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경실련 '[도시대학: 도시일반 1강] 도시와 도시계획'의 내용을 요약, 재정리한 것입니다.[기자말] |
여러분은 도시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보통 화려한 불빛과 높은 빌딩 같은 게 떠오르고 도시의 반대는 농촌이나 시골마을과 같은 촌락을 떠올립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인데요.
도시에 대한 이런 선입견, 과잉 단순화된 이분법적 구분은 도시가 마치 농촌에 비해 우위에 있는 수직적 위계처럼 잘못 생각하게도 만들고 무엇보다 도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설명입니다. 도시는 삶의 방식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의 직업이나 내용은 다를 수 있지만 사회상은 똑같기 때문에 더 이상 도시와 촌락의 구분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왜 탄생했을까요?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고 교환할수록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협력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교환은 서로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작동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9500년경에 건설된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테페는 종교적인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집단적인 협력 상황에서 약속을 안 지키고 내 개인만의 사리사욕을 챙기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사회 내에서 강조하거나 북돋을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하면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성, 원칙, 양심을 발전시키기 위해 테페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도시의 정의이자 존재이유는 교환이고 신뢰입니다. 교환은 또 다른 표현으로 분업화, 전문화이기도 하지요. 분업은 나누는 게 핵심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잘 교환하면서 살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입니다. 교환하려니까 분업하는 거고 분업하려니까 전문화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려면 음식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인터넷도 필요하고 휴대전화도 필요한데 혼자 다 만든다고 생각하면 불가능하지만 여럿이 함께하면 같이 나눠서 하면 가능한 거죠. 근데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강력한 신뢰라고 하는 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교환과 신뢰를 얼마나 발전시키느냐가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도시란 사람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교환하면서 사는 중심지입니다.
고대 아테네라는 도시도 처음에는 시민들이 모여서 살고 있었는데, 귀족계급들이 자신들의 부를 위해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거두니까 소위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의 권한을 만들어 낸 게 아테네입니다. 도시에 대해 얘기하면 사람들은 파르테논을 떠올리지만 파르테논은 건축이고 건축물일뿐입니다. 도시로서의 핵심은 아고라입니다.
아고라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와서 교환하는 곳이지요. 그리고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이런 사람들이 연설하는 장소가 되고 시민들이 모여서 의사결정하는 곳도 아고라였습니다. 아고라 때문에 아테네가 번성한 것이고 이게 바로 도시의 본질입니다.
로마로 표현되는 제국시대의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환하는 장소가 아니라 가운데가 지배자들의 건물로 채워집니다. 이게 바로 아고라와 가장 큰 차이입니다. 로마의 런던(당시 론디니움), 파리(당시 루테니아)는 가운데 지배자의 거점이 있습니다. 중세 때 보면 성이 등장하고 그 성에는 왕이나 영주가 삽니다.
이들은 주변 지역의 지배자이자 소유주이지요. 영주가 소유한다는 뜻은 땅 뿐 아니라 땅에 있는 부속물까지를 말합니다. 이 부속물에는 사람도 속합니다. 피라미드 세계에서 맨 위에 있는 왕이나 영주, 기사는 10% 미만이었고, 나머지 90% 이상의 사람들이 모두 땅의 부속물로 노예처럼 살아갔지요.
중세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11세기, 12세기가 되면서 역사적 분열이 일어납니다. 도시, 자유시민, 민주도시의 부활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상업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상공업이 커지면서 예전에는 다 영주의 것이었는데, '이건 내 꺼다' 라고 할 수 있는 게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정 정도의 공간을 정해서 "여기는 영주 너의 영토가 아닌 지역이야 우리가 알아서 살게"라고 하는 지역이 생기고 그 지역을 시티즌이 사는 곳, 그 이름을 시티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도시 하나밖에 없습니다. 도시라는 걸 성(캐슬)과 같은 것으로 상상하기도 하는데 시티라고 부르는 것은 읍, 성이랑은 다른 것입니다. 성(캐슬) 성격의 도시는 프랑스 혁명의 계몽주의가 나오면서 완전히 사멸됩니다. 유적지의 관광적 기능으로만 남았을 뿐 사회적 기능은 사라졌지요. 계몽주의 이후 살아남은 도시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땅의 부속물로 영주의 소유물로 태어났는데, 이제는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도시라는 영역으로 들어오고 그 누구도 이 사람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자유인이 됩니다. 그 전에는 자유인이라는 게 없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개인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하고, 독립된 자유인으로서 내가 누구지? 라는 게 발전하면서 르네상스라는 것도 생기게 되고 계몽사회도 생기게 됩니다. 르네상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지금 이 도시라는 곳에서 연습하고 살아왔던 것이 축적되어 수백년 쌓인 결과물을 보는 것입니다. 르네상스가 일어난 건 다 도시입니다. 성곽이 아니었습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시티라는 말 자체가 시티즌 다음에 생깁니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시티즌이 생기고 그 사람들이 사는 데를 지칭하는 단어로 시티가 생깁니다.
도시계획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게획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미래를 다룹니다. 우리는 어제나 과거를 계획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미래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계획을 하지요. 그래서 계획에는 미래와 발전이라는 말을 뺄 수가 없습니다. 더 나은 도시의 미래를 생각하며 보존할 것, 개발할 것, 공공이 쓸 것, 사적으로 쓸 것 등을 계획하는 것이지요.
도시계획의 목적을 많은 사람들이 장소의 번영으로 착각합니다. 도시재생을 한다고 하면서 전망대나 화려한 시설을 많은 예산을 들여서 설치해 놓으면 잘한 걸까요? 아직 그 지역에 쪽방촌에서 불편하고 열악한 위생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도시'자가 붙는 순간 사람이 들어가야 됩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발전, 계획의 목적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최근에도 도시라고 하면 거기에 누가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가를 알아가는 게 도시조사의 첫 단계인데 요즘은 아예 그런 조사를 안 합니다. 최근 몇 년은 그냥 건축물 조사에서 끝이 나버립니다. 도시조사가 아닌 건축물조사인 것이지요.
건축물을 고치는 걸 발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건이 바뀌는 것 뿐인데 결국 사람이 더 나은 상태로 사람이든 환경이든 그것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게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도시계획은 미래를 기억하는 도구이고 미래를 창조하는 수단입니다. 미래를 기억한다? 역설적인 표현인데요, 우리가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 계속 기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그냥 경제성,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은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래의 도시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주는 것이 도시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 *더 자세하고 풍성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만나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t79ZNFmKn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