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다른 곳이 꽤 있다. 대개 교통이 발달하거나 대도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현상이지만, 애초 지리적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시군의 경계선이 그어진 지역도 있다. 전북 남원시에 속한 운봉읍과 인월면, 아영면 주변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 지역은 해발고도 400~500m의 운봉고원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이 에워싼 분지 지형의 고원으로, 언뜻 보면 여느 평야 지대처럼 눈맛이 장쾌하다.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 마루에 멈춰 섰을 때, 눈 앞에 펼쳐진 들판이 마치 딴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경남 함양군 백전면에서 전북 남원시 아영면에 가려면 소백산맥을 넘어야 한다. 학창 시절 태백산맥 못지않은 험산준령으로, 영호남을 가르는 지리적 경계라고 배웠다. 이곳과 평행선처럼 난 바로 아래 고갯길이 팔량치이고, 위 고갯길이 전북 장수와 경남 거창을 잇는 육십령이다.
제법 가파른 2차선 도로의 이름은 '아백로', 아영면과 백전면의 앞 글자를 따 이어붙인 듯하다. 그 길과 나란히 곧게 뻗은 광주 대구 간 고속도로가 달린다. 차량들의 굉음이 요란한 고속도로와는 달리 '아백로'에는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대신 도로변에 잡풀만 무성하다.
'아백로'의 고갯마루에 자리한 매치 마을로부터 아영면이 시작된다. 마을 입구를 알리는 큼지막한 표지석 건너편에 경남과 전북의 도 경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놀랍게도 이 마을은 전북 남원이 아니라 경남 함양에 속해 있다. 곧, 경남의 끝 마을인 셈이다.
도 경계 표지판을 지나면, 전북의 첫 마을인 의지 마을이다. 주민들끼리 밤마실 다녀도 하등 이상할 것 없을 만큼 두 마을은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지금이야 젊은이들이 죄다 도회지로 떠나 오갈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들 이웃사촌처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두 마을 사람들에게 행정구역은 별 의미도, 소용도 없다. 오순도순 함께 밥 먹고 품앗이하는 이웃끼리, 경남도민과 전북도민, 함양군민과 남원시민으로 구분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지리적 여건이나 거리와 상관없이 매치 마을에는 경남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의지 마을에는 전북 남원으로 가는 버스가 상대적으로 많다. 마을이 텅 비어 가는 마당에 하루에 고작 몇 대 오갈 뿐이지만 말이다.
행정구역이 바뀌었다는 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정치인들이 내건 홍보 현수막이다. 백전면에선 여당 국회의원이 내건 빨간색이 태반이었는데, 아영면에선 금세 야당 국회의원의 파란색 현수막으로 바뀌어 있다. 애초 매치 마을과 의지 마을 사람들과는 무관한 '색깔'이다.
전북 남원에 속해 있지만, 아영면에서 남원 시내에 가려면 상당히 멀다. 지방도로 운봉고원을 가로질러 가거나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지방도로는 45분, 고속도로로 가도 족히 30분이 넘게 걸린다. 반면 함양 읍내까지는 꼬불꼬불한 지방도를 따라가도 20분이면 족하다.
거리도 거리지만 지형과 지세도 경남 함양 쪽에 가깝다. 교과서 속 소백산맥은 이웃한 매치 마을과 의지 마을을 가르고 있지만,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남원과 운봉고원의 경계를 지난다. 남원에서 운봉고원에 오르는 여원치가 섬진강과 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곧, 아영면이 속한 운봉고원은 행정구역으로는 전북이지만, 지리적으로는 경남이라 해야 맞다. 행정구역의 명칭과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만 걷어내면, 있는 그대로의 지역색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접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한, 운봉고원 특유의 포용적인 지방색이 그것이다.
아영면 유곡리와 두락리에 걸쳐 있는 가야 고분군은 운봉고원의 포용적인 문화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이곳은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 경남 함안의 말이산 고분군, 경남 창녕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의 송학동 고분군, 경남 합천의 옥전 고분군 등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위의 7곳 중 유일하게 호남지방에 자리한 가야 고분군이다.
고분군은 아영면 행정복지센터에서 300m쯤 떨어진 야트막한 산비탈에 오밀조밀 분포해있다. 도 경계에서 자동차로 3분 남짓이면 닿는 거리다. 도로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찾아가는 데 불편함은 없다. 승용차는 고분군 입구인 성내 마을회관까지 들어갈 수 있지만, 대형 버스는 마을 입구의 2차선 도로변에 주차해야 한다.
현재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인 봉분이 여럿이어서, 고분군 전체를 관람하긴 곤란하다. 펜스가 둘러쳐져 있거나 봉분의 속살이 드러난 곳이라면 관계자의 승낙 없이 접근할 수 없다. 관람 동선에는 봉분의 번호가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고 카펫이 깔려 있어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고분군 입구에는 홍보관이 마련돼 있다. 일반 가정집보다도 작은 간이 건물로, 이곳이 입구임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찾는 발길이 뜸해서인지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대신 스탬프 투어 거치대와 해설을 원하면 연락하라며 관계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붙어있다.
조만간 발굴이 완료되어 주변 정비가 끝나고 번듯한 유물관까지 세워지게 되면 만만찮은 위용을 뽐낼 듯하다. 워낙 봉분의 숫자가 많은 데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있어 고분군 터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유적의 이름조차 두 마을에 걸쳐 있어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이 고분군의 남다른 특징은 무덤의 조성 방식과 출토 유물 등에서 가야와 백제의 문화가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가야계의 돌덧널무덤과 백제계의 굴식돌방무덤이 혼재하고, 껴묻거리 유물도 가야계 토기에서 철기류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온전히 가야 시대 유적이라고 명토 박기 어렵다는 뜻이다.
백제와 가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병립하던 6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고분군이라는 게 통설이다.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파형 토기 등 일본의 그것과 유사한 유물이 나오고, 경남 합천의 옥전 고분군에서는 로마의 유리그릇이 출토되었다. 요컨대, 유물에 나타난 다양한 문화의 뒤섞임은 이곳만의 특징이랄 수도 없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7곳의 가야 고분군을 두고 주변의 나라들과 공존하면서 다양하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해온 가야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백제와 신라, 바다 건너 일본의 문화까지도 수용해 독창적인 문화를 이룩한 것에 대한 찬사다.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인류사적 보편성은 특정 문화의 우월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다는 점을 곱씹게 만드는 대목이다.
고분군을 나와 아영면 소재지로 다시 들어서니 '흥부골'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민간에서 오랫동안 판소리와 소설로 회자된 <흥부전>의 무대이기도 하다. 형제간의 우애라는 도덕적 주제와 빈부 격차라는 사회경제적 주제를 동시에 해학적으로 버무려낸 보편성은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인 마을의 고유한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도로가 사통팔달 뚫려있고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에서,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다르다고 딱히 몽니 부릴 일은 아니다. 다만, 행정적 편의를 위해 그어놓은 경계선이 교류와 공존을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화도, 인종도, 정치도 뒤섞여야 강해진다.
아영면이 속한 운봉고원은 지리산의 너른 품에 기대어 있다. 지리산에서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은 갈무리된다. 지리산은 전북과 전남, 경남 등 세 지역에 걸쳐 있는 모두의 산이기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산으로 추앙받는다. 매치 마을과 의지 마을에서 올려다본 지리산의 모습과 웅혼한 기상은 도 경계와 상관없이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