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청동 흙 천 타본 콜라주 등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미술가. 조미연 작가는 경기 용인 김량장동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지난 2000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전시회를 이어가고 있으며 용인에서는 2018년 마을 김량장 전과 2021년 감량장에서 전을 열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탐미한다
조미연(62세) 작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이른 약속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갱이가 탱글탱글한 옥수수를 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걷기를 좋아하고 두부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술도 좋아하는지 물었다.
"술을 너무 좋아했는데 15년 전쯤부터 안 마셔요. 왜냐하면 한 번 마시면 끝을 봐서."
좋은 안주를 보면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마시고 싶은 마음은 끊을 수 없어. 마음은 끊을 수가 없어."
술은 끊을 수 있어도 마시고 싶은 마음은 끊을 수가 없다는 말이 깨달음을 주는 짧은 시처럼 다가왔다.
조미연 작가는 이화여대 조소과 80학번이다. 중고생 시절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미술가의 꿈을 갖게 됐다. 그림보다 만드는 것에 마음이 끌려 조소과에 입학했다. 용접기 같은 도구도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입학했던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녀도 친구들을 따라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친구 2명과 민속미술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민화를 공부하고 노동자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으며 지방에 내려가 교육활동도 펼쳤다.
이화여대 등 대학원에서 조소과 석사 학위를 마치고 30대에는 프랑스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다 마흔, 조금 늦었다 싶은 나이에 그녀는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면 창피할 것 같아 미술에 관한 공부를 더 하느라 정식 유학이 늦어졌다. 한국 미술에 대해 알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국을 여행하면서 자료를 모으기로 했다.
"실제로 유학을 가면요, 사람들이 '너희 미술은 뭐니' 이렇게 물어봐요. '뭐 보여줄 것 있어?' 이렇게요."
어느정도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서양인들의 물음에 속 시원히 대답할 수 없었다.
"언어적으로도 그렇지만 제가 준비가 제대로 안 되었던 거예요. 제가 뭔가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관련된,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신이 속한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그것이 그녀가 유럽에서 공부하고 난 뒤 오히려 불상이나 고려자기 같은 전통의 아름다움에서 작품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이유인 것 같았다.
'소녀상'은 불상을 모티브로 한 철상이다. 지금껏 불상은 주로 성인 남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조미연 작가는 여성이자 소녀로 표현했다. 깨달음의 문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고 싶지 않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을 모티브로 삼고 싶기도 했다.
이 작품은 사실 여성 남성을 떠나 '선'이 주제다. '참선'을 의미하는 '선'과 조형요소로서의 '선' 모두를 포함하는 중의적 의미의 '선'이다. 참선과 관련해서 평소 그녀는 말을 아낀다. 이야기가 깊어지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양인들은 모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 수 있는 한국의 부처들과 일본과 중국 부처들의 차이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불상을 파고들던 중 우리나라 불상에는 중후하고 무섭고 진지한 표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살짝 웃는 듯한 미소였다. 깨달은 순간 그 느낌에서 나오는 염화미소. 그녀는 이 미소에 주목했다.
미술로 기록하는 김량장 그녀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 프랑스 영국처럼 문화적으로 큰물에서 놀았던 그녀는 유학 후 돌아와 김량장동에 정착했다.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용인으로 내려오면서 따라온 것이다.
그녀는 거의 매일 김량장동 주변을 산책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보니 그곳의 풍경이 급격하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스팔트 위의 교통표지판들은 2년이면 교체되었다. 그 시간동안 표지들이 닳아 없어진 것이다.
집들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새로운 집들이 새로 생겼다. 그런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작품 중에 '땅꽃'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김량장동 주변의 맨홀과 갈라진 아스팔트를 탁본한 작품이다.
영국 유학 시절 학교와 숙소를 오가는 길에서 그녀는 처음 맨홀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 때 발견한 아름다움은 귀국해서 김량장동의 맨홀을 탁본으로 남기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업 결과는 아름다웠다. 그녀에게 맨홀 탁본 시리즈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는 것과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40장 정도 작업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작업할 예정이다.
특본 작업 중 우연히 나온 작품이 '스밈'(또는 '내려놓음')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장 겹쳐 쌓아 놓은 종이 위에 하루동안 물감을 묻힌 탁본 주머니(헝겊에다 솜이나 좁쌀, 톱밥 등을 싸서 묶은 것으로 먹물을 묻혀 사용하는 탁본 도구)를 올려 놓은 뒤 물감이 스며든 종이를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벽에 전시한 작품이다.
맨 위의 종이에는 물감이 진하게 스며들지만 아래로 갈수록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물감이 전혀 묻지 않은 하얀 종이가 남는다.
이 작품은 야외에서 탁본 작업을 하다 작업실에 들어와 쉬던 중 쌓여 있는 종이와 탁본 주머리를 보고 "'물감'을 묻혀 올려 놓으면 스미겠지 얼마나 스밀까? 잘 스밀까?"라는 개구쟁이 같은 생각에서 나왔다.
그녀는 언젠가 전시회에서 퍼포먼스 같은 이 작품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해 같이 전시할 계획이다. 조 작가는 생활지음 갤러리에서 김량장을 주제로 한 '김량장 거닐다'라는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의 만족이 주는 행복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근저에 가로 60㎝, 세로 25㎝ 정도 되는 청동 작품이 있었다. 그 정도 크기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철 값을 물어보니 최소 100만 원 이상이라고 했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 전시를 끝내면 2~3000만 원 빚이 생긴다. 그러면 그는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등 다른 일을 하여 몇 년간 빚을 갚는다. 빚을 갚으면 또 빚을 내어 전시를 준비하고 전시가 끝나면 또 빚을 갚는 식이다.
"일생을 이렇게 해온 거예요."
미술 이외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여행하며 걷는 일이다. 요즘은 경기도에 있는 박물관들을 찾아다니며 강의를 듣는다. 경기도미술관 백남준미술관(아트센터), 그리고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주기적으로 간다며 그녀는 밝게 웃었다. 그녀에게 박물관 나들이는 산책이자 놀면서 하는 공부다.
평생 미술을 한 것도 김량장동에서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계속 배우며 사는 것도 모두 행복했다. 옛것에서 모티브를 찾는 그녀는 왜 시대에 뒤떨어진 작업을 하냐는 오해도 받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옛것에 관한 이해는 '지금 여기'를 사는 자신의 이해와 연결된 것 같다. 지금 그녀의 행복도 참선과 함께 오랜 시간 자신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덕분이 아닐까.
내가 누구인지 끝없이 치밀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면의 행복을 얻는다. 남이 정해주는 것을 따라 남의 껍데기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행복이다. 스스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돌 때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그녀의 얼굴에 소녀상이 미소가 어려 있었다.
위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지역문화진흥원)가 지원하고, 느티나무재단이 주관하는 '2022 협력형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 중 <우리동네 생활기록가 프로젝트>로 '라이프로그'가 발행한 '우리동네' 잡지에 실린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