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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은 누군가의 어린 딸을, 누군가의 소중한 어머니를, 어린 아들의 하나뿐인 아버지를 앗아갔다. 음주운전은 ‘살인을 예비한 범죄’다. <오마이뉴스>는 윤창호씨 사건이 발생한 2018년 9월 25일부터 스쿨존에서 사망한 배승아양 사건이 있었던 2023년 4월 8일까지, 진행된 ‘음주치사’ 재판 판결문을 일일이 찾아냈다. 그렇게 마주한 63명의 가해자들은 다양한 감경사유를 내세워 수갑을 벗었다. 이미 음주전과가 있었던 이들은 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 음주 살인자들의 운전대, 지금 멈춰야 한다.[편집자말]
지난해 12월 서울, 그리고 4개월 뒤인 4월 대전.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9살, 10살 아이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그 '스쿨존'에서다. 우리 사회가 일제히 쏟아낸 목소리에는 '어떻게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그것도 음주운전을 할 수 있나'라는 공분이 담겼다.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를 보며 <오마이뉴스>는 가정 안전해야만 하는 도로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 그 위에서 벌어진 음주운전 사고를 톺아봤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 문제가 촉발된 고 김민식군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2019년 9월 11일부터 고 배승아양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8일까지의 스쿨존 내 음주운전 판결문을 대법원 판결문 열람 검색 서비스를 통해 찾았다. 

이렇게 찾아낸 37건 판결문으로 마주한 현실, 스쿨존의 안전은 음주운전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스쿨존의 밤은 정말 안전할까 
 
 최근 대낮 어린이보호구역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발생해 이를 근절하겠다는 의미로 경찰청이 4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고은초등학교 앞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최근 대낮 어린이보호구역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발생해 이를 근절하겠다는 의미로 경찰청이 4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고은초등학교 앞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 이희훈
 
"어린이보호구역 내 시간대별 탄력적 속도제한 운영 등 전국 확대 검토."

대통령실 국민제안비서관실이 지난 4월 9일 발표한 정책화 추진 과제에는 어린이보호구역 속도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심야시간대는 사고 위험도가 낮으므로 안전 규제 정도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렇다면 스쿨존의 밤은 정말 안전할까. 어린이보호구역 내 음주운전은 특히 밤에 활개 쳤다. 37건의 스쿨존 음주 사고 중 23건이 오후 8시부터 오전 8시까지, 심야시간대(윤석열 정부 인수위는 지난해 4월 스쿨존 내 심야시간대 제한속도 상향 방침을 공표하며,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를 심야시간대로 규정)에 몰려 있었다. 23건 중 2건의 피해자는 네 살, 여섯 살 어린이였다. 

2020년 1월 광주 북구, 여섯 살 아이가 다친 스쿨존 음주 뺑소니 사고의 경우 밤 11시 20분께 발생했다. 가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02% 만취 상태. 아빠와 함께 편의점에 가기 위해 학교 부근 도로 옆에 서 있던 아이는 만취 트럭에 치여 20m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마 뼈가 부서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가해자의 차량은 피해자의 몸 위를 지나간 후 도주했다.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만 3차례. 광주지법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했다. 음주 전력이 "범행으로부터 10년 이상 경과" 했고, 합의금을 냈다는 이유가 감경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한속도 시속 30km 구간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술을 마시고 엑셀을 밟아 달리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아래 사건들도 밤에 발생했다. 
 
 제한속도 시속 30km 구간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술을 마시고 액셀을 밟아 달리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건들은 심야 시간대에도 발생했다.
제한속도 시속 30km 구간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술을 마시고 액셀을 밟아 달리다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사건들은 심야 시간대에도 발생했다. ⓒ 이주연
 
2021년 10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75km/h로 운전하다 멀쩡히 길을 건너던 23세 여성을 치여 죽게 만든 사건도 새벽 1시 20분께 발생했다. 가해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204%, 만취 상태였다. 피해자는 사고 후 30m 이상 튕겨나가 쓰러졌고, 가해자는 구호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그러고도 4km 이상을 운전하다 가로수를 들이받은 뒤에야 멈췄다. 가해자는 차량 블랙박스를 떼내 차량에서 빠져나오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대전지법은 징역 11년형을 선고했다. 

2020년 8월 밤 11시 45분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시속 102km로 역주행하다 4명의 사람을 치고 도주까지 한 가해자는 음주운전 전과가 3회나 누적된 전과 3범이었다.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

2019년 9월 밤 11시 30분께, 역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시속 105km로 달리다 47살의 피해자를 쳐 위험운전치상으로 기소된 피해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07%의 만취 상태였다. 인천지법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어린이 보호 울타리 박살내는 음주운전자들 
 

음주운전자들의 행각은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린이 등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스쿨존 내 철재 펜스까지 망가트렸다. 이들은 안전펜스를 박살내고, 부순 상태로 방치한 뒤 도망가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오후 4시 45분께 전남 장흥에선 혈중 알코올 농도 0.157% 상태의 피고인이 차를 몰다 어린이 보호구역을 덮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이미 2년 전인 2019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광주지법 장흥지원은 "펜스 여러 개가 완전히 부서질 정도의 사고를 일으켰음에도 사고 현장을 이탈했고, 자칫 큰 사고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피고인에게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특기할 점은, 해당재판의 양형 이유에서 "4명의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점"이 언급된 것이다. 

