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동상이몽 나란히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영 실버 커플들을 자주 보며 그들의 속마음을 짐작해 봅니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영역에 따로 존재하는 부부의 세계.
동상이몽나란히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영 실버 커플들을 자주 보며 그들의 속마음을 짐작해 봅니다. 함께 있지만 각자의 영역에 따로 존재하는 부부의 세계. ⓒ 정경아

60대의 마지막 봄. 이대로 보낼 순 없지. 여중 동창회를 따라 남도 여행을 왔다. 열다섯 나이 때 친구들을 만나면 순식간에 발생하는 매직. 참새들처럼 재잘거리고 까르르 웃던 소녀시대로 돌아간다.

내년은 칠순. 아들딸들은 칠순 행사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다. 막상 당사자인 친구들은 파티보다 한달살이나 반달살이를 떠나고 싶어 한다. 이미 제주도를 시작으로 지리산 아래 산청에서 두 번 째 반달살이를 다녀온 친구도 있다. 그 다음엔 서남해안 어느 섬살이 한 달을 기획 중.

혼자 또는 두셋씩 함께 간다. 이탈리아 토스카나로 한달살이를 가겠다며 매달 기금을 적립하는 친구들도 있다. 더 늦기 전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는 친구는 날마다 준비 삼아 8천보를 걷는단다. 한 가지 뚜렷한 경향은 중년 이후엔 대개 남편보다 친구랑 가는 걸 더 좋아한다는 거다. 왜일까?

화장실 독립이 중요할 나이

"남편이랑 가면 집에서처럼 온갖 수발을 다 해줘야 하잖아. 정말 지겨워. 혼자 가거나 친구들끼리 가면 각자 알아서 척척 챙기잖아. 심지어 서로 도와주지. 완전 편해. 이러니까 여행이 진짜 즐거워지더라."

"한달살이하면 남편이나 아이들이랑 연락을 별로 안 하게 돼. 카톡으로 생존 신호 정도만 보내는 거야. 남편 퇴직 후에 집안에서 자꾸 마주쳐서 짜증날 일이 많았거든. 근데 떨어져 있으면 밥 잘 챙겨먹으라는 둥 서로 덕담만 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이건 딱, 내가 원했던 간헐적 별거야. 일 년에 한 달은 따로 살고 싶었거든."

모두들 공감의 박장대소!

"내 남편은 저녁에 삼겹살 구워 소주 마시는 걸 좋아해. 난 저녁에 집안에 고기 냄새 배는 게 엄청 싫은데. 근데 지난 번 나 혼자 지리산 둘레길 마을에 일주일 있을 때 체중이 1킬로 줄었어. 저녁에 채식을 하니까 소화가 잘돼 속도 편하더라."

내 맘대로 메뉴를 정하고, 식사량을 조정할 수 있는 것도 떨어져 살기의 이점이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흔히 발생하는 수면장애 때문에 부부가 방을 따로 쓰는 경우는 많다. 자고 깨는 시간이 달라서 서로 수면의 질을 해칠 우려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화장실도 따로 쓰게 된다는 사례 발표도 있다.

"우리 아파트가 크진 않지만 화장실이 두 개야. 나이 들면서 이게 정말 좋더라고. 각자 화장실 독립을 한 거야."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만의 방과 자기만의 화장실을 확보하는 게 점점 중요해지는 나이.

요즘엔 자기만의 냉장고를 가진 남편도 있다고 한다. 음식 투정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다만 평생 외식을 해서 집밥 취향이 아닌 까닭이라나. 술도 종류별로 사다 놓고, 자주 해 오는 포장 음식도 통째 넣을 수 있어서 냉장고 독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던 케이스.

서울 집과 남편이 사는 대구 집을 오가며 반반살이를 하는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다. 2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던 그녀.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젠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졌단다. 어깨 통증에다 갑상선 기능 저하로 집안 일이 버거운 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졸혼 이야기 따위는 꺼내지도 말라고 한단다. 생각 끝에 딸이 제안한 '결혼 안식년' 아이디어를 두고 요즘 남편과 토론 중.

