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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8일부터 1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ANROEV(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권리 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the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 대회가 열렸다. Ram Charitra Sah, ANROEV 사무총장이 발언 중이다.
5월 8일부터 10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ANROEV(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권리 네트워크(Asian Network for the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 대회가 열렸다. Ram Charitra Sah, ANROEV 사무총장이 발언 중이다. ⓒ ANROEV
 
지난 5월 8일부터 10일까지, 태국에서 아시아직업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 Asian Network for the Right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Victims, 안로아브)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각 나라의 직업 및 환경 재해 피해자, 풀뿌리 노동 단체, 노동조합,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모여 현안을 공유하고 전략을 토론하는 자리다. 이번에는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홍콩, 대만,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호주, 미국에서 42개 단체가 참가했다. 대회가 열린 태국 노동조합과 피해자 단체도 함께했다.

2023년은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날의 기원이기도 한, 1993년 5월 10일 태국 케이더(Kader) 공장 화재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30주기가 되는 해의 안로아브(ANROEV) 행사가 태국에서 열려 그 의미가 남다르기도 했다(관련 기사: 세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추모일의 기원, 케이더 공장 화재 사고 https://omn.kr/24b7e).

첫날 직업 및 환경 재해 피해자들의 발언을 시작으로, 젠더 비전, 기후위기 행동, 직업성 폐 질환, 환경보건 및 안전 등 여러 워크숍과 한국 백도명 교수와 태국 치앙마이 대학 Voravidh Charoenloet 교수의 강연이 이어졌다. 둘째 날에는 '코로나19 유행 시기 아시아지역 노동자의 과로사', '전자산업', '직업성 사고', 3개의 세션이 진행되었다.

아시아 곳곳의 직업 및 환경 재해 피해와 대응

오래된, 그리고 새로이 드러난 아시아 직업 및 환경 피해사례는 매우 많다. 필리핀의 코로나19 피해 노동자, 인도의 LG 가스 누출 피해자, 태국의 면폐증(먼지를 들이쉼으로써 일어나는 진폐증) 피해자, 한국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인도의 폐질환자, 스리랑카의 살충제 피해자, 인도의 규폐증 환자…. 국내외 기업, 그리고 다국적 기업에 의 한 많은 피해사례가 대회에서 많이 발표되었다. 사망자 등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지만, 기업은 책임지지 않고 보상은커녕 사죄도 하지 않는 문제, 국가조차도 제대로 진상규명을 하지 않는 문제 등은 우리가 계속해서 주목하고 싸워야 할 문제임이 확인되었다.

2020년 5월, 인도 비샤카파트남에 있는 LG화학 LG폴리머스 공장에서 스타이렌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여 명이 치료받았다. 하지만 LG화학은 지금까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 컨퍼런스 첫날 낮, 40도에 가까운 기온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태국의 수도인 방콕 주재 한국 대사관 앞에서 아스팔트에 드러눕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기업 및 정부에 대한 항의와 대책 마련 요구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지난 3년 간의 코로나19 유행은 전 지구적으로 수많은 노동자·시민에게 감염과 사회적 봉쇄 등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던져주었다. 필리핀의 반도체 업체 노동자는, 코로나 19에 감염된 후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소셜 미디어 시위로 이 문제를 알린 뒤에야 직업성 질병으로 인정받고 격리 기간 동안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호소했다.

기조 강연에서 백도명 전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역시 코로나19가 우리 노동자·시민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소개했다. 사회적 봉쇄 등으로 인해 함께 힘을 합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 지구적 위기는 힘없는 자들에게 더욱 큰 문제를 일으켜왔기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함께 싸워 함께 길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재택으로 인한 노동시간 증가, 코로나 시기의 과로사 문제 제기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대두된 문제와 더불어, 함께 새로이 눈여겨봐야 할 문제도 소개되었다. 대회 둘째 날에는 '과로 및 과로사에 미친 코로나19의 영향', '전자산업', '업무상 사고' 세션이 동시에 열렸다.

여기에선 특히 아시아에서의 과로사/과로자살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졌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유행 시기 택배 노동자의 업무량 급증과 과로사망의 속출, 대만에서 팬데믹 시기 과로가 줄어든 듯 보이지만, 재택근무로 인해 통계로 잡히지 않는 여성노동자의 노동시간 증가가 지적되었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Grab' 등 플랫폼 기업 소속 오토바이 기사들이 저임금과 노동자성의 불인정 등으로 인해 일할 수록 플랫폼에 빚을 지게 됐으며,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아 과로사/과로자살로 이어졌다는 문제 제기 등이 이날 소개되었다.

여성들의 참여를 어떻게 확대할지, 또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더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역시 다뤘다. 단체의 운영 및 집행에 있어 여성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다루어지지 않거나 참여가 저조한 문제 등은 참여 단체에서 공통으로 확인되었다. 그런 장벽을 깨기 위해 우리 가 더 노력해야 함이 지적되었다.

안전한 삶과 안전한 노동을 위해

아시아의 수많은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은, 기업의 무책임함과 정부의 외면 때문에 사고를 당하거나 각종 화학물질에 노출되어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더욱 아시아 노동자와 시민이 연결되 어 문제를 공유하며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게 한목소리로 모아졌다. 공장 수준, 지역사회 수준에서 합의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풀뿌리 운동과 노동조합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참여자 자유 발언을 통해 나왔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뜻을 모아 결의문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종 질환에 걸린 사람들에게 대해 충분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 플랫폼 노동자, 미등록 노동자, 이주민, 여성, 소수 유색인종을 보호하고 그들의 존엄을 지키는 데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결의가 모아졌다.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사망과 손상을 불러오는 기업들에 직접 책임을 묻는 것의 중요성, 피해자와 그 단체들이 직업 및 환경 안전보건 정책에 있어 의사결정 과정에 반드시 참여야 한다는 내용도 도출되었다. 기후정의 역시 직업 및 환경 안전보건에 있어 그 영향이 있음을 인지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도 뜻이 모였다.

무엇보다, 위험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이전되는 것을 막고 노동자와 공동체가 함께 연결하기를 지속해야 한다는 결의가 이루어졌다. 코로나19와 같은 전 지구적 위험이 도래하고 무책임한 기업의 행태가 이어질 때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일은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로 가능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6월호에도 실립니다.


#ANROEV대회_태국#아시아_노동_환경_재해_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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