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뛴다!" "튄다!"
수라갯벌 연안습지에서 풀을 뜯던 고라니가 용수철처럼 튀었다. 도움닫기 하듯 앞발로 짧게 두 번, 세 번째는 두 다리를 앞뒤로 쫙 벌린 채 날듯이 3~4m를 멀리 뛰며 내달렸다. 그때마다 리드미컬한 반복 동작으로 엉덩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치달리는 다급한 모습조차 평화였다. 세렝게티처럼 탁 트인 공간과 갈대숲을 흔드는 봄바람 덕이다.
'수라갯벌에 들기'. 지난 8일,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공동행동)이 주최한 행사 명칭이다. '수라'는 비단에 수를 놓다는 뜻이다. 공동행동은 새만금신공항 예정지인 남수라 마을 인근의 연안습지를 수라갯벌이라고 부른다.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30여 명이 참석했다. 인솔자는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단장과 구중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전북 군산 새만금개발청 앞 도로에서 만난 참가자들이 이날 간 곳은 만경강 하구를 남북으로 잇는 만경대교와 그 아래쪽에서 미군 소유의 군산공항을 마주해 수라갯벌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 마지막으로 장화를 신고 수라갯벌 염습지에 들어가서 한참을 걸었다.
새만금방조제 공사로 물길을 막은 지 30여 년. 정부는 이곳을 '육화'(육지화)된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위에 시멘트를 발라 새만금신공항을 짓는 계획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5시간여 동안 수라갯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몸으로 체험한 한 참가자는 마무리 자리에서 이 같은 한 문장을 던졌다.
"신이 생명을 준 곳에 인간이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말 끝에 박수가 터졌다. 모두들 공감한다는 의미이다. 만경강 유역의 마지막 남은 갯벌 '수라'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까닭, 이날 수라갯벌을 돌며 5가지로 정리했다.
[①수라갯벌의 생태] 천혜의 자연유산을 시멘트로 덮겠다고?
"자, 여기서 잠시 멈춥시다. 쟤들이 우리 머리만 볼 수 있는 데까지 가야 달아나지 않습니다. 이제 좀 익숙해졌으니, 한두 걸음 더 다가가 볼까요."
오 단장의 말을 들으니 인간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마주하는 데에도 지켜야 할 간격과 적절한 속도가 필요했다. 만경대교 북측 끝 지점, 숨죽인 일행은 난간 앞에서 수라갯벌 물웅덩이를 관찰했다. 몸통 아래쪽은 흰색, 위쪽은 검은색이다. 휘어질 듯 여리하게 긴 분홍빛 다리로 걸으며 물속으로 검은색 부리를 연신 조아리는 건 장다리물떼새이다. 세어보니 6마리다.
운이 좋았다. 이날 수라갯벌에서 처음으로 목격한 장다리물떼새는 미조(迷鳥). 온대와 열대지방에 분포하며 한국에는 드물게 찾아온다는 길 잃은 철새였다. 참새만 한 크기의 또 다른 물떼새 무리도 주변을 오가며 수라갯벌의 식탁 위에 연신 머리를 박았다. 이날 함께한 일행들의 눈앞에 펼쳐진 이 작은 풍경만 봐도 수라갯벌은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그 앞에서 구중서 집행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앞쪽 미군기지 빨간 지붕은 레이더 돔입니다. 저곳에서 1.35km 떨어진 곳인 수라갯벌을 다 메우고 새만금신공항을 짓겠다는 겁니다. 환경부가 이곳을 '육화'(육지화)된 땅이라고 주장한 건 갯벌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전략환경영향평가 때 발견된 법정보호종은 48종이고, 천연기념물만 23종이 서식하는 천혜의 자연유산 공간입니다."
이날 장다리물떼새를 배경으로 미군기지 사이에 펼쳐진 수라 갯벌은 남북으로 6km, 동서로 2.3km쯤 된다. 200만 평 규모다. 새만금신공항을 건설하려면 그 절반인 100만 평을 해발 7.2m 높이로 복토해야 한다. 군산공항과 연계하기 때문이다. 온갖 생명들이 깃드는 수라갯벌 연안습지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2.5km 길이의 활주로를 만드는 게 새만금신공항 사업이다.
[②수라갯벌 생태] 붉은 비단 위에 펼친 대자연... 첫 마디는 감탄사
군산공항 옆의 드넓은 염습지 앞에 서니 감탄사부터 터졌다. 수라갯벌을 은은하게 감싼 자연의 색조. 갈대가 갯바람 타고 금빛으로 흔들렸다. 그 속에 녹색을 첨가한 건 봄기운이다. 갈대 새순과 갯개미취가 돋았다. 붉은 비단을 깐 것처럼 바닥을 물들인 건 염생식물인 해홍나물이다. '육화'된 땅이 아니라 연안습지라는 징표들이다.
