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시민기자들이 쓰는 달콤살벌한 순도 99.9%의 현실 직장인 이야기.[편집자말] |
"안녕하세요, A 업무 권한 신청하려고 합니다. 재무팀 OO님께 안내받고 메신저 드리는데 담당자 맞으실까요?"
"안녕하세요, 그 업무는 제가 아니라 V팀 B님께 문의하셔야 합니다."
조직이 클수록 담당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 같이 업무 하는 팀이 아니고서야 누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기란 쉽지 않다. 특히 시스템이나 정산 업무 관련해서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만 문의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안에 대한 담당자를 알기 어렵다.
얼마 전, 처음 해보는 업무로 경리 팀에 문의를 했다. 경리 담당자의 경우, 각 팀을 담당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빠른 편이다. 그런데 이번 사안은 경리 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스템 담당자를 찾아야 하는 문제였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경리팀 담당자도 해당 이슈를 맡고 있는 시스템 담당자를 정확히는 모르셨다. 안내받은 분께 문의를 드렸더니 한참 뒤에 "해당 업무의 경우 제가 아니라 A님께서 담당하십니다"라는 답변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최근 인수인계를 받으신 B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경력 입사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 안 좋다. 담당자 찾기가 하나의 업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한다.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팀에 업무 요청 또는 문의를 할 때면 한 사람만 거쳐 끝날 때가 거의 없다. 두 세 다리 건너 마침내 해당 업무의 담당자와 연결될 때면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갈증과 담당자 찾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에 대한 아까움을 느낀다.
담당자를 모를 때
직장에 다니는 지인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회사에서 담당자가 궁금할 경우, 물어 물어 찾는다가 67%였고, 바로 찾을 수 있다는 20%에 그쳤다. 또한 회사에서 담당자를 찾기 위해 조직도 또는 메신저를 가장 먼저 찾아보고, 그래도 잘 모를 경우 동료들에게 물어본다고 답했다.
나 역시 담당자를 찾기 위해 조직도를 자주 들여다보는 편이다.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관할 부서의 조직도에 들어가면 각자의 역할(R&R)이 간략하게 작성되어 있다. 그러나 큰 범주의 역할이 기재되어 있어 세부 사안에 대해 문의하려는 경우 누가 담당하는지 헷갈릴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R&R은 본인이 업데이트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분장이 바뀔 경우 시스템에 자동으로 연동되지 않는다. DB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담당자를 잘 모를 때, 문의할 팀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다. 지인을 통해 담당자를 확인하거나 혹은 지인이 업무에 대해 알고 있다면 바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인맥을 넓히라는 선배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체감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경력 입사자 또는 아는 사람이 없는 팀에 문의해야 할 경우, 사람들은 조직도를 살펴본다.
"안녕하세요, D팀의 OOO입니다. C 업무 관련하여 문의사항이 있는데요, 어떤 분께서 담당하고 계실까요?"
대개는 조직도의 맨 아랫사람, 해당 팀의 막내인 저연차 사원에게 문의를 한다. 조직도의 맨 아래에 있어 본 경험이 있는가? 직장 생활을 했다면 누구나 그 자리의 고충이 무엇인지 대략 알 것이다. 조직도의 맨 아래에 있으면 모든 문의의 창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한때 조직도의 맨 아래에 있으면서 어떤 부서, 어떤 팀이냐에 따라 받는 질문이나 요청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영업 부서에서 조직도 맨 아래에 있으면 취합 업무 요청이 많고, 지원 부서에서 맨 아래에 있으면 팀 전체 업무에 대한 문의와 담당자 문의가 가장 많이 온다.
내 업무 하랴, 쏟아지는 문의들에 답변하랴, 어떨 때는 응대하는 것이 하나의 업무가 될 때가 있다.
업무 효율성을 따진다면
챗GPT에게 질문하면 데이터에서 불러온 답변뿐만 아니라 정보들을 조합해 창의적인 답변을 받는 시대이다. 이렇게 효율적인 시스템이 있지만 빈번히 발생하는 조직 내 비효율은 생각보다 오래 잔존한다. 모라벡의 역설(어려운 일은 쉽고, 쉬운 일은 어렵다)처럼 오히려 간단한 것들이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
주니어 사원들에게 메신저로 어떤 질문들을 받는지 물어보았다. 대개는 특정 업무 이슈를 해결하려 하는데 누구한테 문의하면 되는지, 어떤 프로세스로 처리하면 되는지 등의 담당자와 업무 매뉴얼에 관한 문의였다. 이러한 문의는 계속 비슷한 내용으로 문의가 들어오기 때문에 매뉴얼화해 조직에 게시, 공유한다면 업무 비효율이 줄어들 여지가 크지만 아직도 문의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회사 업무가 생각보다 명확하게 나눠져 있지 않고 처음 마주하는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나 역시 다른 팀에 문의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내게 오는 문의들도 당연히 모를 수 있고, 궁금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친절하게 안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업무가 바빠 메신저도 다 못 읽고 쌓여 있는 상황에서 팀원이 자리에 있는지 묻거나 내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임직원 복지의 배우자 적용 방법' 등을 묻는 문의를 받을 때면 업무 효율을 떠올리게 된다. 매뉴얼이나 시스템이 해결할 수 있어 보이는 질문 유형들을 받을 때면 좀 더 친절하고 가시적인 시스템과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령 지인이 다니는 회사는 챗봇을 통해 많은 질문들을 해결한다고 한다. 챗봇에게 모르는 것을 키워드나 문장으로 물으면 데이터베이스에서 비슷한 정보를 가져와 답변을 제시해 준다. 챗봇이 담당자를 알려주거나 매뉴얼을 제공해 사람에게 물어보는 과정을 없앤 것이다. 우리 회사도 챗봇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검색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UX가 편하지 않아 결국 동기나 팀원들에게 물어봐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1분기 챗GPT를 기점으로 인공지능이 많은 직장인의 업무 편의성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 편의성 중 하나가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변을 제공받는 등의 업무 효율화가 아닐까.
구성원 중 경력 입사자의 비중이 늘고 있는 추세이기에 인적 네트워크 없이 시스템을 통해 간단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 형성이 더 필요해지고 있다. 좋은 기술이 어떻게 조직생활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구성원의 회사 생활을 도울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