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를 밀폐용기에 가두어 죽인 토끼의 보호자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는 집에서 토끼 한 마리를 키우다 다른 한 마리를 시장에서 더 '사' 왔는데 기존 토끼가 새 토끼를 괴롭히고 소란을 피우자, 새 토끼를 밀폐 용기에 가두었다. 10시간 뒤, 토끼는 질식해 죽었다. 숨을 쉬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한 채 천천히 숨이 멎었을 것이다.
그는 죽은 토끼를 토끼탕을 끓여 먹으려고 인근 천변에서 토끼털을 태우다 행인 신고로 경찰에 적발되었다. 재판부는 토끼를 밀폐 용기에 넣은 것은 동물보호법상 학대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동물에 대해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토끼 주인에 무죄를 선고했다.
자신의 반려견 복순이를 보신탕집에 넘긴 보호자와 복순이를 다른 개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인 보신탕집 주인이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복순이는 살아생전 주인이 쓰러지자 크게 짖음으로 위험을 알려 주인을 살린 적이 있는, 동네 주민에게 사랑을 받던 개였다.
식당 밖에서 묶여 생활하던 복순이를 앙심을 품은 한 행인이 심하게 학대했고, 복순이 보호자는 치료를 포기하고 보신탕집에 넘겼다. 검찰은 학대자 행인만 불구속 기소하고 복순이 보호자와 보신탕집 주인은 나름의 사정을 참작하여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 이름 모를 토끼와 복순이의 자리에 인간을 갖다 놓는다. 피해자가 인간이었더라도 가해자가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법적 판단이 나왔을까. 한 인간이 자기 뜻에 상관 없이 좁은 밀폐 공간에 갇혀 죽음에 이르고, 학대 끝에 목이 매달려 살해당했다면 재판 결과는 어땠을까?
인간 위주로 돌아가는 이 사회에서 비인간동물은 인간과 다르지 않은 고통을 느끼는 생명체이고 자기 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존재임에도 물건이 아닌 생명체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법조차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고 가해자인 인간 편을 든다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비인간동물의 입장은 누가 대변할까?
현행법상 동물은 유체물(有體物), 즉 동물로 분류된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인간의 사정만 고려될 뿐, 물건으로 치부된 동물은 인간 사회에서 스스로를 변호하지 못하는, 인간과 다른 존재로 여겨진다.
누구든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
이해할 수 없는 법적 처분과 판결에 대한 의문이 대책 없이 커져만 갈 즈음, 한 소셜미디어에서 책 <물건이 아니다> 행동단 모집을 보고 바로 지원하여 책을 받았다. 글항아리에서 출판된 <물건은 아니다>는 동물보호법에 관한 책이다. 지은이 박주연은 동물권 연구변호사 단체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의 공동 설립자이자 동물의 권리를 위한 변호 등 다양한 의법 활동을 하는 현직 변호사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 그동안 막연하고, 그 정체가 불분명해 보였던 동물보호법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법을 통과하는 동물 관련 이슈와 지은이의 시선이 교체하며 인간과 비인간 동물은 과연 다른 존재인지, 그 경계에 무엇이 있는지, 책을 읽으며 떠오른 물음표 앞에 중간중간 저리는 고통으로 읽기를 멈추었다.
지은이는 개 식용, 동물 의료소송, 야생동물, 동물원, 동물 N번방, 개 물림 사고, 동물 학대, 유기, 동물 실험, 공장식축산업과 같은 수많은 동물 문제 앞에서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경우와 오히려 동물을 고통 가운데 밀어넣는 경우를 설파한다.
그리고 2022년, 11년 만에 전면 개정되고 지난 4월 27일부터 실행된 새 동물보호법이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활용되며 법을 위반했을 시 어떤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법 용어가 낯설고 어려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시와 함께 쉽게 분석, 설명한다.
기존 47개에서 101개로 조항 수가 늘어난 이번 동물보호법은 동물 소유자의 관리, 동물 학대자의 교육 및 심리치료, 반려동물 관련 영업 관리 강화, 사육 포기 동물 인수제 도입, 동물 보호 시설, 동물원 관리 강화 등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문장마다 밑줄을 죽 그으며 법률을 머릿속에 넣으려 애쓴 까닭은 내 삶의 반경에서라도 비인간동물이 고통받고 억울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지은이는 개정된 동물보호법의 아쉬운 점을 날이 서게 비판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이미 강화된 해외의 동물보호법을 사례로 들며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많은 고민을 담아 치열하게 제시해 주었는데 동물을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이 사회에의 일원이라면 (동물에게 핏빛 빚을 지지 않는 인간은 없기에) 누구든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다.
"동물을 위함에 있어 '잔인한 방법으로 고통을 주었는가' 따위의 소극적 보호를 뛰어넘는, 동물의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춘 적극적 보호를 취해야 한다. 이들에게도 생존할 권리, 고통받지 않을 권리 이상의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박주연, <물건이 아니다>에서
동물보호법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
토끼와 반려견 봉순이 살해 사건과 일련의 법적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당장 눈앞엔 인간으로 인해 평생 고통 받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물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법이 변화하는 속도는 느리고, 그 바뀐 법조차 제대로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심한 무력감에 빠졌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동물보호법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의 변화라면 어떨까. 지은이가 가장 궁극적이고 근본적인 과제로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에 국가의 의무로 동물 보호의 등재를 제시했을 때 희망으로 가슴이 뛰었다.
"동물 보호를 국가의 의무와 목표로 헌법에 규정하는 일은 명목상, 의미상의 동물권 제고 이상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동물 보호가 국가적 목표가 됨으로써 국가 활동의 전 영역에 구속력 있는 의무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즉 입법자는 적극적으로 동물 보호를 위한 입법 의무를, 행정부와 사법부는 법규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동물 보호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
또 어떤 법률이 동물 보호라는 국가의 목표 규정에 위반되는 경우, 법원이 직권 또는 소송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동물 보호 조항의 헌법 적 내용을 구체화함으로써 동물 보호가 더욱 체계화될 수 있다." 박주연, <물건이 아니다>에서
동물보호법이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법으로써 지켜지고 집행될 수 있다면, 법이 유기체로서 이 사회의 가장 약한 자의 고통을 찾아가 닿을 수만 있다면 어쩌면 동물에게 한없이 멀었던 동물보호법은 그제야 제대로 힘을 발휘하여 동물의 언어로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 희망에 기대어 비인간동물의 권리가 존중받고 그들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이 땅에서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비인간동물과 인간 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국회는 민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이에 따른 후속 입법을 마련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세상의 모든 동물은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자유로운 생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