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으면 자연스럽게 '국수'가 떠오른다. 말갛게 우려낸 육수에 파 송송 썰어 얹은 잔치국수다. 귀찮을 땐 국수만 끓여 그릇에 하얗게 담아 김치 한 가지만 놓고 먹기도 한다. 이 기사에선 내 국수 이야기가 아닌 어느 어머니들의 국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올해 나는 어머니들에게 그림책과 시를 읽어 드리는 일을 하고 있다.
"살다 살다 내가 그림책을 보고 시를 읽을 줄 누가 알았겄어. 생전 처음여."
70대 초반부터 80대 중반의 어머니들이 모인 이곳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생생한 목소리가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쳤고 6.25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이며, 그들의 표현대로 '찢어지게 가난해서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세대가 모여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 주 수업은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를 읽고 국수에 대한 기억과 추억,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나만의 국수 요리법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구성했다.
어머니들의 "엄마" "우리 엄마" 이야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수 얘기로 소란스럽다.
"시를 읽고 나니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네. 이게 뭔 일여."
누군가의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국수 얘기가 길게 풀어지며 순식간에 끓는다.
"나도 그려. 지긋지긋하게 먹어 쳐다도 보기 싫은 게 국수인디 왜 엄마가 보고 싶은지 모르겄네."
이게 무슨 일? 어머니들 입에서 "엄마" "우리 엄마"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국수라면 징그러서 안 먹어. 허구헌 날 새참으로 끓여내느라 죽는 줄 알았어. 눈만 뜨면 국수를 끓였어. 그렇게 세월 다 보냈네. 워쩌, 국수라도 먹어야 사니께 별수 있깐디. 나한티는 웬수 같은 국수였어."
당장이라도 국수 한 그릇 끓여 낼 것 같이 국수 얘기로 진지한 이야기 마당을 펼치는 어머니들을 보니 국수는 서민 음식의 꽃이 아닌가 싶다.
조선시대 최고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달걀을 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칼국수로 하여 꿩고기 삶은 즙에 말아서 쓴다"고 했고, <시의전서>에는 "탕무를 넣은 고기장국에 토렴하여 말고 잡탕국 위에 웃기를 얹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으로 보아 국수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콩국시여. 징그럽게 콩도 많이 갈았고 징그럽게 국시도 많이 먹었어." 국수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손사래 치는 어머니도 계신다.
"국수만 먹어도 호강이었지. 그것도 없어 만날 풀죽만 먹은 날도 숱하게 많았응게."
국수에 빠진 어머니들의 얘기가 즐겁기도 하면서 애타던 시절 얘기에는 눈물이 난다. 서로의 짠함이 내 것인 듯 함께 울어주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국시는 잘 끓여 먹어. 인자는 따로 번거롭게 육수 안 내고 다시다로 맛을 내는디 그 맛도 개안혀. 종류가 을매나 많은지 입맛대로 넣어서 끓이니 편해서 좋대. 옛날에는 하도 많이 먹어 질리니께 옆집 허고 바꿔 먹기도 했어. 집에 없는 팥칼국수 허고."
신혼 시절 가난한 집에 시집 와 일주일 내내 국수만 먹으며 살았던 게 지금도 서럽다며 울음을 쏟는 어머니에게 가장 나이 많은 어머니가 점잖게 한마디 하신다.
"울 것 읎써. 지금 잘살고 있는디 뭘 울어. 다 지난 일인디. 지금이 젤 중허지. 그깟 옛날 일."
그 모습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내 앞에서 가난살이 얘기하지 마라. 내 가난은 너희들 가난에 비하면 상급'이라는 듯 들린다.
"에고, 울 엄니도 국수 많이 끓이며 사셨겄네. 난 그것도 모르고 만날 국시만 준다고 투정하기 바빴으니께 말여. 가난도 물림인가 나도 국시깨나 끓이며 살았지. 징그럽게 끓여 먹었어. 요즘도 가끔 국시는 끓여 먹어. 자식들 다 떠난 집에서 혼자 밥 먹기 거시기 헐 때 휘리릭 끓여 먹곤 혀. 근디 옛날 맛은 아녀."
국수와 관련하여 이토록 다양하고 간절하게 할 얘기가 많은지 몰랐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대 어머니들의 정서는 무슨 빛깔이며 어떤 한숨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국수 한 그릇의 의미는 무엇이기에 80이 넘은 어머니들의 입에서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시는 것일까.
"말만 들어도 눈물난다"는 국수
내가 좋아하는 국수는 어머니들의 국수와 결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끝마다 '징그럽다'는 말을 입에 달면서도 '눈물이 난다'는 국수, 어머니들의 국수는 목숨이 달린 한 끼의 간절함이었고 살아내야 하는 절박한 허기였음을 안다.
손택수 시인의 <뚝방 국수>는 이렇다. "먼 항구로 일 나간 내 아비와 어미가 두고 온 아이를 생각하며 먹던 국수"라고.
국수는 어미의 음식이다. 도드라진 구석 없이 그냥저냥 묵묵히 삶을 견디며 살아낸 세상 모든 어미처럼 밋밋하지만 한 그릇 먹고 나면 포만감에 마음 따뜻해지고 위로가 되는 어미의 품 같은 맛을 가진 국수, 슴슴한 것이 모두를 품는다.
전날 먹은 국수 얘기를 꺼낸 한 어머니의 국수 얘기에 모두 빵 터졌는데, 사연은 이러했다.
베트남 며느리와 병원 다녀오는 길에 배가 고프고, 다리에 힘 풀린 시어머니.
"얘야, 어디 들어가서 국시나 한 그릇 먹고 가자" 하니 며느리는 "엄마 나 베트남 국수 먹을래" 하더란다. "그럼 너는 베트남 국시 먹고 나는 한국 국시 먹을란다" 하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한국 국시는 없고 베트남 국시 한 그릇 어영부영 먹고 왔다며 그 국수도 그럭저럭 먹을만했다고.
국수 맛은 어디나 비슷해서 한국의 시어머니가 베트남 며느리와 국수를 먹는 세상이 됐다.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이면서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시인의 <국수>이다.
예전 백성의 맛, 민중의 맛, 보통의 아는 맛이 바로 국수다.
우리의 모든 순결한 언어는 음식 앞에서 쓰인다. 특히나 하얗고 슴슴하고 순한 국수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신체를 따라다니는 입 안의 언어, 어떤 음식을 먹든 맛을 음미하며 자기만의 최고의 언어로 음식을 탐하고 취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앉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뜨거운 한 끼 국수를 끓일 것이다.
국수처럼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순한 세상이면 좋겠다. 세상 화사한 산해진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오롯이 존재하는 국수, 모두를 포용하는 어미 같은 국수가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을 깨끗하고 따뜻하게 품을 수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