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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기자말]
[이전기사] 매주 월요일, 자신의 이름 적힌 '관' 끄는 사람들 https://omn.kr/22urv
 
 황분희씨가 피켓을 든 채 상여시위를 하고 있다
황분희씨가 피켓을 든 채 상여시위를 하고 있다 ⓒ 김우창

그동안 핵발전소 인접 마을에 사는 주민에 관한 연구, 기사, 보고서들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보통은 주민들이 어떻게 싸우고 투쟁해왔는지, 즉 '싸우는 사람, 비판하는 사람'에 주목하여 가장 극적인 장면과 모습들만이 알려져 왔다.

연구하고 글을 쓰는 나도 '싸우는 황분희'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다,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으로서 기자회견에 가고, 상여시위에 참여하고, 마이크를 잡고 핵발전소 문제를 비판하고 이주를 요구하는 황분희, 그러나, 일상에서 황분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주대책위 부위원장이 아니라, (소)농부로서, 엄마로서, 할머니로서, 황분희로서 그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또 그의 일상에서 핵발전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쩌면, 이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 황분희씨에게 가장 듣고 싶고, 보고 싶었던 것이 그의 일상과 핵발전소가 어떻게 교차하는지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핵발전소에 인접한 마을에 사는 주민이 아니기에, 그들이 평소에 느끼는 것들, 일상 속 핵발전소에 대해 경험할 기회가 없으니까.

가족들은 그가 하는 다양한 활동, 시위를 잘 알고 있을까? 민감할 수도 있지만, 가족들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알지, 대충은 알지. 가끔 서울로 기자회견 하러 가면, 손녀가 응원한다고 말해주기도 해"라고 말했다. 이어 황분희씨는 신이 나 다음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년에, 유학 중인 손자가 나한테 연락을 한 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돼서 물어봤더니, 자기가 수업 시간에 가족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기 할머니는 인터뷰에 검색하면 나온다고, 가족을 위해 힘들게 싸우고 있는 할머니가 자랑스럽다고, 수업에서 발표를 했대."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나아리에서 태어나서 함께 살았던 손주(현재 초등학교 6)가 다섯 살일 때 <추적 60분> 등에서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손주의 몸에서 성인에 필적하는 삼중수소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가족들과는 활동만이 아니라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에 대해 얘기 잘 안 해, 못 하지. 아저씨랑은 하는데, 자식들한테 안 하지, 얘기할 때도 조심스럽게 애들(손주)한테는 더 못 하고. 지금 둘이 벌써 고3이랑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거든. 그때, 삼중수소가 몸 안에 있다는 조사할 때가, 다섯 살 때였으니. 이런 이야기를 사실 애들한테 할 수가 없어. 우리만 스트레스받는 건 괜찮은데, 애들이 만약 수업에서 '방사능이 위험하다'라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자기 몸에 삼중수소가 성인보다 높게 있었는데.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어. 그러면, 우리는 왜 방사능을 맞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할거고. 애들한테는 방사능 얘기, 위험하다는 얘기, 원전 얘기를 못 하고, 심지어는 너희들 몸속에 방사능이 있다는 얘기는 아예 하질 못하지. 진짜 못 해, 할 수가 없어. 그 얘기를 하려고 하면, 내 가슴이 더 미어지고 찢어지는데, 너무 미안하고.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

황분희씨는 지금도 자녀와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애들한테 여기에 와서 같이 살자는 말만 안 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항상 미안하지."
 