이날 일행들이 처음 마주한 건 고라니 두 마리였다. 가까이 가자 염습지 중간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쑥 솟은 은사시나무 쪽으로 튀었다. 군데군데 고라니 똥이 보였다. 너구리와 삵, 수달 등의 야생동물들이 자기 영토임을 알리듯이 곳곳에 발자국을 찍었다. 장화를 신은 발로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스펀지처럼 물컹한 바닥에선 물이 괴어 나왔다.
"어제와 그제, 이곳에 비가 많이 내려서 이렇습니다. 원래 바닥은 보슬보슬하죠. 간척농지가 아니라 매립농지입니다. 모래가 섞인 만경강 하구 펄을 준설해서 퍼부었습니다. 장마 때에도 3일이면 물이 죄다 빠집니다. 벼농사가 불가능하죠. 새만금 사업을 할 때 '식량위기에 대응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거짓말입니다. 농어촌공사는 '그린농법'이라는 고상한 말로 속이고 있지만 이곳에서 키울 수 있는 건 사람이 먹는 쌀이 아니라 소먹이용 풀입니다."
염습지를 걸으면서 설명을 이어가던 오 단장은 조개무덤 앞에서 멈춰 섰다.
"이 정도 크기면 시중에서 kg당 2만5000원입니다. 백합이라고도 불리는 생합이죠. 큰 강과 모래톱이 형성된 기수역에서 크는 조개인데 과거 새만금은 최대 서식처였습니다. 어민의 생계수단이었죠. 지금은 전멸했습니다. 이건 노랑조개, 해방조개라고도 하죠. 이 서해비단고동은 갯벌이 있을 때 바닥에 깔렸던 겁니다. 배꼽처럼 생긴 이건 큰구슬고동인데요 조개에 구멍을 파서 먹어 치우죠. 염도가 조금만 높아지고 바닷물이 조금만 더 들어온다면 살아날 수 있는데..."
곳곳에 조개무덤이 쌓였지만 새만금사업 이후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것들도 많다. 오 단장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쪽이 흰발농게 서식처입니다."
멸종위기 2급. 자기 몸통만 한 흰색의 큰 집게발을 장착한 흰발농게는 새만금호가 수위를 낮추기 전에 여기서 집단 서식했다. 이들이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것도 육화된 땅이 아니라 연안습지라는 증거였다. 멸종위기 2급 양서류인 금개구리도 집단으로 서식한다. 우리나라 고유종이고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 취약종이다.
"이곳은 철새 도래지입니다. 세계에서 4500마리만 남아있는 멸종위기 1급 저어새 서식처죠. 붉은 어깨도요, 알록꼬리마도요 등 도요새들도 많이 날아옵니다. 겨울철엔 큰기러기, 쇠기러기들이 수천 단위로 날아오죠. 인근 농경지에선 2만 개체들이 관찰됩니다. 수상 태양광 계획지에서는 겨울철에 검은머리흰죽지가 6만~7만 개체를 볼 수 있죠. 새만금호가 만들어진 뒤에 민물가마우지도 많이 늘었습니다. 작년에 옥녀봉 서식지에서 3만8000마리를 관찰했습니다."
새만금신공항은 이곳의 모든 생명체의 서식지와 쉼터를 빼앗는 일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오 단장은 "새의 서식지와 이동루트인 이곳에 공항이 만들어진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그가 예전에 찍었던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장면을 상기시켰다. 미군 전투기와 민물가마우지가 충돌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바로 이 사진이다.
[③새만금호의 수질] 4조 원 들여도 '똥물'... 용존산소 없는 '데드존'
이날 처음으로 간 곳은 만경대교 위이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인데, 바다에 가까웠다. 전북 군산시와 김제시, 부안읍을 이어주는 총 33.9km의 길이의 세계 최장 새만금방조제 안쪽의 새만금호다. 이곳의 수질이 악화돼 2020년 말부터 부분적으로 해수 유통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많이 개선됐을까?
"새만금호의 수질에 대해 용존산소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보통 수질의 오염 정도를 측정하는 데에는 미생물들이 오염된 유기물을 분해할 때 필요한 산소의 양인 BOD(생물학적 산소 요구량)와 유기물을 화학적으로 분해할 때 요구되는 산소의 양인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가 사용된다. 이날 오 단장이 강조한 DO(용존산소량)는 물속에 녹아있는 산소의 양이다.
"일반적으로 수질 문제에 있어서 COD, BOD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새만금은 똥물이 내려와도 용존산소가 많아서 온갖 생명체들의 먹이로 바뀌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만금 사업 이후 염분 성층화 현상이 생겼어요. 염분 농도에 따른 물의 밀도 차이로 아래쪽으로 가라앉은 바닷물과 위쪽에 있는 민물이 섞이지 않는 현상이죠. 2016년부터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측정을 해왔는데요, 새만금호 4m 이하는 용존산소가 거의 없는 무산소층이었습니다."
