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이상하고 재밌는 여행을 했다. 여행 멤버는 셋. 대중교통을 언제 이용했던지 까마득한 부부와 6년 인생 동안 시내버스를 아직 한 번도 타보지 못한 어린이의 조합이었다.
하루를 되돌려보자면 이렇다. 경북 안동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바다인지라 주말이면 영덕 여행을 자주 가곤 했는데, 이날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일단 차를 몰고 영덕역으로 간 다음, 기차를 타고 포항으로 가기로 했다. 다소 즉흥적인 여행의 시작이었다.
무궁화호 타고 포항으로 출발
영덕에서 포항까지는 짧은 거리지만, 오랜만에 타는 기차인지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영덕역에 도착했다. 기차 시간이 좀 남아 작은 역 안을 구경하는 사이, 막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빨리 왔네?" 부녀 사이인 듯 어느 아버지가 대학생처럼 보이는 딸을 덤덤히, 하지만 눈웃음을 한 채 맞아줬다. 차를 타고 다닌 이후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오랜만에 기차역 특유의 기다리고 맞이하는 풍경을 만나자 마음이 좀 몽글몽글해졌다.
잠시 후, 포항역으로 가는 빨강, 파랑색깔의 무궁화호를 탔다. 아쉽게도 창밖으로 바다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제 막 푸릇푸릇해지기 시작하는 4월의 연둣빛 풍경들이 기껍게 스쳐 지나갔다. 차로 이동할 때는 운전하는 사람이 여유롭게 창밖을 볼 수 없는데, 이번엔 같은 풍경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린이는 창밖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오랜만의 버스여행
얼마 지나지 않아 포항역에 도착한 우린,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로 잠시 고민했다. 짧은 기차여행 정도만 생각하고 왔을 뿐, 거기까지였다. 사실상 무계획인 셈이었다.
그래서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느냐, 렌트카를 빌리느냐, 버스를 타느냐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오랜만의 버스 여행이었다.
먼저 포항 관광 지도를 얻은 우리는, 지도 속에서 어린이가 고른 포항 크루즈를 타러 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랐다. 여전히 버스 요금이 1200원인 것에 감탄하며, 같은 방향으로 가는 같은 버스 내 사람들에게 왠지 친밀감을 느끼며 가다가 환승을 위해 중간에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실시간 버스 운행 정보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남편은 버스가 좀 전에 떠난 것 같고 다음 버스가 다시 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니, 곧 버스가 도착하는 근처의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을 해서 버스를 타자고 했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고, 그곳에서 다시 무사히 버스를 탔다.
그렇게 도착한 포항 운하관. 크루즈는 대기 시간이 30~40여 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크루즈를 타는 데 소요되는 시간 역시 30~40여분이었다. 포항역에서 영덕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 시간을 맞추기엔 좀 빠듯한 시간이어서 배를 타고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직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윽고 기다림의 시간 끝에 오른 작은 크루즈는 아파트며 죽도시장, 포스코 등이 바라보이는, 도심 한가운데서 즐기는 유람선이었다.
해안절경을 감상하는 유람선과는 또 다른 색다른 느낌. "와" 같은 감상을 남길 새도 없이, 크루즈의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우린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뛰고 뛰고 또 뛰고
걸어갔지만 버스는 방금 떠난 듯 했다. 근처의 또 다른 버스 정류장으로 좀 걸어가서, 직행으로 포항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약간 거리가 있는 탓에 잠깐 걷던 어린이는 힘들다 주저앉았다. 남편은 어린이를 들쳐 업고, 나는 가방을 매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 냅다 마구 뛰기 시작했다.
실시간 버스 운행 정보는 미묘하게 1~2분 정도가 어긋났고,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뛰었다. 뛰다보니 자꾸만 뛰어대는 이 상황이 엄청 웃겼다. 엄마인 내가 깔깔 웃었더니, 아빠 등에 업혀있던 어린이는 자기도 이젠 스스로 갈 수 있다며 내렸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저 멀리서 우리가 탈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버스 시간에 딱 맞췄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찰나, 어어... 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어? 왜지? 포항역 가는 버슨데?" 당황스러워하는 우리의 말을 들은 한 어머니께서, 바로 옆 정류장을 가리키며 저기서 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다행히 빨간불이라 버스는 멈춰 있었고, 우린 또 뛰었다.
그렇게 탄 버스이건만, 유감스럽게도 버스를 타고 가다보니 차가 막혀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았다. 결국 중간에 내려서 바로 택시를 탄 뒤 기사님께 마지막 기차임을 어필하며 기차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여쭤봤다.
"거리야 5분 거린데, 주말이라 역 바로 앞에서 차가 꽉 막혀서..."라고 말씀하시던 기사님은, 이내 오전에 왔을 때만 해도 막혔는데, 지금은 다행히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남편은 "덕분에 기차 타게 됐습니다"란 감사 인사를 전하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핸드폰으로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바로 저~기 눈앞에 역이 보이는데, 어느새 차들은 멈춰서 갈 줄을 몰랐다. 1분 단위로 상황이 바뀌는 기분이었다. 역 앞에 즐비한 버스, 택시, 자동차 행렬들. 결국은 3분여 만에 기차표를 다시 취소했다. 800원의 수수료가 멀어져 갔다. 우린 정확히 기차 출발 시간에 역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 기차 놓치고 시외버스 타고 영덕으로
야호. 긴장감 넘치는 택시 유람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보자.
왔던 길을 되짚어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시외버스가 오기까지 30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터미널 바로 앞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3분이면 나온다던 음식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결국 뒤늦게 나온 음식을 욱여넣어야 했다.
게다가 이제껏 경험해온 바론 터미널 앞 음식점이 맛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덕분에 그저 배고픔을 달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데, 무심히 젓가락을 가져갔던 딱 하나의 반찬에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건 다름 아닌 작은 가자미구이였는데, 놀랍게도 유일하게 무척 맛있었다.
역시 해산물은 바닷가마을에서 먹어야한다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마지막으로 희디 흰 가자미살을 한 번 더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양쪽 볼이 잔뜩 불룩해진 채로 바로 코 앞 터미널까지 달린 뒤 가볍게 시외버스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버스가 출발했다. 나이스!
비로소 영덕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니, 스펙터클했던 오늘의 여정에 대한 소회(?)가 밀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만 자동차, 기차, 시내버스, 배, 택시, 시외버스 총 6가지 종류의 이동 수단을 이용했다. 그 중에서도 환승에 환승을 거듭하며 버스를 제일 많이 탔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까 우리에게 옆 정류장에서 타야한다고 알려주신 어르신께 인사를 했던가 긴가민가했다. 감사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이날 하루, 여행 목적지였던 크루즈를 타는 시간은 40여 분 정도. 그 외의 시간은 모두 뭔가를 타고 이동했다. 이렇게 여정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행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사실 차가 없던 시절의 여행은 항상 이랬는데. 오가는 여정 역시 흥미진진한 여행의 일부분이었다. 여정 덕분에 여행은 기억에 더 오래 남을 터였다.
끝으로 마무리. 여행 즐거웠고, 우리 차가 최고다. 그런데 왜인지, 이 불편하고 이상하고 재밌는 버스 여행을 언젠가 또 다시 할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tick11)에도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