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은 하프 연주자를 처음 만난다. 그 자리에서 유재석은' "하프를 배워본 적도 없고 배울 생각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유재석은 금빛으로 번쩍이는 하프에만 집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재석은 하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선생님의 레슨으로 차근차근 하프를 배워 나간다.
그렇게 부캐 '유르페우스'가 탄생했다. 결국 하프 연주자 유르페우스는 예술의 전당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특별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유르페우스는 처음 하프라는 색다른 악기를 만났다.
유르페우스가 만약 첼로를 배웠다면 전국에 첼로 열풍이 불었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레슨을 받으려면 누구에게나 악기가 필요하다. 악기는 연주자에게 음악의 시작이자 끝이다. 고가의 악기가 아니라도 대여한 악기라도 있어야 한다.
"첼로를 사고 싶은데 어떡하죠?"
고민이 시작된다. 첼로를 대여할 것인가, 살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대여는 저렴하지만 결국에는 개인 첼로가 필요하게 된다. 반대로 덜컥 첼로를 구입하고 얼마 안 되어 레슨을 포기할까 봐 걱정이다. 하지만 나는 일단 지르는 스타일이다. 더구나 첼로는 나의 최애 악기가 아닌가.
'장식품이 될 지라도 첼로를 사야겠다'라고 결심했다.
첼로의 선택의 중요한 기준은 가격이다. 악기는 가격이 높을수록 좋은 소리가 난다. 첼로는 가구처럼 어떤 나무를 썼고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이다.
"아! 나도 최고급 첼로를 사고 싶다. 아니다. 정신 차리자."
"악기보다 실력이 우선이다. 통장 잔고에 맞게 적당한 걸로 사자."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워 첼로 선생님께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샘. 저 첼로 사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
"그래요? 본인 악기가 있으면 좋죠."
"악기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 연습도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첼로 구입 예산을 정하셨나요?"
"저렴한 연습용 첼로를 구입하려고요."
"선생님, 혹시 저랑 악기 전문점에 갈 수 있나요?"
"좋아요. 직접 연주해 보고 악기를 골라봐요."
"가격도 중요하지만 본인에게 끌리는 악기가 있거든요."
"저는 막귀인데 소리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내 마음에 와 닿는 악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첼로 선생님과 같이 찾아간 곳은 부천 역곡에 있는 현악기 전문점이었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백 대의 첼로가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와, 여기서 어떻게 첼로를 고르죠?"
젊은 사장님이 웃으며 차근차근 첼로 종류를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혼란스러움이 더 커졌다. 선생님 가볍게 제안을 했다.
"그럼, 연습용 첼로부터 연주해 보고 비교해요!"
"좋아요. 선생님이 소리 좋은 첼로를 골라 주세요."
그런데 젊은 사장님이 놀라운 말을 했다.
"저도 첼로 전공했는데 악기가 많으니 같이 골라드릴까요?"
"사장님도 첼로 전공하셨어요?" 나는 되물었다.
"네, 주말에는 레슨도 하고 연주도 하고 있어요."
갑자기 첼로 연주자 두 명이 내 앞에서 테스트 연주를 시작했다. 현악기 전문점은 한순간에 첼로 2중주 공연장으로 변했다. 묵직하고 우아한 첼로음이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며 악기 전문점에 퍼져나갔다. 눈앞에서 첼로 연주를 직접 들으니 첼로음이 더 묵직하고 강렬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고 매혹적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두 분이 여러 대의 첼로를 연주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유독 나의 마음을 울리는 첼로가 있었다. 대표님에게 물으니 내가 고른 첼로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 첼로는 장인의 공방에서 만들어진 악기에요. 직접 장인이 원목을 고르고 나무의 결을 따라 디자인을 하고 수많은 다듬기 작업을 거치죠. 첼로는 만든 사람의 손길에 따라 소리가 미세하게 달라져요. 이 첼로의 소리가 끌리신다면 악기와 좋은 인연이 이어질 수 있어요. 첼로도 사람처럼 마음이 통하고 편안한 악기가 있어요."
"직접 연주해 보시면 가슴에 전해지는 더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어요."
나는 첼로를 아기처럼 조심스럽게 안고 어색하게 활대를 움직였다. 악기가 나에게 소리 없이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을 만들어요!"
첼로를 안고 가만히 나무가 나지막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백 년 고목이 첼로가 되는 과정은 한편의 동화였다.
악기를 고를 자격
첼로에 사용되는 나무는 악기의 부위 별로 3~4종을 사용하는데, 앞판에는 진동 특성이 좋은 캐나다의 가문비나무(spruce), 뒤판과 옆판 그리고 넥에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노르웨이 단풍나무(maple), 또한 지판에는 검고 단단한 스리랑카 흑단(ebony) 그리고 블록으로는 하와이 버드나무(willow)나 가문비나무 등이 사용된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원시림 숲에서 100년 이상 살아온 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먹먹함을 나이테에 품고 커다란 배에 실려 정든 숲을 떠나게 된다.
다른 나무 친구들은 캐나다, 노르웨이, 스리랑카, 하와이에서 저마다의 고향의 이야기를 품고 숲을 떠나 거친 바다를 건너게 된다. 원목은 새로운 악기로 탄생하기 위해 수많은 여정을 거친다. 원목 회사에 도착한 나무는 뒤틀림 없이 단단해지기 위해 바닷물에 담가져 파도 소리를 깊게 품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몇 해의 자연 건조를 거치면서 숲에 대한 기억이 나무 향과 나무 결로 짙어진다. 비로소 악기가 될 준비가 된 나무는 장인에 손에 닿는다. 장인은 악기를 디자인하고 세심한 공정을 거쳐 악기를 만들어 간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나무들은 합쳐져 섬세하고 개성 있는 소리를 지닌 악기가 된다.
어떤 연주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악기는 저마다 다른 운명을 맞이한다. 수없이 주인이 바뀌는 악기도 있다. 부서지고 파손되어 버려지는 악기도 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콘서트홀에서 주인공이 되는 악기도 있다. 외딴 방에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악기가 있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연주하는 길거리 악사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악기는 주인을 만나지 못해 하루하루 먼지가 쌓여간다.
악기를 고르다가 내가 악기를 고를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인지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악기는 저마다 특별한 소리를 품고 있다. 숨겨진 악기의 소리를 이끌어 내주는 연주자를 만날 때 비로소 악기는 진정한 음악이 된다. 내가 악기라면 어떤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을까? 그리고 나는 타인의 소리에 얼마나 깊이 공명하고 있을까?
수많은 첼로들 속에서 나만의 첼로를 운명처럼 만났다. 나는 선택한 첼로의 독특한 소리를 찾아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첼로의 선율이 파장이 되고 주파수가 되어 우주 끝까지 퍼져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첼로와 누군가와의 소중한 만남을 꿈꾼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서로 특별한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시구가 떠오르는 저녁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