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 노동계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의견서를 노동청에 제출했다. 노동시간 제도 개악은 단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 모든 국민들의 행복한 삶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는 18일 오후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이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당장 노동시간 개악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주 69시간 노동으로 논란이 됐던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법안 입법 예고 기간이 17일로 종료됐다. 정부는 의견수렴을 거쳐 6월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거센 반대 여론을 부딪쳐 관련 절차가 뒤로 밀리는 상황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장의 우려가 없도록 좀 더 세밀하게 보완하겠다고 밝히면서 5월 중 대규모 여론조사와 심층면접조사 등을 실시해 국민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는 보완이 아닌, 폐기가 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대전본부는 그 동안 진행해 온 노동개악안 폐기를 위한 국민서명운동, 문자행동, 의견서보내기 등의 내용을 취합하여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전달했다.
이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지난 3월 6일 발표한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은 노동자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기만적인 포장지를 씌웠지만, 노동자들과 국민들 속에서 낱낱이 실체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실체는 바로 주 69시간까지 장시간집중노동으로 과로를 유발하는 과로사조장법, 연장수당 제대로 못 받는 임금삭감법, 일자리를 줄이는 고용감소법, 휴가는 없이 노동시간만 늘리는 노동시간연장법,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선택권확대법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이러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미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듯 국민 60% 이상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반대하고 있다"며 "이는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전문가들만 골라서 소위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구성하여 안을 만들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조차 반대하는 노동시간 개편안, 왜 하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논의를 생략한 채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노동시간 개악안을 추진함으로써 노동자는 물론, 국민들의 동의를 받을 수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그러면서 한국은 여전히 연간 노동시간이 1915시간으로 OECD평균보다 200시간 이상 길고, 일부 남미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최장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노동자 절반이 초과근로를 하고 있으면서도 60%는 초과근로수당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10명 중 8명은 연차휴가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고, 3명 중 2명은 휴가를 월 1회도 못 쓰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있는 상황인데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자는 정부가 도대체 제정신인가, 오로지 사용자들의 요구 외에 노동자와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처사 아니냐"고 따졌다.
아울러 이들은 "정부는 청년들을 위해 자율적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라고 떠벌리지만 정작 청년들조차 반대하고 있다"며 "정부의 개편안은 노동조합이 없는 작은사업장,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장시간 과로노동으로 내몰고, 청년·여성 일자리를 축소하는 개악안으로 국민들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끝으로 "오늘 우리는 국민들의 분노를 모아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안을 폐기하라는 국민들의 의견서를 제출한다"며 "노동시간 제도 개악은 단지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 모든 국민들의 행복한 삶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간 개악안을 즉각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발언에 나선 김율현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장은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입법예고 40일 동안 이를 규탄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분노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민심에서 한참 벗어난 노동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며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개편은 대한민국 노동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의 삶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개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우 노조법2·3조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변호사)은 "정부는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를 얘기한다"며 "그러나 현장에서는 연차 휴가도 못 쓰는 마당에 무슨 놈의 근로시간 저축이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정책 내용은 고사하고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 또한 너무나 우스꽝스럽다"며 "장관이 노동시간 정책을 내놨는데 대통령은 몰랐다는 듯이 60시간만 하자고 있고, 사회수석은 나와서 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게 무슨 한 나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인가,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할 게 아니라 폐기가 정답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는 과로사 조장하는 개악안 즉각 폐기하라", "장시간 노동 근절하고 노동자 건강권 보장 대책 마련하라", "공짜야근 유발하는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근로시간 기록, 관리를 의무화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친 뒤 기자회견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