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에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과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면 나는 경북 경주 감포바닷가에 있는 숙소에 가서 하루 묵는다.
팔을 뻗으면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에 손을 담글 수 있을 것같은 베란다에 나와 앉아 바다를 보며 감포항에서 사온 싱싱한 회를 즐기고 밤에는 쉴새없이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호사도 누린다. 싱싱한 회를 사기 위해 감포항에 들르다가 오래된 포구의 정취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1925년에 개항한 감포항은 경주 최대 어항으로 손꼽힌다.
겹벚꽃은 이미 졌지만 봄을 맞은 감포가 그리운 나는 결국 집을 나섰다. 지난 4월 28일 감포항 바닷가 뒤쪽 읍내거리로 들어와 차를 세우고 걷다보면 대부분 나즈막하고 오래된 집들이다.
옛 감성이 물씬 살아나는 항구다방 간판도 보인다. 감포한의원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안쪽에 1925 감포가 있다. 100년 된 목욕탕을 개조한 뒤 카페로 탈바꿈하여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카페 안에는 두 개의 목욕탕과 사물함, 그리고 작은 브라운관 TV가 놓인 카운터 등 옛날 목욕탕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차를 주문하니 대기번호표를 옛날 목욕탕 사물함 열쇠로 준다. 잠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카페에서 나와 옆골목으로 들어섰다. 해국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 사이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지는 않지만 벽에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마음은 정겹고 편안하다. 골목중간, 감포제일교회앞에 해국계단이 나온다. 해국길을 찾는 사람들의 포토존이다.
계단에 크다란 해국이 그려져있다. 계단 끝에 탁자가 하나밖에 없는 아주 작은 카페 아르볼이 있다. 사진예술가인 주인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음악과 사진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포항 곁에 있는 전촌항에도 들러 전촌용굴을 둘러보았다. 사룡굴과 단용굴이 있는데 단용굴은 작은 언덕을 넘어야 하기에 목재 데크가 끝까지 닿는 사룡굴만 구경했다. 파도와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조각품이다. 12월에서 1월 중순까지는 떠오르는 해를 함께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일찍 경주로 나와 팔우정 해장국거리에서 콩나물해장국으로 요기하고 첨성대와 꽃단지를 구경했다. 그리고 은근히 입소문이 나있는 오릉 이팝꽃도 찾아보았다. 풍성하게 피어난 이팝꽃이 봄을 말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