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게 돈이 되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돈도 안 되는 일 같구만."
몇 년 전, 언리미티드에디션에 판매자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책을 신나게 팔고 있는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었다. 정장에 금배지를 달고 뒷짐을 진 채 활보하던 남성이었다. 판매자들의 부스를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내뱉는 말에 거북함과 위화감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당신은 이해할 수 없겠지. 창작자, 1인 출판사, 독립 서점 관계자 들이 독자를 직접 만나 소통하고 연결되는 이 자리의 기쁨을 모르니까 저런 소리를 하겠지.
돈과 효율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그해 북페어의 슬로건은 'Walk Together'였다. 섬처럼 고립되어 혼자 책을 만들었던 내게, 사흘간의 행사는 독자, 동료, 독립 서점과 함께하는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첫 책을 갖고 나간 그 자리에서 나는 창작자로서 계속 작업해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다만 그 금배지의 남성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나랏일을 하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문화 생태계에 대해 저 정도의 인식밖에 갖고 있지 않다면, 앞으로 예산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갔을 때 이 나라의 문화 정책은 어떻게 될지 우려스러웠다.
책을 밀어낸 자리에 책상을 놓겠다니?
2022년 11월, 박강수 마포구청장(국민의힘 소속)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방문했다. 이날 행보를 담은 <마포리뷰NEWS>에서는 "주요 시설을 직접 확인하며 발전 방향을 고민했다"는 자막을 달았다. 이 영상에 담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관계자들에게 스터디카페나 일자리센터로 바꾸겠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구청 측에서는 위탁을 맡은 운영진에 대한 계약 기간을 기존 3년에서 3개월로 대폭 줄인 계약을 요구하고, 신규 입주사 선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현 운영진과의 위탁 계약이 끝나고, 현 입주사들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구청장이 공언한 대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스터디카페 혹은 일자리센터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마포구청장은 작은도서관에 유사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는 2022년 11월, 마포구 내의 도서관 예산을 30퍼센트 삭감하고, 작은도서관을 사실상 폐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3년 단위로 위탁 운영해오던 작은도서관의 계약을 22년 12월 31일부로 종료하고, 이후에는 독서실과 같은 스터디카페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한겨레>의 보도 후,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빗발치는 민원으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으나, 올해는 아예 예산을 배정하지 않았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작은도서관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2008년 개관한 작은도서관은 지역사회에 뿌리 내린 시설인 반면,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2020년에 개관해 그 역사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이용이 제한되었던 터라, 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아는 정도다. 지난 3년간 이곳에서 책을 만들어왔던 사람 중의 한 명으로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리고자 이 글을 쓴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홍대입구에 생긴 이유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는 'CO-STATION'이라는 간판을 단 건물이 있다. AK홍대 주차장과 연결된 이 건물은, 경의선 철길 부지를 애경이 개발하면서 기부채납으로 내놓은 것이다. 4-5층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디자인 창업센터로, 2-3층은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을 시에서 디자인과 출판을 위한 부지로 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2010년, 서울시청과 마포구청이 홍대 앞 일대를 '마포구 디자인․ 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홍대, 합정, 망원 일대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독립서점, 출판사가 운집해 있다. 이 지역은 파주출판단지와 충무로 인쇄소 골목을 잇는 거점이기도 해서, 지금처럼 땅값이 비싸지 않은 시절부터 수많은 창작자와 출판사들이 둥지를 틀었다. 마포구에서 경의선철길에 책거리를 형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이러한 맥락에서 태어났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기존의 출판 단체와 다른 점은, 1인 출판사를 비롯해 출판 인접 분야의 창작자를 키워내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편집자, 작가, 번역가, 저작권 에이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 만화가, 북튜버, 사진작가 등 이곳에 입주한 이들의 직업은 실로 다양하다. 센터 운영진은 이들 사이를 부지런히 연결하며 현장의 욕구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왔다. 이곳에서 내가 받은 도움은 다음과 같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이들을 연결하는 공간
첫째, 협업 지원. 이곳에는 다양한 창작자가 있는 만큼, 원하는 일을 맡길 작업자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는 입주사 간의 협업을 장려하며, 함께 책을 만들 경우 크라우드 펀딩을 지원해준다. 1인출판사는 이곳에서 일러스트레이터, 사진작가, 디자이너와 손쉽게 컨택하여 책을 펴낼 수 있다.
