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나에겐 두 가지 사심이 있었다.
'운동을 하면 글을 좀 더 잘 쓰게 될지도 몰라.'
'돈을 더 잘 벌게 될지도 몰라.'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운동을 강조했다. 글이라는 노동이 대부분 정적이고 큰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라도 해야 하고, 운동을 하면 감각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 감각은 글 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글쓰기에서 오감을 표현하면 글이 더욱 풍부해진다고도 했다. 나는 오감을 풍성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처럼 되고 싶었다.
또 사업을 하는 유명한 사람들을 보니 뚱뚱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자기 계발이나 성공하는 사람들이 다 운동을 강조하지 않는가? 언론에 비치는 모습은 예쁘게 치장하고 다듬은 모습이겠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마흔을 불혹의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하던데, 나는 나이 들어서도 '성공'이라는 마케팅에 여전히 흔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운동과 성공의 상관관계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동과 사회적 성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몸은 9킬로그램 감량과 희미한 복근을 얻었다. 하지만, 그동안 사업적으로 보자면 매출은 하락했고, 법인 소유의 차량으로 몇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다. 글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마이뉴스> 연재하는 동안 글이 잘 써지지 않아 곤란했고, 생각만큼 많이 읽히지 않아 속상했다.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더 많이 쓸 줄 알았던 소설은 작년 한 해 완성작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몸만 좋아졌을 뿐, 사업에서도, 글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운동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목표는 몸무게 이외에는 얻지 못했다. 운명이 비웃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네 사심을 내가 모를 줄 알았지?'
결국 사심을 들켜버린 나는 다시 순수하게 운동하겠다고 다짐했다. 운동을 왜 멈추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원래 운동의 목적 중 하나는 몸무게 감량이었으니까. 하나만 달성해도 멈추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게다가 난 이미 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서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찌뿌둥했다. 사업과 글쓰기 말고, 매일 해야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운동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만약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고, 김연아처럼 노력한다면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내 인생에서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사회적 성취가 있을까? 세상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성실하게 삶을 영위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김연아만큼 노력하며 금메달을 꿈꿨던 선수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노력이 재능을 넘어설 수 있다곤 하지만, 그건 노력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아닐까. 왜 누군가는 사회적 성공을 이루지만, 왜 누군가는 이루지 못하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내가 본 것은 확증편향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 중에도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고, 성공한 사업가 중에 배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성공한 사람의 노력이 빛날 뿐, 노력했다고 모두 사회적 성공을 이루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이다.
운동이 내게 가르쳐 준 것
최근 나는 체지방 1.3킬로그램 감량을 또 이루어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기사 마감은 지키지 못했고, 소설 쓰는 것은 지지부진했으며, 회사 매출도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운동과 성공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투덜댔다. 풀리는 일이 없으니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나는 도망치듯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땀과 함께 시원하게 배출되는 느낌이다. 운동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나는 고민을 한다.
해결하고 풀어야 할 일들 앞에서 머리를 쥐어짠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다. 멈추지 않는 먹고사니즘이라니. 그러다 어느 날 드라마 <미생>의 한 문장을 만났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느린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느린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생각해보니 운동을 한 이후로 우울하거나 슬럼프가 오래 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업이건 글쓰기이건 포기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운동 덕분이었다. 체력의 바탕 위에 중요한 것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포인트였다.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글을 쓰는 것이고,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것이었다. 그것을 끊임없이 계속하려면 결국 건강한 몸이 중요했다.
운동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성공에 집착해 결과론적 통계나 오류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재능 있는 누군가는 빠르게 가겠지만, 내 속도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각자의 역량과 각자의 체력, 그릇의 크기만큼 조금씩 키워 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멈춘 것이 아니니까.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즐기면서 가보겠다,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