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년도 더 전 일이다. 딸 아이를 데리고 잠시 캐나다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좋은 멘토 선생님을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선생님과 계속 좋은 관계로 지냈다.
그리고 대학 가기 전에 잠시 캐나다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간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캐나다의 한식당에서 선생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게 되었다. 흔한 코리안 바비큐 말고 일반적인 한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아이는 된장찌개와 비빔밥을 주문했다.
우리와 참 다른 식사법
우리가 집에서 밥을 비벼 먹을 때에는 보통 나물 밑반찬 처리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다 던져 넣고 쓱쓱 비벼서 나눠 먹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하면 참으로 예쁘게 나온다.
아이와 선생님의 밥상도 그랬다. 큰 그릇에 나물을 색색이 돌아가면서 담고, 가운데 달걀 프라이까지 완벽하게 얹어서 나왔다. 심지어 밥은 공깃밥으로 따로 나와서, 양념과 밥을 직접 넣어 비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딸이 공깃밥을 들어서 그릇에 넣으려는데, 이게 너무 뜨거운 거다. 그래서 쩔쩔맸더니 선생님이 뭐 도와즐까 하고 물었다.
"이 밥을 여기에 좀 넣어주실래요?"
안 그래도 큰 선생님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이렇게 예쁘게 담은 음식을 지금 망치란 말인가?
"너 지금 장난하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선생님의 반응에 오히려 아이가 놀라서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선생님은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쨌든 밥이 그릇에 들어가고 나자, 이번엔 약간의 고추장과 간장을 넣으며 비비라고 하자 선생님의 멘털이 탈탈 털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선생님은 훗날 내 남편이 되었고, 우리는 아직도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웃는다. 한 지붕 밑에서 두 문화가 함께 살다 보면 다른 점을 자주 발견하는데, 그중 가장 다른 것이 음식 문화이다. 먹는 종류만 다른 것이 아니라, 먹는 습관, 순서, 상차림 등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다르다.
식탁 예절이라고 불리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문화를 몰랐다가는 자칫 낭패를 보기 쉽다. 아무튼 그중에서 재미있는 것이 바로, 식탁에 일단 올라온 음식은 뒤적여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이 깔끔하게 분리되어 서빙되어서 이것이 새 음식임이 입증된 후에, 내 눈앞에서 섞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미 비벼 놓은 비빔밥이 나오면 식욕이 떨어질 것이다.
사실 이것저것 다 넣은 밥은, 옛날 각설이 밥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양푼에 모두 넣어서 비빈 후 서로 숟가락을 꽂겠다고 팔을 뻗던 여고시절을 생각하면, 음식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은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서빙된 음식을 눈앞에서 마구 뒤섞는 경우, 음식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타박하는 것처럼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샐러드를 차근히 담고 위에 소스를 뿌려도, 그것을 섞지 않고 한쪽에서부터 얌전히 퍼 먹는다.
그게 무슨 맛이람! 골고루 섞여야 맛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예 주방에서부터 큼직한 샐러드볼에 미리 다 섞은 후에 그걸 접시에 각각 담아서 상에 올린다. 무엇이든 섞어서 먹어야 할 만한 것이라면 다 미리 섞여서 나오기 때문에, 식탁에서는 그냥 한쪽에서부터 떠먹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예비 시누이 집에 함께 놀러 갔을 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샐러드를 비벼서 먹었는데, 시누이 눈에는 그게 생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다. 시누이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전혀 모르고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다.
밥이 디저트야?
남편은 당시에 아이와 비빔밥을 나눠 먹으면서, 밥과 나물, 달걀 프라이가 골고루 섞인 덕에, 한 입에서 다양한 풍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밥을 먹으며 재미있어했다.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식당 밖 다른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먹는 응용성은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사귀던 초반 시절에, 남편의 큰 딸이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서 함께 갔던 적이 있었다. 메뉴는 튜나 포키볼(tuna poke bowl)이었다. 한국의 포케를 캐나다에서는 포키볼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 표현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뭔가 참치가 들어간 음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결국은 참치 회덮밥이었다.
큰 딸네 부부는 동양 음식을 좋아해서 일식당이나 한식당에서 종종 외식을 하곤 하는데, 거기서 먹어본 회덮밥이 맛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 딴에는 나를 배려해서 이 음식을 준비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양 음식은 직접 비벼 먹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큰 대접은 집에 없는 것이 보통이다. 나름 수프 먹는 대접에 밥을 얹고, 야채들은 얹은 후, 바비큐에 겉만 살짝 그을린 참치회를 얹어서 예쁘게 서빙되었다. 간장 소스가 곁들여졌는데, 나는 당연히 이걸 비벼 먹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릇이 워낙 작아서 이미 꽉 찼기 때문에 비빌 수가 없었고, 눈치를 보아하니 아무도 비비지 않고 그걸 먹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딸아이에게 들었던 그 사건이 생각났으나, 사실 그때가 워낙 연애 초반이었기 때문에 서로 낯가림이 있었고, 나는 별말 없이 그 음식을 회부터 차근히 먹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나중에는 맨 밥이 등장을 했고, 그 밥은 그냥 간장을 끼얹어 먹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보아하니 두 아들 내외는 이 음식을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분위기를 따라서 먹고 있다가 둘째 아들이 말했다.
"그러면 밥은 디저트인 건가?"
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그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종종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웃는다. 다들 약간 서먹한 분위기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며 새로운 음식을 먹는 장면이 조심스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 이후에도 비빔밥을 차릴 때마다 남편은 웃으며 괴로워한다. 음식을 휘젓는 게 익숙해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가 보다.
"아, 또 이것을 망가뜨려야 하는 상황이 온 거야?"
그래도, 비빔밥은 비벼야 맛이니, 이젠 용감하게 숟가락은 들은 남편은 씩씩하게 비빈다. 덜 비벼지면, 매운 고추장을 듬뿍 만날 수도 있으니 더욱 정성껏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국적이 다른 부부가 함께 살며 경험하는 문화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쪽 문화를 두둔하거나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양지 부탁드립니다.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