함께 살지만 한 해 동안 서로의 외출이나 여행 등 신상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는 무간섭 원칙을 지키자는 게 안식년이란다. 끼니도 되도록이면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독립 훈련이다.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무슨 결혼 안식년이 필요하냐고 퉁퉁 불어있던 우리 남편이 좀 달라졌어. 1년은 너무 길고, 6개월이면 밀어주겠다는 말이야." 친정 자매들과 함께 고향집에서 늦잠을 많이 자는 게 첫 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란다.

아내에게도 집안일 정년퇴직이 필요하다

황혼 이혼이나 졸혼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히 많다. 여태 잘 참고 살았으니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거다. 남의 일이라면 일반론은 손쉽다. 하지만 당사자에겐 이보다 더 화급한 사안이 없다. 예전보다 훨씬 길어진 노년을 그저 밋밋한 여생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다. 문제는 건강이다.

정년퇴직이 불가능한 주부들은 30년 근무 후 대개 직업병을 앓는다. 무릎 관절염, 만성 어깨 통증에 두통, 척추측만이나 디스크 등. 주부들의 직업적 질환에 무관심한 남편과 사회가 이 병을 앓는 이들에게 우울증까지 가져다준다.

한편 퇴직 후에 음식 준비나 청소, 빨래를 분담하는 남편들은 얼마나 될까? 오히려 퇴직 후 아내의 태도가 변했다고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밥상이 초라해졌다거나 사사건건 남편을 무시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거다. 자식들이 대개 엄마 편을 드는 것도 내심 괘씸하고 억울하단다.

대개의 경우, 남편은 아내를 가사노동에서 퇴직시킬 생각이 거의 없다. 언제나처럼 아내의 세끼 노동과 청소, 빨래는 그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백년해로가 끔찍하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한때 꿈꾸던 백년해로! 막상 백년 가까이 살게 되니 백년해로가 싫어진다는 거다. 세끼 준비 노동을 포함한 집안 일이 1/2로 줄어들지 않으면 가출하고 싶은 게 아내들의 속마음이다.

혹시라도 아내 역시 정년퇴직을 하고 싶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노화가 진행될수록 집안 살림은 이제 그녀에게 벅차다. 가사노동의 업무 강도를 예전처럼 유지해 나갈 체력이 없다는 뜻이다.

은퇴한 남편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이럴 때 집안일을 분담하겠다는 남편의 선제적 행동은 어떨까? 설거지나 세탁기 돌리기와 세탁물 개키기, 또는 재활용품 배출 활동을 강추한다. 무릎 굽히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아내 대신 화장실 청소를 맡는다면 아내 배려지수 A 플러스 등급!

이참에 밥과 반찬도 제대로 만들어보길 권한다. 유튜브 속 친절한 요리 고수들의 레시피를 따라 해보시라.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을 읽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이 식기 전에, 찌개가 졸아 들기 전에 사랑하는 이가 숟가락을 들기를 평생 기다려온 아내의 마음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손주 케어도 공조가 필요한 영역이다. 아내가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게 손주랑 놀아주고 제때 간식을 먹이는 남편을 아내는 사방팔방으로 자랑할 것이다. 아내를 돕는다는 생각보다 나눠서 한다는 마인드를 장착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이미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분담해 아내의 노동을 줄여주고 있는 남편들은 사랑받고 있다. 그런 센스쟁이 남편이 오래 오래 살기를 아내는 은근히 바랄 것이다. 또한 아내 스스로 남편의 장수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펼칠 것이다.

아내 또는 남편은 길어진 노년을 함께 걸어가기에 제일 괜찮은 친구다. 아내로부터 황혼 이혼이나 졸혼 신청을 받고 싶지 않다면 자잘하게 실천 가능한 행동 수칙을 오늘부터 실행하면 된다. 유병장수시대, 이혼 예방 활동의 핵심은 나이 들어가는 상대를 향한 측은지심을 당장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머지않아 그녀의 함박웃음을 보게 될 것이니.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chungkyunga


#가사노동#한달살이#주부 직업병#주부 정년퇴직#이혼 졸혼 예방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직장생활 30여년 후 베이비부머 여성 노년기 탐사에 나선 1인. 별로 친하지 않은 남편이 사는 대구 산골 집과 서울 집을 오가며 반반살이 중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