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31일을 끝으로 나는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36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큰 대과 없이 무사히 정년을 맞게 한 신체적 건강과 무사함에 감사할 따름이다.
교직 생활을 돌이켜보면 기쁨과 화남, 즐거움과 슬픔, 사랑과 미움 등의 감정이 교차하곤 한다. 아이들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믿음과 존중 등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교사의 선의가 왜곡되는 답답함과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따른 화남과 미움의 감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는 자책과 절망, 이유 없이 몰려오는 교직에 대한 권태감을 느끼기도 했다.
교직 마지막 학기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어느 날은 까닭 없는 슬픔이 밀려와 눈물을 겨우 참은 날이 있었던 반면에 조금 있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기쁨이 일어나기도 했다.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감정의 양향성이 60대에 나타나고 있었다. '제대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매사에 조심성이 많아지기도 했고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은근한 기대와 불안,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따로 마련한 계획은 없었다. 당분간 그냥 계획 없이 놀기로 했다. '무계획의 계획'도 계획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기상 시간은 종전과 다름없이 오전 6시 30분. 늦은 기상과 아점은 게으름의 시작점이다. 당분간 시간 가는 대로 살기로 했다. 무계획이 게으름은 아니라는 굳은 믿음과 함께.
은퇴 후에 남는 게 시간이고 생존을 위해 가정일에 동참하기로 했다. 우선 아침 설거지와 방 청소를 하기로 했다. 하루 두 끼 식사와 만 보! 체력은 좋아졌으나 체중이 5kg이나 빠져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다.
하루 두 끼 식사는 순전히 귀찮음의 소산이다. 매번 밥을 차리는 것이 싫어서 점심에는 간편식인 라면을 먹게 되었는데 평소 밀가루의 위해성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결국 우유에 콩을 넣어 갈아 먹기 시작했다.
퇴직 후 혼자 직장을 얻어 제주도에 살려고 했으나 아내의 만류로 잠시 미뤄 두었다. 결혼 후 아내는 줄곧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아이들 양육과 집안 살림에서 시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은 분명하나 아내 또한 어려움이 많았으리라 짐작한다. 부부가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아내로서는 남편의 제주행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성격과 독립된 생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제주도 행을 결행하는 것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결국 나의 제주도행은 아내의 은퇴 후 동행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된 불확실한 미래가 되었다. 그러나 은퇴자들의 로망인 다른 지역에서의 일주일 혹은 한 달 살기, 여행자의 삶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은퇴 후 두 해가 지났다. 은퇴자의 시간은 빠르면서 더디게 간다. 권태로움과 할 일 없음의 반복된 일상이다. 지난여름에는 호주에 사는 둘째 아들이 3개월 휴가를 받아서 귀국했다. 큰 변화 없던 일상에서 나름대로 화려한 날의 연속이었다. 아들과의 제주도 여행, 지리산 둘레길 트래킹, 장안산과 모악산 등산, 동네 뒷산 산행 등 심심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아들의 출국 후 일상은 평온함보다는 화려함 뒤의 권태로움이 대신 하였다. 이제 '무계획의 계획'이 약발을 다 했으니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했다. 기상 시간을 오전 7시로 조정했고 1년 전부터 하루 만 보 걷기에서 칠천 보 걷기로 줄였다. 체중은 2kg 정도 늘어났고 체력은 여전히 좋아 한라산 윗세오름 산행을 한 번 쉬지 않고 오를 수 있었으며, 콜레스테롤도 정상 범위 이내의 매우 좋음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할 일이 없음은 일상의 무료함을 가져오고 반복되는 시간의 존재는 고통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운 좋게도 우리 지역에는 특성화 도서관이 여러 개 있다. 지난해 9월부터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서관의 자원 활동가로 일하게 되었다. 화·수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 4시간의 자원 활동을 한다.
자원 활동가로서의 뿌듯함과 함께 일당 1만 원의 수입까지 생기니 일석이조의 남는 장사이다. 도서관 가는 날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이동한다. 도서관 주변에서 하차하면 오전 8시 10분, 40분 정도 천변 걷기를 하고 출근한다. 퇴근한 아내에게 도서관 자원 활동가로서 첫날 일정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정원에 물을 주고 낙엽을 줍고 풀을 뽑았네."
"뭐라고! 정원에 물을 주고 낙엽 모으고 풀 뽑는 게 자원 활동가가 할 일이야! 집에 있는 화초에 물은 한 번 안 주면서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
"말을 해야 알지. 화초에 물 줄 때를 말하라고. 내가 물을 줄 테니까!"
아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면서 집 안 사람들에게 소홀한 집안 내력까지 들먹이며 화를 낸다. 사실 도서관 자원 활동가의 일은 도서관의 서고 정리 등 간단한 일들로 부담 없고 쉽다. 단지 출근 첫날 어떤 일이든지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이 과잉행동으로 나타난 것뿐이다. 횟수만 줄었을 뿐 도서관 정원의 물주기, 낙엽 줍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아내에게는 비밀이다.
최근에는 도서관 팀장님의 권유로 한 두 분의 도서관 방문객들에게 도서관 개관일, 책 보유량, 코너별 소개 등의 안내를 하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당신의 일이 아닌데 왜 하냐?"라고 핀잔하지만, 지적 허영심이 있는 교사들의 일반적인 특성상 '아는 척' 하는 일이란 기분 좋은 일이라 계속하고 있다.
도서관 자원봉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산길로 퇴근한다. 얼마 전까지 차도를 따라 귀가했으나 최근에는 산길로 집에 간다. 무릎의 뻐근함은 있지만 작은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 산길의 호젓함이 육체적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난봄, 작가인 제자에게 자신의 일상을 담은 책을 선물 받았다. 책을 잘 받았다는 전화 통화와 함께 은퇴 후의 무료함을 토로하니 제자는 "글을 쓰면 시간이 잘 지나간다"고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물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매우 집중해서 다가가는 작업으로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되는 일이라고 추측한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진지해지고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창작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일, 관심사 혹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경건해질 것 같아 은근히 기대된다. 제자 스승은 1~2주에 한 편 정도의 글을 쓰라고 권한다.
글을 쓰기 위해 선택적이고 인위적인 경험을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할 것 같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위험과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나가면 좋지 않을까?
은퇴자의 시간은 느리면서 빨리 간다. 매일 맞이하는 시간 시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일상을 무료함과 심심함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다. 하루 7천 보를 걸을 수 있는 시간과 주 2회 도서관 자원 활동,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은 꾸준함과 시간이면 충분하다.
남은 시간을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으로 보내고 싶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가슴 벅찬 기대감도 좋지만 담담함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