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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에는 많은 흠집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렌즈를 통과하는 사실들은 굴절되거나 아예 반사돼 통과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비틀어 왜곡하거나 감춘 사실들을 찾아내 까칠하게 따져봅니다.[편집자말]
최근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도청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미숙한 대응이 질타를 받는 가운데, <조선일보>의 '정부 감싸기'가 눈에 띄고 있다. 처음 문건 유출이 알려질 당시 '러시아 음모론'을 제기했던 이 언론은 도청이 사실로 드러나자 비판의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리고 있다.

<조선>는 미국 정보기관의 기밀문서에 한국 대통령실 도청 내용이 담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 10일부터 '러시아 음모론'을 제기했다. 지난 10일자 5면 기사("러, 자유진영 이간질하려 미 문서 조작해 흘렸을수도")에서 이 언론은 미국 뉴욕타임스 등의 기사를 인용해 러시아가 고의로 문서를 유출했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도청' 아닌 '감청'이라 쓴 <조선일보>
 
 조선일보 12일자 5면
조선일보 12일자 5면 ⓒ 조선일보PDF
 
지난 11일 사설(국가 간 정보 전쟁엔 동맹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우리 능력 키워야)에서는 특정 세력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한 대통령실 입장과 함께 "미국의 감청 의혹을 섣불리 사실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고 썼다. 불법적인 의미의 '도청'이 아닌, 합법적인 의미의 '감청'이라고 쓴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통령실이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입장문을 내자 <조선>은 12일자 신문 1면에 대통령실 입장(기사 제목- 韓·佛·이스라엘 "도청 문건은 위조")을 전하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조선>은 '러시아 음모론'을 거듭 주장했다. 신문 5면 기사(도청대상 모두 미국 우방국...러시아가 문건 조작 가능성)에는 전직 기무사 고위 관계자, 국정원 전 차장도 등장해 '음모론'에 힘을 실어줬다. 문건 유출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당사자가 범인이라는 게 이 언론의 추측이었다.

"진위 결과를 떠나 이번 논란으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이기길 바라는 미 우방국 등 자유민주주의연대에 혼란을 준 것만으로도 이번 사태를 기획한 세력으로서는 큰 성과를 올린 것"(전 기무사 고위관계자)
"이번 사태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 살펴보면 누가 이번 일을 일으켰는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국정원 전 차장)


사실과 달랐던 <조선일보>의 러시아 개입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조선>이 공을 들여 제기한 '러시아 개입설'은 사실과는 달랐다. 미국 CIA 등 정보기관의 도청 내역이 담긴 기밀문서 유출은 러시아가 아닌 미국 방위군 소속 한 병사의 소행이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11일(현지 시간) 미국과 필리핀의 외교·국방장관 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이를 공식 시인했다. 유출된 문건은 올해 2월 28일과 3월 1일자 자료로 확인됐다.

유출된 문서에 한국 정부에 대한 도청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감청 의혹이 허위정보'라고 주장한 대통령실 입장은 이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앞서 도감청 의혹은 허위라고 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12일 미국에서 만난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묻지 말라"며 날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실의 미숙한 대응에 <동아일보>는 지난 13일 사설을 통해 "미국 기밀문서 유출 사건을 다루는 대통령실의 태도를 보면 너무 성급하고 서투르기 짝이 없어 오히려 의구심을 키우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17일자 사설(위기, 불신 키운 김태효 1차장의 신중치 못한 발언)에서 "도감청 문제 자체보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경솔하고 거친 언행들이 위기와 불신을 더 키웠다는 지적을 외면할 수 없겠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오히려 대통령실 대응을 비판하는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조선의 지난 14일자 사설(아마추어식 불안, 미숙한 외교안보 근본 원인 찾아야)에서 "미국 정보기관의 전세계 감청은 공공연한 비밀로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만이 아니라 능력을 가진 각국의 정보기관이 다하고 있다"며 미국 입장을 두둔했다.

<조선>은 문건 유출과 관련한 대통령실 대응 등을 비판하는 민주당을 향해선 "모든 일을 정쟁화하는 민주당이 문제다, 지금 민주당은 한미정상회담도 하지 말라는 식이다"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민주당의 이런 태도는 하루 이틀이 아니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부 외교 안보팀은 이런 국내 정치 사정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동안 자신들이 제기한 '러시아 음모설'에 대한 별다른 해명이나 설명은 없었다.

'미국의 국가안보실 도청 의혹'과 관련해 언론들의 후속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18일자 <조선일보> 지면에서 이를 다루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조선일보#러시아음모설#러시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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