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도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양봉농가에서 꿀벌이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면서 '벌집 붕괴 현상'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함양군 또한 관내 전체 양봉농가 중 반이 넘는 농가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대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벌집붕괴 현상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방제제에 내성이 생긴 응애를 피해의 주요 원인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관련 학계 등으로부터 분석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에 주간함양은 벌집붕괴현상 피해 현황 파악을 비롯해 관련 학계 전문가로부터 현상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조언을 들어본다.
또 이 현상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일본을 방문해 정부 관계자와 양봉협회 관계자를 만나 사건 경과와 원인규명 방식, 대응과정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 기자 말
지난 2022년 2월 경남 함양군에서 처음으로 꿀벌 집단 실종·폐사 피해 발생이 보고됐다. 같은 해 2월 8일 기준 관내 전체 농가 중 57.2%에 해당하는 농가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그중 서상면에서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서상면에서 양봉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영록씨는 이번 '꿀벌 집단 실종사건'에 대해 징조가 먼저 보였다고 말했다. 2020년부터 이유 없이 꿀벌 개체수가 줄어들었고, 2021년에 접어들어 꿀벌들이 절반 이상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며 이런 유례없는 현상은 처음 겪는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정영록씨는 "말벌이 공격했거나 병에 걸려 폐사를 한 것이라면 사체라도 쌓여 있는 게 정상인데, 아무것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한탄했다.
올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벌집붕괴현상이 관내에 처음으로 보고된 시기인 22년도에 비해 10% 가량 증가하면서 양봉농가 농민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 3월 27일 함양군이 보고한 양봉농가 월동 꿀벌 피해실태조사(1차 조사 1월4일~1월26일, 2차 조사 2월20일~3월10일) 결과 관내 242호 농가(개량벌 189호, 토종벌 53호) 중 피해 농가수는 230호(개량벌 179호, 토종벌 51호)이며 총 2만6491군 사육군(개량벌 2만3472군, 토종벌 3019군) 중 피해군은 1만7648군(개량벌 1만5678군, 토종벌 1970군)인 것으로 확인됐다.(군은 여왕벌 한 마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꿀벌 집단의 단위를 말한다) 관내 합계 피해율이 66.6%에 달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번진 벌집붕괴현상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최초 벌집붕괴현상이 보고된 지역은 따뜻하고 안정적인 기후조건으로 양봉업에 유리한 제주도로 확인됐다. 지난해 초 제주도에서 시작된 꿀벌실종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까지 이어지며 전국적으로 번졌다.
당시 제주도는 도내 양봉농가 457곳(제주시 189곳, 서귀포시 268곳) 중 31.3%인 143곳(제주시 118곳, 서귀포시 25곳)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벌통을 기준으로는 전체 7만 4216군(제주시 2만 9606군·서귀포시 4만 4610군)의 15.5%인 1만 1531군(제주시 8361군·서귀포시 3170군)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졌다.
이순철 한국양봉협회 제주특별자치도 지회장은 "40년 가까이 양봉업 일을 해왔지만 이런 현상은 처음 겪는다"며 "이미 3년 전부터 이러한 현상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는 아열대기후로 양봉업을 하는 데 있어 기후 조건이 괜찮지만 동시에 병균들 또한 활성화되는 부분이 있어 꿀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꿀벌은 기온에 매우 예민한데 최근 기후변화가 심해진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양봉농가 1만 2795곳 중 1만 546곳에서 월동 꿀벌들이 피해를 입었다. 전체 153만여 개 벌통 중 87만여 개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1월 26일에는 양봉협회 함양지부 결산총회가 열렸다. 이날 진병영 함양군수는 양봉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꿀벌피해 상황진단
전국적으로 벌집붕괴현상이 나타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22일 '꿀벌피해 상황진단 및 발생원인'을 발표하면서 꿀벌피해 발생은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응애는 거미강 진드기목 가운데 후기문아목을 제외한 거미류의 총칭으로 몸길이 1~2mm의 작은 동물군이다. 응애는 꿀벌의 몸 안에서 번식하는데 꿀벌이 꿀을 모으러 나갈 때 꿀벌이 모은 꿀에 응애의 알이 묻어 전염된다. 전염된 꿀을 다른 꿀벌이 섭취하면서 응애가 꿀벌 몸 안에서 번식하게 되는데 이때 꿀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전파하기도 한다.
농식품부는 과거 장기간 특정 성분(플루발리네이트)의 방제제가 널리 활용됨에 따라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가 확산되었고, 사육 중인 꿀벌에 피해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또한 농가들이 방제 적기인 7월에 꿀,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등 양봉산물 생산을 위해 방제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고, 응애가 이미 확산된 이후 방제제를 과다하게 사용해 꿀벌 면역력을 낮춘 것도 피해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피해 원인으로 추정하는 기후변화에 대해선 이번 꿀벌 피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농식품부는 꿀벌피해 조기 회복 및 재발 방지 대책으로 ▲봉군 수 조기 회복 및 피해농가 지원 ▲대대적 응애 방제를 통한 연중 피해 예방 추진 ▲농가의 관리역량 제고 ▲중장기 대응 역량을 위한 연구개발 및 품종개량 추진 등을 내놓았다.
함양군 또한 지난 3월 양봉 농가를 대상으로 꿀벌 구입비를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꿀벌 사육기반 안정지원사업으로 양봉업 등록농가를 대상 1군당 25만원 최대 60군까지 꿀벌 구입비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농가별 사업비 배정 및 사업시행은 지난 4월 3일부터 진행됐으며 10월 30일까지 이루어진다.
농식품부는 피해 지원 대책을 발표함과 동시에 꿀벌피해 영향과 관련한 전망도 내놓았는데 꿀벌피해로 인한 꿀벌의 개체 감소가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하며 자연 생태계에서는 양봉 꿀벌이 아닌 나비, 야생벌 등에 의한 화분매개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정부 차원의 분석에 대해 양봉업계와 관련 학계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관점에서 해당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다음 2, 3편에서는 한국양봉학회 회장인 정철의 안동대 교수를 통해 벌집 붕괴 현상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