둘째, 창작자들 간의 네트워킹. 운영진에서는 각종 모임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여기서 창작자로서 겪는 고충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도 주고받을 수 있다. 또한 혼자서는 맡기 어려운 프로젝트가 들어왔을 때, 팀을 꾸려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도 있다. 거래처 연락처부터 시작해 업계 사람들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덤이다.
셋째, 출판 가이드 A to Z.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는 1인 출판을 하는 이들이 프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출판의 전 과정을 교육해준다. 계약서 작성부터 시작해 기획, 북디자인, 마케팅, 크라우드 펀딩, 제작 실무, 세무 가이드, 전자책 시장 분석, 보도자료 작성, 저작권 수출 및 계약까지 각종 특강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
넷째, 장르별로 특화된 기획 강의. 인문교양, 사회과학, 과학, 에세이, 역사책, 실용서, SF, 그림책, 만화책, 번역서, 웹소설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편집자를 초청해 기획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다양한 분야의 편집자들이 몸으로 부딪쳐가며 터득한, 생생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더욱 값진 이유는, 기존의 출판 교육 기관인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서는 고용보험을 적용받는 2인 이상의 출판사만 교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는 출판 교육을 입주사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개방함으로써 출판 관련 정보를 폭넓게 제공해왔다. 이 강의들은 온라인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강의 한 회차당 시청자가 200~300명에 이르렀다. 그만큼 출판 정보에 목마른 이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이들을 연결하는 공간으로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에 공동 부스를 제공해 창작자들이 독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평상시에는 독립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고 2층 공간에 전시함으로써, 마포구 내 독립서점과의 상생을 도모해왔다.
지금껏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만큼 창작자와 일반 시민에게 직접 다가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공간은 없었다. 코로나 시기에 힘겹게 첫 발을 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은도서관만큼이나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간절한 지역 허브다. 출판 생태계를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3년간의 성과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는 마포뿐만 아니라 국내 독립출판의 허브이자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그 위상을 발휘할 것이다.
마포구청장에게 묻는다
2023년 2월 28일 기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연말까지 현 운영진이 위탁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여전히 2기 입주자를 위한 예산과 올 7월에 있을 3기 입주자를 위한 선발 예산은 배정되지 않았다. 현재 이 공간의 대다수가 1기 입주자임을 감안하면, 올 7월 이후에는 점차 이용자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 상태로 현 운영진과의 계약이 종료되고 나면, 2024년 1월에는 빈 책상들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마포구청장이 작은도서관에 시도했던 대로 스터디카페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전․현직 입주사들은 협의체를 준비하며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민원 게시판에 계속 질의를 남기자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을 하던 구청 측에서는, 3월 16일 입주사 면담을 위해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 직접 방문했다. 구청 문화시설팀장은 나름대로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입주사 협의체는 현재 마포구 지역 조직을 비롯해 출판계와 연대를 모색하며, 장기적인 여론전을 도모하고 있다. 오는 3월 24일 총회를 개최하고,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마포구청, 아니 박강수 구청장은 보다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놔야 할 것이다.
마포구청장에게 묻는다. 마포출판문화센터의 위탁 운영 연장을 피하고, 신규 입주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예산을 삭감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포출판문화센터는 전년도 운영성과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다. 센터의 운영을 개선할 방안을 모색한다고 했는데,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마포구청장에게 묻는다. 스터디카페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제치고 들어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민간에 효율적으로 자리 잡은 스터디카페를, 공공에서 제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자리센터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는 이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작은 출판사와 창작자들을 몰아내고 나면, 그곳에 본래 있던 만큼의 일자리라도 새로 창출할 수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내쫓고서 새우려는 곳이 일자리센터라니 어불성설이다.
제조업 수출이 주춤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K콘텐츠 수출을 장려하겠다고 나섰다. 출판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고 창작자를 지원하는 것은, 이러한 콘텐츠 산업을 부강하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단순히 지금 당장 돈이 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근시안적인 사고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마포구청장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3년 전 독립출판페어에서 봤던 금배지의 남성이 아른거린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에게 묻는다.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밀어내려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 자리에 스터디카페, 혹은 일자리센터가 들어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포의 출판 생태계를 위해 구청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출판 문화산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박강수 구청장에게 문화란 무엇인가. 당신은 빵만으로 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