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찔레꽃
찔레꽃 ⓒ 김민수

22일은 아버님이 이 땅의 여정을 마치시고 안식하신지 6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버님을 추모하기 위해 선산을 향해 가는 길, 경기도에 들어서자 국도를 따라 이어진 숲 가장자리 곳곳에 하얀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하얀 찔레꽃'의 향기를 맡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씁쓰름한 향기, 공기가 낮게 깔린 새벽에는 그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어릴적 찔레순은 주전부리였습니다. 그냥 별 맛 없는 것이었지만, 연한 찔레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내어 먹으면 그 '별 맛 없음'이 참 맛있었습니다. 찔레순, 아카시순, 아카시꽃, 골담초꽃.... 이런 것들이 저의 어린 시절 주전부리였습니다.
 
 찔레꽃
찔레꽃 ⓒ 김민수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 꽃'으로 시작되는 동요와 가난했던 유년의 추억이 겹치면, 찔레꽃 피어있던 숲길과 숲길 옆 작은 무덤, 그 숲길을 지나 화전으로 가꾼 밭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는 엄마가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되어 슬펐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배고파 엄마의 젖내가 그리운데, 문틈으로 파고드는 찔레꽃 향기.... 이런 이미지에 소리꾼 장사익의 찔레꽃이라는 구슬픈 노래는 '찔레꽃'을 슬픈 이미지로 각인시켰습니다.

여전한 찔레꽃 향기
 
 찔레
찔레 ⓒ 김민수

벌써 14년 전(2009년)이군요. 비보를 듣고 '바보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로 달려갔습니다.

몰려드는 추모객들로 인해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걸어들어갔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좌측으로는 부엉이 바위가 있는 산이 있고, 우측으로는 제방 아래 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방에 찔레꽃이 피어있었지요.

저는 비보를 듣고 사흘째 되는 날에 갔으니 이미 많은 분들이 그곳을 다녀갔습니다. 여름에 접어든 5월 하순의 날씨는 가물었고, 햇살을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먼지도 많이 날렸는지 하얀 찔레꽃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찔레꽃 향기는 여전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찔레꽃'은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2009년 5월 '바보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2009년 5월'바보 대통령'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 김민수

당시에는 사진찍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지만, 저는 그날 몇 장의 사진밖에는 남기지 못했습니다. 살아 셔터를 누르는 것도 죄인듯 느껴져서 그랬습니다. 그 이후, 바보 대통령의 추모일만 되면 찔레꽃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6년 전 아버님이 5월 22일, 이 땅의 소풍을 마치시고 귀천하셨습니다. 아버님을 선산에 모시러 가는 길, 그 길가에 찔레꽃들이 만발했고, 찔레꽃의 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5월에는 찔레꽃말고도 많은 꽃들이 피어납니다. 애기똥풀, 지칭개, 엉겅퀴, 토끼풀, 아카시꽃.... 그러나 저에게 5월의 꽃은 '찔레꽃'입니다.

5월이면 기다려지는 꽃 
 
추모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추모화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 김민수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5월이 오기 전부터 찔레꽃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슬픈 꽃인데, 이젠 만날 수도 없는 분들인데도 올해는 유달리 슬픈 찔레꽃이 보고 싶었습니다.

도시에 살다보니 제대로 된 찔레꽃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찔레꽃을 보고 향기라도 맡으면서 그분들의 삶을 반추하고, 새롭게 내 삶을 다지는 날이 기도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제 아버님을 추모하고 돌아오는 길, 오랜만에 찔레의 슬픈 향기를 마음껏 맡았습니다. 그리고 찔레꽃 향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도심의 사무실에서 어제 만난 찔레꽃을 그리며 바보 대통령을 추모합니다.

#찔레#추모#바보대통령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