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의 두 번째 유해발굴지인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의 모습이다. 73년 전 집단학살 정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현장의 모습에 모두 아연실색한다.
서산유족회 정명호 회장은 "막상 (현장에) 와서 발굴된 유해를 보니 울화통이 터집니다. 우리 부모 형제를 이런 식으로 학살해서 이런 식으로 매장해놓고 짐승의 밥이 되게 한 이 행위 모두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0일부터 20여 일간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번지 봉화산 교통호 인근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해왔으며 5월 30일 '민간인 희생자 유해 발굴조사 중간보고'가 서산 갈산동 176-4번지 인근에서 열렸다.
이번 발굴 지역인 교통호는 1950년 인민군 점령기에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판 곳이다. 수복 후 서산지역 부역 혐의자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유해발굴 지역은 전체 길이 약 60미터 정도로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진행되고 있다. 발굴된 유해는 총 60구~68구로 1구역 13구, 2구역 30~35구, 3구역 17~20구이다.
현장에는 폭과 깊이가 1m도 안 되는 좁은 교통호를 따라 굵은 다리뼈들뿐만 아니라 척추뼈와 갈비뼈까지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로 발굴됐다.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쏘는 총살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옆으로 누워있거나 고꾸라져 있는 모습으로 사망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1구역에서 발굴된 한 유해는 교통호 바닥을 향해 고꾸라져 있는 상태에서 양팔은 뒤로 꺾인 채 신발을 신은 상태로 발견됐다. 주변에는 M1추정 탄피도 확인됐다.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977명이고, 희생추정자는 888명에 달한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의 성인 남성들이었으며, 여성들도 일부 포함돼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