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기자말] |
저는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 먹는 음식을 통해 느끼는 구조감과 향미를 즐기는 편입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볼 때 혀와 뇌는 무척 바빠지고 때로는 음식이 형성된 이유를 떠올리며 지역이나 문화, 날씨까지 생각하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문화권의 음식이어도 큰 거부감 없이 먹는 편이죠. 향신료와 맛의 밸런스가 생경해도 크게 놀라거나 저어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르면 다른가보다 하면서 왜 이런 맛으로 정돈되었는지를 생각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곤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맛있게 먹던 것을 먹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김치를 예로 들면 새우젓을 사용하는 충청도식 김치를 먹으며 자라온 저는 가능하면 일상생활에서는 충청도식 김치를 먹고 싶어 합니다. 때로는 전라도식, 강원도식, 경상도식 김치를 먹으며 "맛이 좋다"거나 "너무 맛있다!"고 하지만 밥상에 매일 올려놓을 김치를 고른다면 가능하면 즐겨 먹던 맛을 먹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정리해보면 맛을 선택하는데 있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시시각각으로 오고가는 셈이죠. 그래도 성향을 골라야 한다면 저는 조금 호기심이 많은 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
과거 카페에서는 한 가지 맛의 원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커피를 파는 매장이 늘었죠. 새로 창업하시는 분들도 시장의 흐름에 맞춰 가능하면 두 가지 맛을 구비하려는 분이 늘었습니다. 고소한 맛과 신 맛으로 나눠 변해가는 취향을 맞추는 매장이 늘고 있습니다.
매장이 그렇다면 로스터리는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더 세분화 되거나 다양한 커피를 소개할 필요가 있지요. 산지에 따른 커피를 구비하거나 계절에 어울리는 커피의 맛을 소개합니다. 최근의 트렌드는 길게는 3개월의 시즌을 바탕으로 짧게는 1달 정도의 월단위로 운영이 되지요. 싱글 오리진이 아니어도 시즌 블렌드를 제시하는 매장도 많아졌습니다. 그런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보통은 납품하는 카페 사장님들의 취향을 고려해 보통 2-3종의 블렌드와 다양한 싱글 오리진 커피를 준비하지요. 외국의 오래된 로스터리 같은 경우는 6-7개의 블렌드를 운용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니 보통 로스터리 카페의 메뉴판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초기인지라 블렌드 커피는 1가지지만 기존과 다른 맛을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블렌드를 마무리 단계에 있고 가능하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커피를 준비합니다. 요즘은 헤아려보니 1주일에 3개 내외의 커피를 소개하더군요. 디카페인과 블렌드, 소개해 드리는 싱글 오리진을 헤아리면 일주일에 5개 정도의 커피가 준비됩니다.
그러니 손님이 오시면 설명을 해드리는데 꽤 공을 들입니다. 고르는 시간을 부담스럽지 않게 해 드리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새로운 커피를 맛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매장이 있는 지역 분들에게 커피의 다양한 매력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커 그런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이 간단한 것도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이름과 맛 정보 뿐이지만 손님들께 대접하기 위한 결과물에 다다르기 까지는 여러 가지 변수를 가늠해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소개를 마치고 며칠이 지나면 또 다음주가 시작되죠.
가장 중요한 건 즐거운 한 잔이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조금 빠른가 하는 생각을 간혹 하곤 합니다. 힘든 것이 아니라 손님이 경험하시기에 꽤 조급한 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워낙 회전이 빠르다보니 아쉬움을 표하는 분들이 늘어난 것이죠.
"지난주에 제가 마신 커피가 어떤 것인가요?'
"오늘 맛보려고 했던 커피가 없네요."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의 편의성을 생각하면 커피의 맛이 바뀌는 것은 사실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닐 겁니다. 어제 즐겁게 마신 커피가 사라지는 것만큼 아쉬운 일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저의 취향이나 고집이 아니라 조금 더 손님의 편의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카페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았겠지만 로스터리이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블렌드로 항상성을 유지하고 다른 커피로 소개를 반복하는 게 좋다고도 이야기 하지만 매장을 방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실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지요. 즐겁게 한 잔 마시는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저도 실은 즐겁게 마시고 싶은 순간을 제공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커피를 소개하고 나누는 게 로스터리의 일이기도 하니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득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잘 모르는 새로운 맛의 커피를 드시는 것과 마셨던 맛있는 것을 다시 마시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선호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