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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았으리라 짐작한다. 그의 시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고 대학수학능력 시험에도 지문으로 활용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는 흔히 참여 시인 또는 저항 시인이라 불린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는 사회 현실을 시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런 현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수영 전집 표지
김수영 전집 표지 ⓒ 이준만
 
그런데 김수영의 시를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인간 사회는 진보한다는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겹친다면 인간 사회의 어떤 면은 진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수영은 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결국은 인간 사회가 현실을 극복하고 전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 한번 정정당당하게 /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일부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화자의 모습은 한 치도 틀림없는 나의 모습이다. 직장 동료가 자기 책상을 지저분하게 쓴다고 흉보고,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가끔씩 지각하는 동료를 욕하는 나의 모습이다. 화자는 분개하고, 욕하고, 증오해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대상에게만 항의를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렇다. 직장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항의한 적은 없으니 말이다. 이런 게 소시민적 근성이라는 것일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했다가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생각하고 입을 꾹 다물고 마는 나의 모습이 정확하게 겹쳐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루소의 민약론을 다 정독하여도 / 집권당에 아부하지 말라는 말은 없는데 / 민주당이 제일인 세상에서는 / 민주당에 붙고 / 혁신당이 제일인 세상이 되면 / 혁신당에 붙으면 되지 않는가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 제2공화국 이후의 정치의 철칙이 아니라고 하는가 / 여보게나 나이 사십을 어디로 먹었나 - 시, '만시지탄은 있지만' 일부

언제나 힘 있는 쪽 편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렇다. 뭐, 나도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 늘 옳은 판단과 결정을 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들도 인간인데…….

또 이런 경우도 문제이다. 오직 특정한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전형적인 흑백논리이다. 이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경직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 거리를 걸을 때도 환담을 할 때도 / 장사를 할 때도 / 토목공사를 할 때도 /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 풋나물을 먹을 때도 /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 냄새를 맡을 때도 /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 연애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 사이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 시, '하…… 그림자가 없다' 일부

우리 사회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열차게, 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동권 확보를 위해 출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싸우고, 어린 나이에 사그라져 버린 넋들을 위해 싸우고, 주당 69시간의 노동은 부당하지 않느냐며 싸우고, 명시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가 보장되지 않아 싸우고…….

김수영 시 속의 화자처럼, 꿈속에서도 싸우고 깨어나서도 싸운다. 정말 쉬지 않고 싸운다, 그래도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어렵다. 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삶의 고달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시, '풀' 전문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시, '풀'이다. 그의 절창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를 읽으면, 고달프고 괴로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싹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에서 풀은 핍박받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힘없는 일반 백성들을 흔히 민초(民草)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시련을 몰아오는 바람이 불어오면, 풀은 눕는다. 누워서 운다. 그러나 그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로 시는 끝났지만, 다시 시의 처음으로 돌아가 읽어 보면, 풀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존재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시련이 닥쳐오면, 일단 웅크리고 절망하고 누워서 침잠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김수영은, 인간이란 그 시련을 극복하고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풀'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김수영 시#김수영 전집#현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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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지방 소도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 2년을 제외하고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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