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말] |
사람들은 주변이 더러울 때 주로 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깨끗해진 주변을 돌아보며 왠지 모를 뿌듯한 감정과 함께 무슨 일을 시작해도 다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를 일컬어 청소력이라고 한다.
자신을 포함해 타인에게까지 상쾌한 인상을 남기는 청소는 단순 정리정돈을 넘어 최근에는 건물, 가게 등의 이미지메이킹 역할을 한다. 평소 아파트 계단, 상가 복도 등 무심코 지나치는 그곳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소관리사들이다. 이번 체험 삶의 함양 현장은 관내 곳곳을 누비며 건물을 청소하는 청소관리사 그들의 삶을 경험했다.
23일 오전, 생각보다 포근해진 날씨는 봄을 맞이할 채비가 끝난 것처럼 상쾌하다. 들뜬 기분을 안고 오늘 행선지 함양읍 무지개 아파트로 향했다. 반갑게 취재진을 맞이하는 '해피 클린청소' 김혜정 대표. 인사와 함께 차에서 박카스 하나를 건넸다. 이는 오늘 체험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견하는 복선과도 같았다.
오늘 주어진 임무는 아파트 계단 청소다. 쓸고 닦으면 되는 일. 생각보다 수월해 보였다. 일단 밀대 하나를 집어 들고 김 대표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꼭대기부터 1층까지 한층, 한층 내려오는 작업, 아파트 층수는 7층. 엘리베이터는 없다.
3명이 함께 청소하는 아파트 계단청소는 한명이 빗자루를 들고 쓰레기 및 먼지를 제거하면 뒤를 밀대걸레를 이용해 계단을 닦는다. 나머지 한명은 손걸레를 들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물제거 및 주변정리를 한다. 김 대표의 고향 후배 원씨가 청소 방법을 알려준다.
원씨는 "위에서 밀대질을 하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보며 야물게 닦아야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계단을 닦으며 내려왔던 모습이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잠깐 원씨에게 꾸중을 듣는 사이 김 대표가 앞서 계단을 내려갔다.
뒤처지지 않게 곧바로 밀대질을 시작했다. 7층, 6층, 5층 점점 몸에서 반응이 온다.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숨이 차오르지도 않지만 입고 있는 외투를 벗어던졌다. 김 대표는 "크게 힘을 사용하는 일은 없으나 반복되는 일이라 허리, 손목이 아플 것이다. 요령껏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이 점점 손에 익어가면서 김 대표와 원씨의 농담 소리가 들렸다. 김 대표와 원씨는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 초·중학교를 같이 나온 남매 같은 사이다. 원씨는 "어린 시절에도 같이 붙어있었는데 사회에 나와서도 같이 붙어있다. 큰일이다 큰일, 이제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라며 "여기서 오래 일하니 몸 전신 팔도강산이 다 저리고 아파 성한 곳이 없다"라며 김 대표와 티격태격 격 없이 농담을 이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야기소리는 사그라들고 각자 맡은 일에 집중했다. 쉼 없이 움직이는 밀대를 보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스트레스와 불안감도 잊은 채 움직였다. 흔히 말하는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영화배우 최강희씨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그녀는 앓고 있던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명성을 잠시 내려놓고 식당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했다. 당장 그녀가 느꼈던 기분을 예단하기 힘들지만 정말 반복되는 작업으로 잠깐이나마 마음의 평온함을 느껴진다.
한참을 닦으며 내려간 1층에는 이미 다른 팀원들이 청소를 끝내고 아파트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담배꽁초, 비닐봉지 등 화단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오늘 청소구역은 많은 일손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지만 넓은 구역을 청소할 땐 일손이 부족해 걱정이라고 김 대표가 말했다.
그녀는 "자활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최근에 개인회사를 설립했다"며 "당장 4명의 인원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업무량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늘 대학생 딸이 잠시 일손을 돕고 있지만 평소에는 정말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아파트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도 하는 작업은 비슷하다. 계단을 닦으며 내려오는 일. 곧바로 밀대를 잡고 아파트를 올랐다. 이전 아파트 보다 높은 층수지만 여기는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다. 도착 후 김 대표는 빗자루를 잡고 계단을 쓸며 내려갔다.
이번에는 뒤처지지 않게 속도를 올리며 계단을 닦아냈다. 층마다 자전거, 사과박스, 양파 등 다양한 짐들이 잔뜩 놓여있다. 일일이 자리를 옮겨가며 바닥을 정리했다. 무거운 짐도 있었고 어지럽혀 있는 층수도 있지만 김 대표는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무덤덤하게 바닥을 정리했다. 육 층쯤 내려왔을 때 미리 가지고 온 양동이에 밀대를 한 번 씻은 후 다시 일층까지 청소를 이어갔다.
김혜정 해피 클린청소 대표는 함양 관공서에서 관내 기업을 적극 활용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부분 관공서에서는 거창, 진주 청소업체에 일을 맡긴다"며 "함양에 청소업체가 있는 만큼 관내 관공서를 비롯한 기관단체에서 지역 업체를 적극 이용해 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부족한 인력난에 대해 "청소라는 일 자체가 어렵고 사람들 인식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어 아쉽다"며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지만 그만큼 보람된 일이기에 함양에 거주하는 분들이 많이 우리 업체에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연구에 따르면 흐트러진 방,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서 생활을 지속하면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심박수 및 혈압이 증가한다. 대게 일상에서 청소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남들이 꺼리는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김혜정 대표는 단순 청소관리사가 아닌 어쩌면 함양군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사람 중 한명에 가깝다. 앞으로 깨끗하게 정리된 건물과 계단을 마주할 때 그들의 노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