자녀 양육이 유리한 양형으로 참작된 사례는 또 있다. 그 역시 안전펜스를 박살냈다. 2021년 1월 오후 10시께 충남 보령, 혈중 알코올 농도 0.187% 만취 상태의 가해자는 중앙선을 침범했고 마주 오던 차량을 박았다. 그 충격으로 피해 차량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한 끝에 어린이보호구역 안전 펜스와 충돌했다.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부양하는 점" 등이 유리한 정상이었다. 

음주운전자의 낯 뜨거운 자기고백

자녀 부양을 비롯한 각종 유리한 정상들은 스쿨존 음주사고 가해자들에게 집행유예형을 선사했다. 조사 대상 스쿨존 음주 사건 판결 37건 중 29건이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벌금형은 4건이었다. 실형까지 나아간 경우는 4건에 불과했다. 37건 중 4건은 사람을 사망케한 치사 사건이었으나, 이 중 두 건에도 집행유예형이 선고됐다. 

"음주운전했는데, 뭐 잘못했는데"라는 낯 뜨거운 자기고백을 한 음주운전자도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술 먹고 운전한 거 맞다. 그게 뭐가 잘못 됐나. XX, 헛소리하지마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가 술 먹고 운전한 건 맞는데 XX,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불지는 못하겠다."

2019년 12월 새벽 4시 40분경 경북 경산시의 한 파출소, 그는 음주측정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미 2002년과 2008년 각각 대구지방법원에서 음주운전과 음주측정 거부로 벌금을 받은 전력이 있는 자였다.

그는 초등학교 정문 기둥과 출입구를 들이 받았고 음주의심차량 신고로 붙잡힌 상태였다. 이 피고인은 새벽 5시 30분부터 20분 가량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음주측정을 세 차례 거부했다. 대구지법 재판부는 해당 판결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윤창호씨의 사건을 언급하며 "음주운전 자체의 위법성을 중대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특히 "음주운전으로 인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있는 초등학교 통행로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초등학교 시설물을 손괴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음주운전은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고 평가 된다"고 짚었다.

결론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 "음주전력이 10년 전 것들이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이 재판부 재량의 감경 사유로 작동했다.

민식이법 이후, 스쿨존 내 어린이 상해 사고 보니

일명 '민식이법' 시행 이후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도 이 같은 가벼운 처벌이 이어졌다. 민식이법은 2019년 9월 충남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민식군 사고 이후 발의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하 특가법)' 등을 말한다. 해당 법에 따르면 운전자의 부주의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가 상해를 입으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게 돼있다. 

<오마이뉴스>가 분석한 37건 판결문 가운데, 민식이법 시행일인 2020년 3월 25일 이후 어린이가 상해를 입은 사건은 총 9건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일 뿐 아니라 음주 상태에서 사고를 낸 것임에도 9건 모두 집행유예형을 선고 받았다.

보행자 신호에 건널목을 건너던 일곱 살 아이를 친 운전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일곱 살 남자아이를 들이 받은 후, 뒷바퀴로 아이의 다리를 밟고 지나가 14주의 상해를 입힌 가해자에게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술에 취한 채 오토바이를 몰아,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여덟 살 아이에게 골절상을 입힌 가해자에게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다. 

더불어,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높다"는 명제(경찰청 통계, 2021년 기준 음주운전 재범률은 44.6%)는 스쿨존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37건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음주운전 사건 중 21건이 과거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적 있는 전과자들의 소행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16명에게 또 다시 집행유예형이, 2명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지난 4월 8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9) 양을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8일 오후 대전 서구 둔산동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9) 양을 추모하는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도로. 가장 안전해야 하는 도로. 그러나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 이들에 의해 스쿨존은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안전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 어린이 보호 펜스는 음주운전자들에 의해 부서지고 망가졌다. '어린이를 보호해야 하는 구역'이지만 어린이에게는 안전하지 않았다.

어린이에게 안전하지 않은 도로가 어른에게, 노인에게 안전할 리 만무했다. 조사 대상 스쿨존 내 음주운전 사건 중 나이를 알 수 있는 피해자는 총 36명이었다. 이 중, 어린이 피해자(12세 이하)는 12명, 노인(65세 이상) 피해자는 5명이었다. 청년은 4명(20세~34세, 청년기본법 기준 청년), 중장년 피해자(35세~64세)가 15명으로 가장 많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윤석열 정부는 스쿨존의 안전기준을 낮추겠다고 인수위 시절부터 내내 피력해 왔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시간대별 탄력적 속도제한 운영"을 검토하겠다는 정부는 이 안이 '국민 안전 향상'을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일상 속 불편과 불합리 해소'를 위한 정책 과제"라고 홍보했다. 누구를 위한 안전 향상이며, 누구를 위한 불편 해소일까. 

#음주살인#음주운전#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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