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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기자말]
<한겨레> 전 베이징 특파원이자 전통무예인 팔단금 협회장인 이길우씨 부부가 경영하는 카페 ‘바누’에서 마스코트가 된 유기견.
▲ 성장한 유기견 "바누" <한겨레> 전 베이징 특파원이자 전통무예인 팔단금 협회장인 이길우씨 부부가 경영하는 카페 ‘바누’에서 마스코트가 된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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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만에 재상봉한 유기견 '바누'

헤어진 지 열 달 만에 만난 반려견은 어른이 다 돼있었다. 누가 우리 키아오라리조트 앞에 버리고 간 반려견을 일주일간 돌보다가 새 주인에게 넘긴 날이 지난해 8월 8일, 너무 순하고 어쩐지 기가 죽은 듯해 정이 많이 들었는데 계속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키워본 경험이 없는 데다 투숙객의 어린 아이들이 개를 무서워해 밖으로 안 나오려 했다.

평생 개를 키우지 않게 된 데는 어릴 적 시골 집에서 키우던 개를 어른들이 잡아먹는 걸 보며 생긴 트라우마도 작용했다. 그 충격은 기자 시절 기자단이 이른바 '보신탕'을 먹으러 갈 때도 유별나게 닭을 시켜 먹는 '불편함'으로 이어졌다.

지난 여름, 마침 제주시 조천읍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겨레> 후배 부부가 방문했길래 그 유기견을 개집과 함께 주었다. 키우던 반려견이 노환으로 죽은 뒤 반 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휴대전화 바탕화면에서 지우지 못할 만큼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서도 다시 유기견에게 '무한애정'을 쏟았다.

한 시간쯤 정을 주니 유기견이 후배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고 '양육권'을 포기했다. 반려견을 데리고 온 한 투숙객이 "우리 진돗개처럼 여겨지는 일본 명견 시바종이고 백만 원을 호가한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욕심내기보다는 애견가가 키우는 게 개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는 데려간 반려견의 이름을 '바누'라고 지었다. 그들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 겸 펜션 이름을 딴 것이니 마스코트가 된 것이다. '바누'는 '바다에 누워'의 줄임말인데 언덕 위에 있어 바다 전망이 아주 좋기 때문이다.

후배는 가끔 '바누'가 성장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는데 실물이 보고 싶어 지난주 카페에 들렀다. 고작 일주일 돌봤으니 우리를 알아볼까 궁금했는데, 몇 번 짖더니 금세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동물병원에 들렀더니 견종은 '시바'가 아니라 '시베리안 허스키'라 했단다. 몸무게는 15kg에서 30kg쯤으로 늘었다.

차 시동 걸면 달아나는 유기견의 트라우마

슬픈 사연은 유기견의 트라우마이다. 부부가 외출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면 멀리 달아나는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거였다. 원래 주인이 차에 태워 키아오라 앞에 버린 듯했다. 서울에 다녀오려고 집을 비웠을 때는 사료는 물론 물도 먹지 않고 늘어져 있는 장면이 CCTV에 잡혀 1박2일 만에 귀가했다. '다시 버려졌다'는 생각을 한 걸까?

키아오라에 반려견을 데려오는 건 좋은데 몰래 버리고 가서 우리 부부를 슬프게 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나 두 달 전쯤 진돗개로 보이는 누런 개가 또 키아오라리조트에 버려졌다. 작심하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았는데 장기 투숙객을 따라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투숙객은 길에서 만난 흰 개와 어울리더니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누런 개와 흰 개가 키아오라리조트 정문으로 들어와 후문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그 개들로 짐작되는데,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초라한 몰골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듯했다.

제주에 와서 반려견을 버리는 이유
 
유기견들이 키아오라리조트를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막으려고 뒤쪽 출입구에 전지한 나뭇가지들을 쌓아 놓았다.
▲ 들개 차단 유기견들이 키아오라리조트를 가로질러 다니는 것을 막으려고 뒤쪽 출입구에 전지한 나뭇가지들을 쌓아 놓았다.
ⓒ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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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는 특히 휴가철에 반려견을 버리고 가는 사례가 많다. '귀소본능'이 강한 개일지라도 섬을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제주 날씨가 겨울에도 따뜻해 마음의 부담을 덜려는 걸까?

