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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옷을 두 벌 삽니다. 색은 달라요.
같은 옷을 두 벌 삽니다. 색은 달라요. ⓒ 허윤경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에 같은 옷만 입은 걸로 유명하다. 검은 목티에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 마크 주커버그 역시 회색티에 청바지로 간소한 옷차림을 고수한다. 한 사람은 애플을, 또 한 사람은 페이스북을 창시한 혁신의 아이콘이자 성공의 대명사다.

이들이 단벌신사가 된 이유는(같은 옷을 입는다 뿐 한 벌을 돌려 입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 아침마다 무얼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실제로 매년 옷을 사느라 들이는 돈이 적지 않은데 매일 출근 전 옷장을 보며 느는 건 한숨뿐이다. 오늘 뭐 입지?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지? 회사에 유니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옷잘알이고 싶어 고민한 지난 나날들

중학생 때는 교복이 싫었다. 촌스러운 디자인에 더 촌스러운 색감이라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을 더욱 못나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대신 고등학생 언니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은 왠지 예뻐 보였다. 하얀색의 커다란 러플 카라를 나풀거리며 지나갈 때면 나도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서 저 예쁜 교복을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촌스럽기는 매한가지인데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어 입은 러플이 달린 여성스러운 느낌의 교복 역시 나를 돋보이게 하지는 못했다. 역시 교완얼. 교복을 완성시키는 건 얼굴이지 교복의 디자인이나 색은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교복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교복이 아니었다면 옷 한 벌로 일주일을 버티며 비자발적 교복룩을 완성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교복도 물려 입는 마당에 등원룩을 마련할 돈이 어디 있었겠는가. 참으로 고마운 교복이 아닐 수가 없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마르고 뚱뚱하고 예쁘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색 매칭이 과감한 옷을 입는 사람들, 같은 옷을 입어도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 가방이나 신발, 스카프나 액세서리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때와 장소, 상황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사람들 말이다.

옷잘알(옷을 잘 아는)이고 싶으나 옷못알(옷을 잘 모름)인 나는 옷을 살 때 늘 고민이 된다. 얼굴이 예쁘고 몸이 예쁘면 몸빼를 입어도 테가 날 테지만 자칫 잘못하면 얼굴이 더 커 보일 수도, 다리가 짧아 보일 수도 있으니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들을 해왔다.

이십대의 나는 숏컷에 풀메이크업, 하이힐을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삼십대에는 긴 웨이브 머리에 메이크업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플랫슈즈를 신었다. 미니스커트는 가장 마지막에 포기했는데 첫째를 낳은 이후이다. 아이를 돌보기에 짧은 길이의 스커트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사십대의 나는 더 이상 몸매를 부각하거나 튀어 보이는 옷들을 입지 않는다. 여름에도 민소매는 입지 않고 스커트는 무릎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A라인을 선호한다. 대체로 무난하고 편한, 그러면서도 출근룩으로도 무리가 없는 옷을 고른다. 어떤 면에서는 젊었을 때보다 옷을 선택하는 폭이 더 좁아졌고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같은 옷을 두 벌 산다, 색깔은 다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착장은 원피스이다. 한 때는 옷장에 계절마다 입을 원피스가 100벌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원피스는 상의와 하의의 매칭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고 입고 벗기가 쉬우면서 상대에게는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원피스에 기모스타킹을 챙겨 입으면 웬만한 바지보다 따뜻하다.

무엇보다 원피스에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는 상체보다 하체가 더 튼튼한 내 몸의 단점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니 내 눈에 흡족하면서 몸에도 알맞은 원피스를 만나면 하나로는 아쉬울 수밖에. 언제 또 마음에 쏙 드는 원피스를 만날지 알 수 없으니 있을 때 쟁이는 게 좋다. 무엇보다 같은 듯 다른 원피스 덕분에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입을 옷 걱정을 덜 수 있으니 생각할수록 이점이 크다. 옷장은 조금 단조로워졌지만 아침은 조금 여유로워졌다.

속내가 아름다운 사람

나이가 들면서 외모만 변하지 않는다. 삶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 가치관도 변한다, 옷도 마찬가지. 이십대의 나라면 디자인이 같은 옷 두 벌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색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꾸미고 치장하는 걸 좋아해서 미용, 네일아트, 화장품, 옷 등에 돈을 많이 썼다. 투자가 아닌 소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돈은 모이지 않았고 인간관계는 가벼웠으며 미래는 불투명했다. 겉으로는 밝고 활기차 보였지만 속은 허전하고 불안했다.

여전히 불완전했던 삼십대를 보내고 사십대를 걷고 있는 지금의 나는 겉으로는 흰머리가 늘었고, 손톱은 뭉툭해졌으며 더 못생겨졌지만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돈을 들이면 지금보다 더 예뻐질 수는 있겠지만 외모는 이제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요즘의 나는 책을 더 많이 읽고 어떻게 하면 이들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매 달 옷 한 벌 살 돈을 아껴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옷은 신경 써서 입는 것이 좋다. 하지만 옷을 갖추어 입기 전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건 삶에 대한 태도이다. 멀리서 봤을 때는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 있다. 허름하게 입었지만 단단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싼 옷으로 휘감았어도 짠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빛이 나는 사람이 있다.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아우라는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표정이나 말투, 가치관을 통해 엿볼 수 있는 내면의 모습은 그 사람이 지금 입고, 들고, 걸치고 있는 것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겉모습은 상대에게 잠깐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결국 속내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 나이는 내가 아니다. 내가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내가 아니다. 내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내가 아니다. 나는 내가 읽은 모든 책이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이다. 나는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나는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나는 내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내가 흘린 모든 눈물이다.

에린 헨슨의 <아닌 것> 이란 시(일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아닌 것> - 에린 헨슨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하략)

#마흔살이#옷#오늘의착장#내면성찰#더나은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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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우연히 보았다가도 또 생각나서 찾아 읽게 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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