염분 성층화 현상 때문에 깊은 곳까지 산소가 들어가지 못해 생물들이 폐사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명 '데드존'이 생겼다는 것이다. 농어촌공사는 새만금의 COD, BOD 수치 개선을 위해 강물로 유입되는 오염원을 줄이려고 지금껏 4조 원을 투입했다. 그래도 수질개선이 안되자 지금은 한 달에 10일 동안 해수유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 단장은 "나머지 20일 동안에는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데 어떤 생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면서 "이 곳을 죽은 채로 관리하지 말고 전면적인 해수유통으로 용존산소량 '제로'(0)인 데드존을 없애고 새만금호를 살아있는 상태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④경제성] 미군지기 '제2 활주로' 건설로 지역경제 살린다?
"무안공항 활주로는 고추를 말리고 있습니다. 양양공항도 고추나 고사리를 말리고 있죠. 군산공항이 매년 3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 그 옆에 짓는 새만금 신공항도 뻔하지요. 활주로에 고추를 말리거나 미군 전투기만 날아다니겠죠."
이날 구중서 집행위원장이 수라갯벌 앞에서 탄식하듯 내뱉은 말이다. 구 위원장은 "현재 14개의 국내 공항중 10개가 적자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지역공항 적자액은 총 1170억 원"이라고 말했다. 새만금신공항은 적자액의 수치만 올리는 데 기여할 게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오 단장도 "지금 군산공항은 동네 슈퍼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신공항 비용편익분석(B/C) 분석 결과에서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거들었다.
국토교통부가 2019년 6월 펴낸 '새만금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나타난 새만금 신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 분석(B/C) 결과를 예로 든 것이다. 당시 분석 결과 수치는 0.479. 가령 100원을 투입하면 47원만 건질 수 있는 적자 사업이다. 그럼에도 이 사업이 추진되는 까닭은?
"민간공항의 핵심은 관제권이죠. 그런데 소파협정에 따라 미군 공항인 군산공항으로부터 1.3km 거리에 짓는 새만금신공항 관제권은 미군에 있습니다. 미군이 이용하려면 민간인 이용을 최소화해야 하겠죠. 그래서 적당하게 작은 규모로 미군공항 바로 옆에 사실상 제2 활주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나중에 미군은 군사목적에 사용하려고 군산공항과 새만금신공항 사이에 있는 23만 평 땅도 내달라고 할 겁니다."
오 단장은 "우리 정부는 새만금신공항을 '동남아 허브공항'이라고 선전하지만, 미군의 대중국 견제용 공항이기에 군산공항처럼 중국 노선 취항이 불가할 것이고, 실제 군산시가 중국행 항로개척을 하고 싶다고 미군 측에 요청했는데 거부됐다"고 말했다.
[⑤기후위기] 부끄러운 비행... 414기후정의 파업, '멈춰'
이날 천주교 대전교구 강승수 신부도 동행했다. 강 신부는 한 달에 두 번씩 세종시 환경부 청사 앞에서 수라갯벌을 위한 '길거리 미사'를 봉헌해왔다. 수라갯벌을 나오면서 강 신부에게 이날 목격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고라니가 펄펄 뛰어노는 게 보기 좋았습니다. 이곳에 활주로를 만든다는 건 인간의 오만이죠. 학살입니다. 유럽은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부끄러운 비행)이라고 해서 항공노선 등 2시간 거리 이내 공항은 폐쇄한다고 하는 데... 아름다운 곳에 뭇생명들이 펄펄 살아있는 게 반가웠고, 안타까웠습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이곳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강 신부가 말한 플라이트 셰임.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행기가 285g으로 가장 많다는 데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승용차 104~158g, 버스 68g, 기차 14g이다. 비행기는 기차보다 20배 이상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기후위기의 시대, 세계는 근거리 비행 노선을 폐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6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1-2025년)을 발표하면서 새만금신공항을 비롯해 가덕도 신공항, 제주 제2공항, 흑산도, 백령도, 울릉도 등에 공항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갯벌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종성 서울대 교수팀이 2017~2020년까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갯벌이 저장할 수 있는 탄소는 약 1300만 톤. 연간 26만 톤의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 보고됐다. 이는 자동차 11만 대가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다. 결국, 세계 10위권인 탄소 배출 국가이면서도 저감 정책에 소홀해서 국제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오염을 뒤집어 쓴 우리나라는 여전히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4월 14일 세종에서 기후정의파업이 열립니다. 전국 곳곳에 공항을 추진하면서 생태학살을 자행하고, 기후위기 해결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정부를 향해 '멈춰'라고 외치려고 저는 그날 세종으로 갑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군산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오 단장이 한 말이다. 그와 헤어진 뒤 버스를 기다리며 장다리물떼새와 고라니, 아름다운 총천연색 풍경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비단에 수를 놓는다는 의미의 '수라'는 뭇생명들에게 임금님의 밥상과 같은 자연의 성찬, 즉 '수라상' 같은 존재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7m 깊이 흙무덤 속에 묻어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는 오는 4월 14일 오후 2시부터 세종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에서 "414기후정의파업, 함께 살기 위해 멈춰" 집회를 연다. 이번 집회에는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에 가입한 350개 단체 소속 회원, 814명의 추진위원 및 시민 등 3천여 명이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