제주도에 따르면 해마다 5000마리 이상 유기견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상당수는 들개가 되어 제주도 중간산지대에는 줄잡아 2000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야생성이 되살아나고 가축화하기 전 늑대처럼 무리 지어 사냥에 나선다. 최근에도 떼를 지어 축사를 습격해 소와 송아지를 공격하고 말 6마리를 물어 죽이기도 했다.

포획틀로 2021년 480마리, 2022년 640마리를 잡기는 했지만 들개는 경계심이 강해 잘 속지 않는다고 한다. 현행법상 들개는 유해동물에 포함되지 않아 멧돼지처럼 총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서귀포시에서는 유기견 발생을 줄이기 위해 동물등록을 의무화했으나 실제 등록 반려견 수는 절반에 그치고 있다. 전체 반려견은 2만5000마리로 추정되는데 5월말까지 등록한 반려견은 1만3720마리밖에 안 됐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 많은 반려동물을 기를 만큼 우리나라 제도와 의식 수준은 '동반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버리는 개와 고양이의 재입양을 위탁받은 '신종펫숍'이 100여 마리를 암매장한 사건도 그런 풍토에서 발생한 것이다.

정치권은 동물보호법과 시행령·시행규칙을 개정해 4월 27일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실행의지는 약해 보인다. 노화나 질병이 있는 동물을 유기하거나 폐기할 목적으로 거래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돼있지만 단속 실적은 거의 없다. TV를 보면 정치적 쇼에 개가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경기도 부천에서 김혜미-혜준 자매가 데려온 ‘라온’(왼쪽)과 ‘크림’이 11일 아침 드넓은 잔디밭에서 뛰놀다가 잠시 쉬고 있다. 멀리 보이는 C동 7개 객실이 반려견 동반 전용이다.
▲ 반려견 동반 전용 객실 경기도 부천에서 김혜미-혜준 자매가 데려온 ‘라온’(왼쪽)과 ‘크림’이 11일 아침 드넓은 잔디밭에서 뛰놀다가 잠시 쉬고 있다. 멀리 보이는 C동 7개 객실이 반려견 동반 전용이다.
ⓒ 이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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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오라리조트는 28개 객실 중 아예 한 동 7개 객실을 반려견 동반 전용으로 운용해 편리를 봐주는 대신 유기하지 못하도록 한다. 지난 6일 투숙한 김강미(54, 서울)씨 부부는 반려견 두 마리를 데려왔다.

한 마리는 유기견이었는데 '개 팔자'가 너무나 기구했다. 원래 견주는 경북 예천에서 홀로 사는 여성이었는데 개 13마리를 키우다가 사망한 지 일주일이 넘어 발견됐다. 그 여성의 친구는 개들을 유기견 보호소로 보내면 안락사 처분될 것 같아 임시보호 요청을 했다.

머리 묶은 여자 따라가는 유기견의 슬픈 사연
 
김강미 씨가 안고 있는 ‘하루’는 13마리를 키우던 견주가 죽자 임시보호견으로 있다가 입양됐는데 지금도 ‘눈칫밥’을 먹는다.
▲ 유기견의 슬픈 사연 김강미 씨가 안고 있는 ‘하루’는 13마리를 키우던 견주가 죽자 임시보호견으로 있다가 입양됐는데 지금도 ‘눈칫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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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원래 키우던 반려견이 있어 임시보호만 하고 다른 이에게 입양시키려다 정이 드는 바람에 스스로 입양했다. 하루하루 행복하라는 뜻으로 '하루'라고 이름 붙였다.

'하루'의 이상행동은 웨이브 진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만 보면 따라가려 한다는 점이다. 원래 견주가 그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덩치가 작은 '하루'는 13마리 중에서 생존하느라 그랬는지 요즘도 '눈칫밥'을 먹는다고 한다. 밥도 사람이 쳐다보면 먹지 않고 오줌도 밤에만 누려 한단다.

생명체를 일반 상품처럼 양산해 유통시키는 반려견 생산유통구조, 한때의 관심으로 개를 입양하거나 자식에게 선물하고 싫증 나면 버리는 인간 중심 소비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반려견 얘기는 슬픔을 더해갈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태그:#반려견, #유기견, #임시보호견, #반려견전용객실, #키아오라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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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주 키아오라리조트 공동대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 원장, MBC저널리즘스쿨 교수(초대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경제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초대원장(2008~2019), 한겨레/경향 시민편집인/칼럼니스트, KBS 미디어포커스/저널리즘토크쇼J 자문위원, 연합뉴스수용자권익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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