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개표기 조작 의혹을 보도했던 <폭스뉴스>가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됐다.
<폭스뉴스>의 모회사인 '폭스 코퍼레이션'이 개표기 업체 '도미니언 보팅시스템스(아래 도미니언)'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7억 8750만 달러(약 1조 390억 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18일(현지시각)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앞서 <폭스뉴스>는 보도를 통해, 2020년 대선 때 도미니언 측이 공급한 개표기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프로그램이 설정되어있었다며 그 탓에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표를 빼앗겼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에 2020년 대선 때 28개 주에 개표기를 공급했던 도미니언은, <폭스뉴스>의 잘못된 보도로 회사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며 16억 달러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2021년 1월 제기했다.
폭스뉴스, "트럼프 측 주장 알려준 것뿐" 항변했지만
앞서 폭스 코퍼레이션은 도미니언 측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각하해달라고 청구했으나, 소송 담당 판사인 델라웨어 상급법원의 에릭 데이비스 판사가 이를 기각하면서 재판이 진행되어 왔다.
재판 과정에서, <폭스뉴스> 경영진이 도미니언의 개표기 조작 의혹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보도를 계속했다는 내부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 증언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도미니언은 고소장에서 "<폭스뉴스>는 개표기 조작 의혹이 이상하고, 미쳤고,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플랫폼의 힘과 영향력을 이용해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라고 규탄했다.
반면에 <폭스뉴스>는 "개표기 조작 의혹을 제기한 트럼프 측 주장을 시청자에게 알려준 것뿐"이라며 "이런 보도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의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폭스뉴스>가 배상금을 물기로 합의하면서 소송전은 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도미니언이 받을 배상금은 2021년 기준으로 이 회사가 올린 매출의 약 8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도미니언 측 변호사 "진실은 중요하고, 거짓엔 대가 따른다"
이 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가짜·왜곡 뉴스 등이 급증하는 가운데 언론사의 책임을 따지는 중대한 사건으로 알려져 큰 관심을 끌었다.
AP통신은 관련해 "이번 합의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보수 언론은 실질적인 재정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고, CNN방송은 "미국 역사상 미디어 회사와 관련한 가장 큰 명예 훼손 합의"라고 전했다.
도미니언 측 저스틴 닐슨 변호사는 합의 발표 뒤 "진실은 중요하고, 거짓말에는 대가가 따른다"라며 "이번 합의는 진실과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폭스뉴스>는 "도미니언의 (개표기 조작) 의혹이 거짓이라는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라면서도 도미니언 측에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는 최고의 저널리즘 기준에 관한 지속적인 약속을 반영한다"라며 "도미니언과의 다툼을 분열적인 재판이 아닌 우호적인 합의로 해결하면서 국가가 이런 이슈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