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다니면서 글을 만나 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세 남자의 이야기. [편집자말] |
어느 날부터 장인어른이 글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번 읽어 보시게."
올해 1월 중순이었다. 장인어른은 장문의 글을 써서 카톡으로 보낸 후 읽어봐 달라고 하셨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태껏 글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었던 장인어른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궁금함에 찬찬히 열어봤다.
맨 위에 제목은 '우정보다 진한?'이었다. 내용은 고등학교 때 얼굴만 아는 정도였던 친구를 우연히 직장생활을 하다 만난 이야기로 시작됐다. 같은 건물의 각각 다른 회사를 다녔는데, 그때는 결혼 전이라 종종 식사도 하고 등산도 하며 친해져 친구의 산악회까지 가입해서 덕유산, 지리산 등을 종주하며 우정을 쌓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과 모임도 만들어서 결혼하고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갔다.
장인어른의 글 속 그 친구분은 참 따듯한 분이었다. 어렵고 외로운 친구가 있으면 나서서 도움을 줬고, 생색 하나 없었다. 장인어른이 몸이 아프고 나서 생각이 났다며 불쑥 사과 상자를 보내 주기도 했고, 읽어 보라며 '좋은 생각'이란 월간지 연간 구독권도 끊어 줬다고 한다. 최근에 항암치료로 힘든 상황에 친구의 훈훈한 정을 생각하며 그래도 삶을 잘 못살지는 않은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현하며 글을 마무리 지었다.
우정, 사랑, 담대함... 장인어른의 삶이 내게 왔다
글에 담긴 장인어른의 삶과 친구분과의 인연 그리고 따뜻한 우정에 내 마음도 뭉클했다. 잘 읽었다는 답신과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셨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보냈다. 장인어른은 글의 수정도 부탁했다. 이 글을 어떻게 내가 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오타 수정과 보기 좋게 단락 정도만 나눠서 다시 보냈다.
그 뒤로도 한 달에 한 편씩 수필을 써서 나에게 보내 주셨다. 지난 2월에 보낸 글은 장모님과의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아내에게도 듣지 못한 두 분의 사랑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롭던지 장문의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결혼적령기에 선을 본 여성 중 유독 장모님만 계속 연락하게 돼 결혼까지 하게 됐는데 역시 인연은 따로 있었다.
1970년대의 데이트 코스도 엿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장인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보았기에 장모님은 어땠는지 나중에 물어보고픈 궁금증도 생겼다. 처음에 썼던 글보다 훨씬 정제된 느낌이었고, 이제는 보기 좋게 단락 구분도 잘하셨다. 다음엔 또 어떤 글을 보낼지 점점 기대하게 했다.
3월이 됐다. 어김없이 글이 도착했다. 이번엔 중고 직거래 실수담이었는데, 매매수수료를 줄여보고자 벼룩시장을 통해 판 차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부딪혔고, 그걸 해결해 나가면서 겪었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금이야 당근 마켓으로 중고 거래가 일상이 됐지만, 그 옛날의 일화로 장인어른의 담대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일단 추진하기로 마음먹으면 주저앉고 시도하는 지금의 모습이 예전부터의 경험이 쌓인 결과였음을 알 수 있었다.
보내 준 글을 통해 그동안 단편적으로 바라본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글이란 그런 것 같다. 내가 나를 드러내는 만큼 보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닿아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내에게도 공유해서 보내 주었더니 본인도 알지 못했던 내용이라며 흥미로워했다.
계속 읽고픈 나의 바람과 달리 3월에 보낸 글이 마지막이 됐다. 장인어른은 혈액암 판정을 받고 채 석 달을 버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장인어른으로 인해 가족 모두는 슬픔에 빠졌고,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내겐 너무나 큰 어른이었고,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결혼 후 2년 만에 처가와 합가했고, 10여 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그 긴 시간 동안 큰소리 한 번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장인어른의 크신 마음과 따뜻한 배려 덕분에 가능했다. 장인어른과 둘이서 떠났던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글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발자취
발인 전 조문객이 모두 떠난 장례식장에서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님이 갑자기 글을 쓴다고 해서 처음엔 놀랐었어. 생전 글에는 관심 없던 분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삶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닐까 싶네. 병실에 누워 잘 보이지도 않는 핸드폰 화면으로 더듬더듬 글을 썼는데, 그때만큼은 고통에서 잠시 벗어나 행복해 보였다네. 그래서 글을 쓰는 신 서방에게 보내기도 하고 자주 묻고 했던 것 같으이. 어찌 그리 갑작스레 떠났을까..."
눈시울이 붉어진 장모님을 바라보며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절실함으로 글을 쓰셨는지 알게 되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좀 더 일찍 글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한탄이 남았다. 장인어른의 삶을 알기에는 세 편의 글은 너무 짧았다.
어느새 장인어른이 떠난 지 석 달이 지났다. 지금도 가끔 보내 준 글을 꺼내 보곤 한다. 그러면 장인어른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내 옆으로 다가올 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아마도 글 안에 생생한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장인어른이 남긴 글이 내 안에도 작은 씨앗을 심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삶을 하나둘 글에 담아보고 싶다. 나 또한 언젠가 떠날 테지만, 그 글은 영원히 남아 나를 그리워할 이에게 곱씹을 존재가 돼줄 테니까.
평소 표현이 서툰 못난 사위였지만, 지금 글에서나마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버님, 너무 그립고 보고 싶네요. 그동안 늘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랄게요. 사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