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산을 앞둔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라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출산은 어떻게 할 건지, 아이 이름은 정했는지, 책육아는 어떻게 하는 건지.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후배를 봤으니 이후로 3년이 훌쩍 지났다. 후배는 딸아이가 많이 컸는지 궁금해했고, 내 입에서는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근데 난 진짜 이렇게 육아가 힘든지 몰랐어. 미리 말 안 해 준 결혼한 친구들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니까."
그러나 나는 안다. 친구들은 수도 없이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는 것을. 아이 둘을 키우며 육아휴직 중이던 한 친구는 동네에 모르는 할머니라도 와서 아기를 봐준다고 하면 냉큼 맡기고 나갈 정도로 절박하다고 했다. 친구는 아직 미혼이던 나를 앞에 두고 100일 난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면서 말했다. 그녀의 퀭한 얼굴을 보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였다.
"맞아요. 다들 한결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아기는 너무 예쁜데 키우는 건 진짜 힘들다고.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니 열심히 누려야겠어요."
아마 후배도 나와 같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안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그 의미의 10분의 1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육아는 그런 것이다.
나는 왜 둘째를 갖지 않는가
첫 아이를 출산한 기혼 여성이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이 있다. 바로 둘째는 언제 낳냐는 것이다. 놀이터만 나가도 엄마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나 역시 수도 없는 둘째 질문을 받았다(받고 있다).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고 소문난 세종시에 사는 나는, 이곳에서 아이 하나만 낳겠다는 부모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나를 제외하곤 말이다. 단지 내 헬스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는 한 엄마도 둘째를 가지려 애쓰는 중이다. 놀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다른 엄마도 얼마 전에 인공수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들 둘째 만들기에 열심이다. 나만 빼고.
내가 둘째 낳기를 포기한 까닭은 남편 때문이 크다. 남편이 둘째를 원하지 않냐고? 그 반대다. 남편은 둘도 셋도 낳고 싶어 한다. 싫다고 학을 떼는 것은 나다.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정시 퇴근해서, 아니 때론 일찍 퇴근해서 아이를 하원시키는 아빠들을 자주 본다. 주말에도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와 노는 아빠들이 많다. 체감상 아빠의 육아 참여도가 높은 것이 이 도시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다둥이 가정이 많다. 둘째는 흔하고 셋째, 넷째도 드물지 않게 본다.
안타깝게도 우리집 가장은 그렇지 못하다. 밥먹듯이 야근을 하며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다. 남편 덕분에 나는 주말부부와 같은 독박육아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를 낳는 것은 큰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남편이 정시퇴근하면 둘째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도 쉽지 않다. 수도권에서 맞벌이를 하는 동갑내기 친구도 둘째를 접었다. 친구의 남편은 비교적 자유롭게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지만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 집안이 비상이라고 했다.
남편과 교대해 가며 연차를 쓰고 그조차도 안될 땐 한 시간 거리 사는 부모님을 모셔와야만 한다며 둘째는 지금 상황에서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맞벌이를 안 하고 살 수도 없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전세 가격이 몇 년 사이 두 배가 올랐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전업주부에 가까운 삶을 살지만, 누군가의 엄마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은 나도 맞벌이를 준비중이다. 이런 저런 일을 시도하면서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니 둘째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부모님이 혼자 크면 외롭다는 말을 무기로 설득할 때마다, 아이가 심심하다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문득문득 이야기할 때마다 생각한다. 아이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나의 인생도 중요하다고.
그럼에도 고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아이가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혼자라 나중에 외로워하면 어쩌지? 혹시나 우리 부부가 잘못되면 세상에 홀로 남을 아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선배들이 했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3, 4살 때가 제일 예쁜데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돼."
대통령실 저출생 종합 대책, 지켜보련다
미혼인 친구를 만나 육아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밥 차려주는 이모님, 청소해 주는 이모님, 아이 봐주는 이모님 다 따로 있는 친구는 아기가 너무 예쁘기만 하고 힘든 게 없다던데."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오죽하면 육아템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육아는 도움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다. 그게 아이템이어도 그럴진대, 이모님이 세 분이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이모님 세 분을 모시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가정이 몇이나 될까? 2023년부터 출산지원금이 대폭 늘어났다고는 하나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당장 나아서 기르고 있는 아이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출산지원금 몇 푼 더 쥐어준다고 아이를 낳을 리 없다. 중학교만 가도 학원비가 한 명당 100만 원 이상 드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저출생 정책은 여전히 부모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있다. 몇백 조를 쏟아부었다는 데 체감상으로는 어디에, 누가, 어떻게 썼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저출생의 근본 원인인 높은 집값과 교육비, 육아에 유연하지 못한 노동환경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인데 국가가 망하게 생겼으니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만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출산율 0.78은 국가 소멸 수준이라고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다. 수치가 꽤나 충격적인지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부랴부랴 대통령실에서 3월 중 저출생 종합 대책을 발표할 거라던데, 나의 고민을 끝내줄 좋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더불어 아이를 낳는 이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OECD국가 행복지수에서 거의 꼴등이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다음 세대를 낳겠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살 만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