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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전주한옥마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떤 장소를 여행하면 그곳의 핫플 카페에 가기를 좋아하는 나는, 늘 그랬듯 여행 전날 눈에 불을 켜고 검색을 한 끝에 한 카페를 마음 속에 꾹 새겨놓았다.  

다음 날 아침, 부푼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두 아이들을 데리고 전주한옥마을로 향했다. 가는 내내 sns에서 보았던 카페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수풀이 무성히 우거진 초록 배경에 동그랗게 난 창에서 찍은 수많은 인증 사진들. 마치 그곳은 동화 속 판타지 세상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 가면 나도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이 느껴질 정도 였다.

점심쯤 도착해 점심으로 떡갈비를 먹으면서도 이미 정신은 그 카페로 유체이탈해 있었다. 마지막 한 술을 먹자마자 허겁지겁 식당을 나와, 두 아이들을 대동하고 서둘러 그 카페로 향했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 동안 수많은 카페들이 있었지만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그곳들엔 눈길을 주지도 않았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의 성화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어르고 달래며 마침내 그곳에 당도했다. 역시나 핫플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카페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자리를 먼저 잡으라는 무뚝뚝한 알바생의 말에 2층 계단을 단숨에 올라갔다.

그 문을 여는 순간, 부푼 마음이 삽시간에 바람빠진 풍선처럼 사그러들었다. 우리를 맞이한 건 초록의 수풀림으로 장식된 동화같은 배경이 아닌, 여느 카페와 다름 없는 일반적인 흰색 배경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사진은 어디서 찍은 거지?'라고 속으로 의문을 품기도 전에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사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나를 사로잡았던 그 사진의 탄생지가 조그맣게 보였다. 

카페의 전체 배경이 아닌 개별적인 공간. 초록의 수풀이 무성한 배경에 동그랗게 구멍난 커다란 정사각형의 판. 사진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토존이었다. 옆에는 식당의 대기 번호처럼 스무명 넘는 사람들의 대기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포토존에서 사람들이 쉴새없이 사진을 찍고 찍히는 중이었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일순 붕어빵 기계에서 붕어빵을 찍어내는 듯한 장면이 떠올랐다. 수많은 대기줄 때문인지, 붕어빵이 되기 싫었던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아이들을 데리고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목이 말랐다. 집에 돌아갈까 생각하다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린 곳에 작은 카페가 보였다. 원목 인테리어의 작은 카페였다. 뭐라도 마시고 쉬어가자는 마음으로 그곳의 나무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어서오세요" 직원의 밝은 목소리가 지친 우리를 반겼다. 네 테이블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엔 한 부부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창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한 잔씩 시켰다. 걷느라 지친 첫째 아이는 언제 집에 가냐며 입을 샐쭉 내밀었다. 그때 직원이 커피 두 잔과 초코라떼 그리고 작은 접시에 쿠키와 사탕 몇 개를 주셨다. 사탕을 보자 내내 시무룩했던 첫째 아이의 표정이 환히 밝아졌다. 
 
친절한 설명이 있던 동네 카페, 세심한 배려는 마음을 녹인다.
 친절한 설명이 있던 동네 카페, 세심한 배려는 마음을 녹인다.
ⓒ 이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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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흘러나온 잔잔한 재즈음악을 들으며 아이들은 사탕과 과자를,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아까의 일을 까마득히 잊었다. 원목 인테리어가 주는 아늑한 분위기가 몸과 마음을 기분좋게 노곤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따듯한 직원의 "조심히 가세요"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왔다. 멀찌감치 아까 그 카페가 다시 보였다. 불과 5분 거리인데 한쪽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쪽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어 휑한 광경이 조금 씁쓸했다.

사실 이곳도 그 카페가 아니었더라면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늘 많은 사람들이 찾고 다녀간 이른바 핫플 카페를 성지순례하듯 다녔기에, 그 거대한 그림자에 숨겨진 소박하고 예쁜 카페들의 매력을 알지 못했다. 내 발로 직접 찾아간, 내 시선으로 맘에 든 카페를 직접 가보고 나니 알았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멋진 카페들이 있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어, 찬란한 인테리어와 포토존이 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기쁨도 있지만, 남들에게 발견되지 않고도 조용한 분위기로 자신만의 색을 지키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하는 작고 아담한 카페들. 내 스스로 그런 나만의 핫플 카페를 발견해 낸 감동은 더 벅차게 느껴진다.

박완서의 소설 노란집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장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들꽃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은 더 큰 행복감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 부지런히 핫플 카페의 뒤안길에 숨겨진 카페들을 찾아내려고 한다. 여행하기 전 핫플 카페를 검색하는 데 힘을 쏟는 대신, 여행지에 가서 발길 닫는 대로 걸으며 우연히 마주한 작고 소박한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그 공간에 숨겨진 빛을 꺼내어 밝혀주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 대신 잔잔한 재즈음악이 흐르는, 주문받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직원 대신 여유롭게 따듯한 인사를 건네는 카페 주인이 있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포토존 대신 그림과 화분이 작게 놓인 그런 곳 말이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곧 학교로 복직을 앞둔 나는, 교실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누구나 칭찬해마지 않는 뛰어난 아이들을 눈여겨보고 그들을 더 잘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가려져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존재인 아이들을 부지런히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마음에 깊이 숨겨진 빛을 꺼내어 세상에 드러나게 해주어야겠다. 그 반짝임이 그들이 앞으로 살아내야 할 세상의 어둠을 밝힐테니.

덧붙이는 글 | 작가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립니다


태그:#핫플카페, #핫플카페에숨겨진작은카페들, #나만의핫플, #드러내지않은빛찾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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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는 에세이작가가 되고 싶은 작가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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