권능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불체포 특권은 이미 바람 앞에 촛불 신세다.

불체포 특권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과 닮았다. 호명되는 이름의 맨 뒤에 각각 권리와 의무를 달고 있지만, 둘 다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 제정된 법적 장치라는 점에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정권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서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도화됐다.

우리나라에선 1948년 제헌 헌법 제49조에 처음 규정된 이후 아홉 차례나 헌법이 개정됐지만 불체포 특권은 손대지 않았다. 1960년 내각제로의 개헌 이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과 석방 요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을 따름이다. 국회가 '통법부'라고 조롱받던 유신 정권에서조차 삼권분립이라는 대원칙에 부합하는 권리임을 인정한 셈이다.

제헌 헌법과 함께 시작된 대의민주주의를 위한 헌법상 권리가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건 정치인들이 자초한 일이다. 물론, 정치인 개개인에게 해될 건 없었다. 국민의 정치 혐오가 심해질수록 선거판은 지역감정에 기댄 양당 토호들의 '놀이터'로 전락해갔다. 오죽하면 정경유착의 한 축인 재벌까지 나서서 '경제는 이류, 정치는 삼류'라고 조롱했을까.

안타깝지만, 이마저도 닮았다. 정치 혐오가 불체포 특권이라는 국회의원의 헌법상 권리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듯, 우리 교육에 대한 불신이 보장받아야 할 교사의 '권리'였던 교육의 정치적 중립 규정을 지켜야 할 '의무'인 양 오해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가타부타 군소리 말고 정부가 하달한 지침을 충실히 이행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면 교사가 훈장을 받는 시대가 됐다.

교육청에 소명서를 제출하면서 정작 참담했던 건 따로 있다. "무탈하게 정년퇴직하려면 입 닫고 귀 막은 채 지내는 게 상수"라던 동료 교사들의 움츠린 모습이다. 교사의 교육 행위를 사사건건 옥좨온 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의 '목적'이 정권의 바람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작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불체포 특권이든,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이든, 법 제정의 근본적인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맹목적인 불신과 혐오만 난무하고 있다. 하긴 노조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헌법상 권리인 노동삼권마저 부정하는 현 정권의 비정함과 강퍅함을 보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불체포 특권#교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정치 혐오#헌법 정신#선거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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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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