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
2~3년 전 먼저 용돈을 받기 시작한 남편은 나 또한 매달 10만 원의 용돈을 쓸 것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했다. 생활비에서 내가 필요한 만큼 빼쓰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의 권유가 지속되어 결국은 수긍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돈에 대한 내 만족도는 최상이다. 이유는 일상에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먹을 때, 그리고 영화를 볼 때도 용돈에서 지출한다. 남편과 내가 1년에 한두 번씩 각자 여행을 떠날 때도 가족의 생활비가 아닌 오로지 용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한다. 참 신기하게도 내가 쓸 돈이 생활비와 혼재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작지만 소중한 용돈 10만 원을 쓸 때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훨씬 높았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적은 금액'이기 때문이다. 충분하지 않은 돈이 오히려 매일의 소비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먹으면 가장 기분이 좋아질까? 내가 이 돈으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용돈이란 건 삶에서 내가 100% 통제할 수 있는 돈이었다. 뭐 하나를 사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샀고 어디를 갈 때도 여기를 다녀오면 내 기분이 좋아질지를 생각했다. 용돈을 통해 나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내공이 쌓이고 나자 나는 용돈 10만 원으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바로 나의 '시간'도 이렇게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나에게 없던 새로운 시간
3월부터 육아휴직 중인 나는 이전과 달리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는 가정 보육 중인 아이가 한 명은 꼭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8, 6, 3세 아이가 모두 학교와 기관을 가기에 낮 시간은 오로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어진 일들도 많다. 이루 글로 다 쓸 수 없는 많은 집안 일과 자잘하게 신경 써야 할 세 아이와 관련한 일들 또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5월의 한 날 내 육아휴직을 돌아보았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 그리고 저녁 시간을 모두 육아하는데 쓴다. 주말도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찌 흘러가는지 모른 채로 두 달을 흘려보내고 말았다는 자각이 들었다.
5월의 첫 주가 지나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그래서 이 시간을 좀 더 소중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주말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 주일의 끝 무렵'이다.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까지를 이르는데 그 주말을 맞이하는 편안함이 세 아이를 기르는 내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집안 일과 육아를 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생과 직장인들이 긴장을 내려놓고 평일과 다른 루틴으로 살 수 있는 주말처럼 나도 나만의 시간으로 맘 편히 누리는 때를 따로 떼어 가지고 싶었다.
시간이 한정이 없다면 나에 대해 깊이 돌아보기 힘들다. 그날그날 그저 기분에 따라 하고 싶은 걸 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곱씹어 보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으로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결국 5월부터 평일 중 하루는 나를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나만의 '주말'을 새롭게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집안일로부터 벗어나 등교/등원 그리고 하교/하원으로 하루 만 이천 보를 걸을 수밖에 없는 삼남매의 엄마가 아니라 오롯이 나(박여울)로 살기로 했다.
처음 용돈을 받았을 때 이 돈으로 뭘 해야 제일 좋을까 피식피식 웃으며 진지하게 고민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7일 중 나를 위해 쓸 나만의 시간은 평일 6시간 남짓이지만 '과연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라는 새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5월 11일 목요일 나만의 첫 주말이었던 날, 목적지는 영도 흰여울마을로 정했다. 내 이름 두 글자가 들어간 흰여울마을. 여기를 알게 된 건 5년도 더 전인데 아이들과 함께 오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아 차일피일 방문을 미뤘던 곳이다.
급한 집안일을 새벽부터 시작해 마무리 짓고 나서 세 아이를 기관으로 데려다주었다. 이어서 그토록 궁금했던 흰여울마을을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라고. 지하철 남포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는데 갑작스레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게 그저 꿈같고 설렜다. 골목골목마다 그리고 카페와 상점을 비롯한 여러 곳에 '여울'이라는 단어가 넘실거리니 마치 나를 환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다음 주 수요일에는 몸이 너무 피곤해 집안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시간 반을 침대에서 뒹굴며 이른 낮잠을 자고 휴식하기만 했다. 잘 쉴 줄 모르는 나는 나름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다. 생각보다 몸이 가벼워졌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했다.
또 그다음 주 수요일에는 글쓰기에 대한 우울감이 커져 대형 서점을 찾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시집의 제목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아 눈물이 흐르는 경험을 했고 책이 나의 상한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5월의 마지막 주 화요일에는 요시고 작가의 사진전을 보고 왔다. 작가의 아버지는 요시고 작가에게 사진을 찍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인터뷰를 보고는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구나 안도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육아가 갑자기 쉬워진다거나 아이가 드라마틱 하게 사랑스럽게 보인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녹이 슨 자전거 체인에 기름을 조금씩 뿌리면 바퀴가 점점 부드럽게 굴러가듯 내 일상도 가족관의 관계에서 조금씩 조금씩 삐걱삐걱 거리던 모습들이 제 자리를 찾고 일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게 되었다.
아이들의 말을 뾰족하게 받아들이던 내가 조금은 더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그 안에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를 사랑한 시간과 마음의 크기만큼 아이들을 미소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그 시간을 미리 붙잡고 이때만큼은 내 시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며 살아본 한 달이었다.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그중 6시간쯤은 날 위한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몰두해도 되지 않을까? 이번주의 한나절은 무엇을 해야 내가 행복할지 설레는 고민을 또 시작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