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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직접 칠판에 쓴 모둠 대표 질문(학생들이 적은 것을 촬영)
학생들이 직접 칠판에 쓴 모둠 대표 질문(학생들이 적은 것을 촬영) ⓒ 이준만

1970년대 후반부 고등학교의 일반적인 교실 풍경. 교사는 무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학생들은 묵묵히 설명을 받아 적는다.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그 당시 사범대학에서는 교사가 된 후 어떻게 수업할지를 잘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교사가 되어 수업을 할 때, 고등학교 때의 풍경을 떠올리며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강의식, 일제식 수업을 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수업을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10년 전쯤인가? 아니, 더 오래되었을 수도), 학생 참여 수업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선구자적 풍모를 지닌 교사들이, 어디에선가 이런 형태의 수업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지방 소도시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냥 하던 대로 수업했다. 용빼는 재주가 없으니, 나도 그러했다.

시간이 흘렀다. 학생 참여 수업은 점점 더 강조되었다. '아, 이런 형태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학생 참여 수업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학생 참여 수업이라는 말은 배움 중심 수업으로 바뀌는 추세였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책을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모습의 배움 중심 수업 모형이 있었다.

내가 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 수업 모형은 하브루타 수업이었다. 유대인의 교육 방식이라고 했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활동이 핵심인 듯했다. 바꿀까? 말까? 하던 대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 많이 했다. 망설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결심했다. 에라, 죽이 되든 밥이 되는 한번 해보자고.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하브루타 수업을 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는 것은 정통 하브루타 수업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한 대로 하브루타 수업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을 터이다.

교실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느냐고? 대체로 시끄럽다. 왁자하다. 학생들이 질문한다. 대답한다. 발표한다. 쓴다. 교사는 할 일이 크게 없다. 진행자나 사회자 역할을 하면 된다. 교장이나 교감이 지나가다가 이런 풍경을 보면, '얘들은 떠들고 선생은 놀고 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정지용의 시 <향수>를 하브루타 방식으로 수업하는 풍경과 고등학교 다닐 때의 시 수업 풍경을 견주어 보자. 노래로도 만들어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으로 시작하는 시이다.

맨 먼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시 전체를 읽게 한다. 모든 학생이 소리 내어 읽게 한다. 그런 다음, 각자 질문 2개를 만들고 자신이 만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 다음 활동은, 자신이 만든 질문을 짝에게 하고 짝은 대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교실은 자연스럽게 시끌시끌해진다.

세 번째 단계의 활동은,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뒤로 돌아앉아 네 명의 모둠을 만드는 것이다. 각자 만든 질문을 모둠원에게 보여준다. 여덟 개의 질문 중, 가장 좋은 질문을 뽑아 모둠 대표 질문으로 선정한다. 이때 자신이 만든 질문이 대표 질문으로 뽑히도록 모둠원들은 설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 질문을 선정하면, 모둠원들 간의 토의를 거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들도록 한다. 여기까지 활동을 마친 모둠은, 자신들의 대표 질문을 칠판에 적도록 한다.
  
활동 단계 네 번째는, 자신의 모둠 대표 질문이 아닌 것 중 하나를 선택하여 대답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물론 모둠원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멋진 대답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단계는, 교사가 1번 질문부터 시작하여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든 모둠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대답을 들어보고 그 대답에 대한 다른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든 모둠이 없다면, 그 질문을 적은 모둠의 대답을 들어본다.

모든 활동이 마무리되면, 교사가 만들어 놓은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의 대답을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학생들이 만든 질문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 그 부분을 보충하는 활동이라 하겠다.

이렇게만 하고 수업을 끝내버리면 학생들이 중간,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교과서의 학습 활동 해답과 작품에 대한 기본 정보를 담은 핵심 정리 등을 정리하여 제공했다. 또 작품에 대해 각자 공부한 다음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따로 가졌다. 이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브루타를 포함한 배움 중심 수업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염려한다. 학력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는 접자. 실제로 하브루타 수업을 해 보니, 하브루타 방식으로 수업하지 않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중간, 기말고사 점수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월등히 좋지도 않았지만.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 일단 교실이 왁자해진다. 활기로 가득해진다. 교사도 수업이 즐겁다. 하브루타 수업을 하면 만사형통이냐고? 물론 당연히 아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도 많다.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도 교직을 떠날 때까지 하브루타 수업을 계속할 듯하다. 아이들이 조용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시끌시끌하게 떠드는 게 더 좋으니까. 아, 이것도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긴 하다.

#수업#하브루타#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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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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