"여기선 애들이 울산까지 출퇴근하는 게 20~30분밖에 안 걸리거든. 그래서 애들이 나를 믿고 들어와서 산 거지. 당시에 손녀는 여섯 살이었고, 손자는 여기서 임신해 갖고 낳은 거고. 근데, 한 가지 후회스러운 것은 그때 내가 애를 봐준다고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늘 미안하고 죄스럽지. 사실 후쿠시마 사고 날 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게. 그 불안한 게 딱 적중을 한 거야. 2015년에 추적 60분이 삼중수소 검사를 했거든? 그 결과를 받는데 희망이 무너지더라고.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어. 그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고. 처음에는 진짜. 머리가 뭐 돌로 진짜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지. 나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이렇게 애들이 피해를 보지도 않을 텐데. 늘 불안한 생각은 갖고 있지. 그냥 놀다가 피도 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잖아. 근데 나는 계속 걱정이 드는거지, 왜 저렇게 코피가 나지..."

2015년 <추적 60분>에서 나아리 주민 40명의 소변을 모아 삼중수소 농도를 검사하였는데, 삼대가 함께 사는 황분희 가족 모두가 참여하였다. 검사 결과 40명 모두에게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는데,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던 황분희씨는 28.1 Bq/L, 갑상샘항진증을 앓고 있는 남편은 24.8 Bq/L이 나왔고, 당시 다섯 살 손자에게서도 17.5 Bq/L로 40명 평균인 17.3 Bq/L 보다 높은 수치가 검출되었다.

삼중수소는 경수로(고리, 영광, 울진)에서도 발생하지만 월성 핵발전소처럼 중수로에서는 약 50배 정도 더 많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러한 방사성물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특징 외에도 질병과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쉽지 않기에 현재까지도 내부피폭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 존재한다. 핵발전소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삼중수소와 같은 방사성물질이 배출되는 것은 맞지만, 기준치 이하이기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리는 김익중 교수나 백도명 교수 등은 '내부피폭의 경우, 몸에 들어오면 단백질, 유전자, DNA 등을 삼중수소가 공격해 흠집을 낸다'며 인체 내에서 일으키는 영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황분희씨 역시 방사능 누출사고가 날 때마다, 한수원이나 전문가들로부터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 바나나, 멸치 조금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황분희씨는 오히려 "우리마을에 백혈병으로 죽은 초등학생이 3명이고, 암으로 많은 어르신들이 돌아가셨다. 나도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고, 우리 아저씨도 갑상샘 항진증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핵발전소 주변에서 사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걱정이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나자, 황분희씨는 이주를 요구할 명분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에게는 '절망'과 '죄책감'이 교차한 순간이기도 했다. 즉, 삼중수소 검사는 일상 속 눈에 보이지 않던 위험물질을 명료하게 인식하여 핵발전소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위험한 곳에서 함께 살자고 권유했던 자신이 가족들을 위험에 빠트린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위험 속에 사람들을 방치한 가해자는 따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황분희씨는 가족이 위험 속에서 살아가며, 그들의 몸에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 자체를 마치 자기의 탓인 것처럼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방학인 요즘, 손자들이 할머니 집에 놀러 가도 되냐고 전화를 하거든. 근데 내가 어떻게 마음 편하게  "그래, 와서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맛있는 것도 먹고 바닷가에 놀러 가고 며칠 푹 자다가"라고 말하겠어. 또 반대로 "얘들아, 여기는 방사능 때문에 위험하니까, 놀러 오지 마"라고 말할 수도 없잖아. 그러면 애들은, '할머니가 우리를 싫어 하나? 왜 오지 말라고 하시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니까. 참, 항상 고민되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황분희씨나 다른 주민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나 역시 문득 그런 고민을 했다. '주민들이 해주신 음식을, 직접 기른 블루베리로 만들어준 차를, 먹어도 될까? 별문제는 없을까?' 그들의 환대를 진심으로 즐기기보다는, 나도 모르는 찰나에 이런 걱정을 했다. 그러다 비로소 '황분희들'이 평생을, 수도 없이, 일상 속에서, 누구도 확신해줄 수 없는 '안전과 위험 사이'를 오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처음 삼중수소 검사 결과를 확인했을 때, 방사성물질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황분희씨는 무엇을 느꼈을까.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외에도,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당연히 무서웠지. 처음에 방사능이 나온다고 했을 때는, 정말 걱정이 많았지. 이걸 먹어야 하나, 안 먹어야 하나, 판단이 안 섰지. 근데 벌써 10년이 지나다 보니 무뎌지기도 하고, 사실 우리도 직접 농사해서 먹고 가꾸고 우리도 살아야 하잖아. 무뎌지더라고. 지금도 좋지는 않다고 보지. 근데 애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으니까, 거기다가 '안 좋으니까, 위험하니까, 먹지 마, 조심해 이럴 수도 없잖아' 그럼, 나는 위로를 하는 거지. 그래 몸에 들어가도 반감기가 있다고 하니까.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하니까, 스스로 위로를 하는 거지."
 
