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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시집
책꽂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시집 ⓒ 이준만
 
책꽂이 한 칸을 시집이 채우고 있다. 이미 한 번 이상 읽은 것들이다. 시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를 읽는 효용 중 하나이리라. 시집 한 권에서 마음에 와닿는 시는 몇 편이나 될까?

시집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를 터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대개 대여섯 편 정도 되는 듯하다. 시집을 읽으며 마음을 울리는 시 한 편을 발견할 때마다 기쁨이 차오른다. 이런 기쁨이 살아가는 데 힘과 위안이 된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시, '엄마 걱정' 전문

날이 저물어 사방이 어둡다. 비까지 온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방에는 아무도 없다. 결국 울음이 터진다. 화자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를 생각하면 울컥해진다. 그만큼 강력하게 화자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기억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슬픈 기억이든, 무서운 기억이든, 기쁜 기억이든 간에 말이다. 시를 통해 자신의 삶 조각 한 편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시를 읽는 기쁨 중 하나이리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 (중략) /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시, '질투는 나의 힘' 일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젊은 날에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 일들을 어떻게 실행할지 꼼꼼하게 기록해 두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에게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고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맨다.

'질투'라는 말이 좀 생뚱맞다. '열정'이라는 말로 바꾸면 맥락에 어울리는 것 같다. 열정을 가지고, 자기 자신은 돌보지 않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미친 듯이 헤매는 젊은 시절을 대개는 경험하지 않았을까? 만약 시인이 '질투'란 말 대신 '열정'이란 말을 썼다면 시의 맛이 뚝 떨어졌을 성싶다. 시어의 선택이 시인의 솜씨이고 시를 읽게 하는 동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 '빈 집' 전문

사랑을 잃어 본 적이 있는가? 첫사랑과 계속 함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사랑을 잃어 보았을 터이다. 허나 사랑을 잃고 이 시의 화자처럼 이토록 처절한 아픔과 절망을 맛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잃었다 하더라고 또 따른 사랑을 열망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사랑을 잃자 자신 주변의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더듬더듬 문을 잠그고 빈집에 스스로 갇힌다. 자신의 사랑과 함께.

이렇게 하면 자신의 떠난 사랑에 대한 화자의 사랑은 다른 데를 향할 수 없게 된다. 화자 자신과 화자의 사랑만이 남은 빈집에서 떠나버린 사랑을 곱씹을 수밖에. 극한의 절대적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대상을 이토록 사랑하는 것을 축복이라 할 수 있을까?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서 눈을 털고 있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사방으로 인적 끊어진 꽃밭, 새끼줄 따라 뛰어가며 썩은 꽃잎들끼리 모여 울고 있을까. - 시, '도시의 눈' 일부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눈이 퍼부은 모양이다. 그러니 '전쟁처럼'이라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하긴, 눈이 전쟁처럼 내리지 않더라고 도시의 삶은 언제나 전쟁이다. 사람들은 전쟁의 냄새가 묻어 있는 눈을 털고 있고 화자는 나이를 털고 싶어 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화자의 나이에도 도시의 눈처럼 전쟁의 냄새가 배어 있어서가 아닐까?

전쟁의 냄새를 털어버리고 지나간 봄날의 화창한 기억의 꽃밭을 떠올리며 위로받고 싶어서가 아닐까?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나름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전쟁에서는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패배할 때마다 화창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어떤 평론가가 기형도의 시 내부에는 끊임없는 죽음에의 예감이 떠돌고 있다고 했다. 또 죽음과 절망을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고 그것을 이처럼 매혹적인 언어의 성으로 쌓아올린 시인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기형도의 시에서 죽음과 절망에만 주목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마음에 와닿은 시들을 찾아 읽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를 읽어 내면 된다. 그렇게 시를 읽어 낼 때, 그 시는 오롯이 자신의 것이 된다. 그러면 팍팍하고 각박한 삶에서 자신을 위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시집#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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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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