 황분희씨 내외는 텃밭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채소, 과일들을 재배한다
황분희씨 내외는 텃밭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을 채소, 과일들을 재배한다 ⓒ 김우창
 
나를 위해, 가족에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농사를 짓고, 음식을 하고, 그러나 그 농수산물과 음식이, 실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매일, 매 순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황분희씨가 말한 "이제는 처음보다 무뎌졌지, 그렇게 위로를 하는 거지"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황분희씨는, 핵발전소 최인접지역에 사는 '황분희들'은, 한수원의 '핵발전소 안전 신화'와는 다른, '안전해야 해, 안전할 거야'라는 위로와 주문을 매일 자신에게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보다 더 슬프고 안타까운 위로와 주문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황분희씨는 그렇게, 누구에게도, 가족들에게조차 일상에서 느끼는 걱정과 불안, 안타까움과 미안한 감정 모두를 보여주지 못한 채, 혼자 주문을 걸고 있었다, '안전해야 해, 괜찮을 거야'.

고마움, 그러나 확장되지 못하는 아쉬움

글을 쓰고 있는 현재(2월 18일)를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상여시위는 2023년 2월 13일이었다. 황분희씨를 포함한 이주대책위는 3095일째 싸우고 있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황분희'를 검색하면 많은 기사와 영상들이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안전하고 행복한 하루'를 싸워서 쟁취하기 위해 안 가 본 곳 없고, 안 해 본 것 없고, 안 만나 본 사람이 없는 황분희씨는 지난 몇 년간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마지막으로, 황분희에게 연대자, 활동가, 연구자, 기자 등 월성에 관심 갖고 방문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늘 만나는 사람들한테는 고맙지,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니까. 우리를 안타까워하고, 위로하고. 참 좋아.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서울이든, 경주든, 부산이든 탈핵 행사가 있는 곳에 가면 항상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 이미 우리 문제를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사람만 만나니까, 우리 싸움이 확장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 가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이 여기 농성장에 오면 나는 또 열심히 내가 아는 것들, 경험한 것들을 설명하거든.

한 번은, 20명 정도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왔거든. 근데 남자분 한 분이 먼저 '죄송하다'라는 말을 해야겠대. 자기가 예전에 한 번 이곳에 왔는데, 그때는 원전도 모르고, 자기 생각에는 내가 너무 비판적으로, 편향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대. '저거 다 거짓말이야, 저 말이 사실이면, 뉴스에 나오고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라고 생각하고 집에 갔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집에 가서 원전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하고 기사를 검색하는데, 다 맞다는 거야. 그때 다시 와서는 죄송하다고 말을 해야겠대, 자기가 너무 몰랐고 관심을 못 가져서 미안하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게 우리나라 원전의 특징이라고. 웬만해서는 사고가 나고, 방사능 유출이 나도 뉴스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 사람은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다고 하더라."

* <탈핵_잇다> 첫 번째 이야기인 황분희씨의 삶, 일상, 불안과 주문에 큰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두 번째 이야기를 들고 오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 매거진(https://brunch.co.kr/magazine/no-nuke)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월성핵발전소#황분희#나아리#이주대책위#상여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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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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