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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천양희 시인의 시 '그 사람의 손을 보면'이 생각났습니다. 군산 신흥동 말랭이마을 '동네글방'의 오늘의 그림책 활동주제는 '손'이었거든요. 지도 선생은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후 노작활동의 소재로 '손'과 '위로'라는 말을 꺼냈답니다. '당신께서 위로받고 싶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당신의 손을 그려보면서 위로의 말을 전해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고, 내 손은 하도 고생을 많이혀서 볼 것도 없어."
"불쌍허기만 허지 뭐. 생긴 것이 울퉁불퉁 못생겼고만."
"그래도 이 손이 큰 일 다 혔어. 이 손 아니면 지금껏 살았간이."
"그럼, 이 손 덕분에 자식들 다 키우고 이렇게 공부도 허잖여."


"손이 고생 많았다"
 
방자 어머님(87)의 손 말랭이마을 가장 연장자로서 어머님은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매주 수업을 기다립니다.
방자 어머님(87)의 손말랭이마을 가장 연장자로서 어머님은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매주 수업을 기다립니다. ⓒ 박향숙

말랭이마을 어머님들의 한글공부 열기는 슬슬 더워지는 한여름 폭염 기운도 설설기며 물러나게 할 정도랍니다. 십여 명의 어머님들이 내뱉는 '당신의 손 이야기' 하소연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써보시라 했습니다. 어느새 13주차 수업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아이구 난 글씨 못써'라는 말, 아무도 말하지 않고 뚜벅뚜벅 하얀 종이에 검은 먹펜을 휘루룩 돌리며 뭔가를 써나갑니다. 엄청난 발전이지요, 라며 셀프칭찬이 끊이질 않아요.

생전 처음으로 당신의 손을 종이에 대고 그려보시며, 손가락 위로 튀어나온 옹이와 깊이 새겨진 주름을 유심히 봅니다. '오메, 불쌍허게 생겼고만'을 반복하시며 정성스럽게 손 모양을 그려냅니다. 손가락 사이사이 펜을 잡고 그리려니 한평생 구불길만 걸어온 당신 삶이 슬펐던지, 차마 다 그리지 못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그 속을 다 알지 못하는 저는 휘릭 하며 단번에 그려주니 젊은 선생의 손놀림이 당신의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 얼마나 약삭빠르고 서운하게 생각하셨을까요.

"다 그렸는디, 뭔 말을 써야 허까?"
"불쌍하다고만 하지 마시고, 고생했다고 위로의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그 말씀 들으면 어머니 손이 감동할 것 같아요."


이제 스케치북 다른 한면이 어머님들의 속 말로 채워집니다.

'내 손 불쌍하다. 고마워. 고생한 손아. 돈도 마니 벌었다. 네 덕에 살아나왔다.'

방자어머님(87)의 글, 정말로 기역 니은을 배우고 익히며 소리를 글로 바꾸는 최고의 모범생입니다.

'오징어를 너무 많이 까서 고생한 내 손.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구나. 미안하다.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같이 가자꾸나.'

정엽어머님(78)의 글. 언제나 예의바르고 솔직한 그 모습이 손에 그대로 나타났어요.

'손아 시장와서 고생 많았다. 생선장사 40년. 갈치사세요. 조기 사세요. 추운데 눈보라 속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장한 내 손.'

덕순어머님(71)의 글. 또 한바탕 큰 눈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강의실이 슬픔의 파도로 넘실거렸습니다.

천 시인도 말했지요.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구두 끝을 보면 /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 ​(중략) /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 마음 끝을 보면 /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 ​성자가 된 청소부는 /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수업 후 이 시를 단톡방에 올려드렸습니다.

시를 낭독할 그날까지 
 
'모시떡'을 소재로 시 한 수 지어오기 글쓰기에 대한 숙제를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모시떡'을 소재로 시 한 수 지어오기글쓰기에 대한 숙제를 이젠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 박향숙

오늘도 역시 어머님들이 챙겨주신 한솥밥을 먹으면서, 허리 굽혀 밥그릇 국그릇을 놓아주시는 그분들의 손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작가도 아닌데, 문해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정성이 차고 넘치는 밥상을 받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창피했습니다.

문해교육날마다 시작 30분 전에 오셔서, 복습도 하고, 숙제도 확인하고요, 하드웨어적인 교과서 수업과 말랑말랑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그림책과 시 수업으로 일주일의 첫날 문을 여는 말랭이마을 어머님들. 박남준 시인의 '상추도둑'을 낭독하며 시 속에 쓰여진 비속어도 사투리도 멋진 시어가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도동년 나뿐연 / 상추 뽀바간연 / 처먹고 디져라 / 한부번도 아니고 매년 / 아따 그러니까 이게 저주라면 참말로 독한 저준데 / 상추먹고 급살 맞을 사람 어디 있을까"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얌전하고 이쁘게만 말하던 어머님들도 시를 빌어 욕해 주고 싶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큰 소리로 토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니 만나는 시마다 '참말로 좋고만. 딱 우리 맘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숙제 하나를 내드렸습니다.

"어머님들, 오늘 드신 모시떡을 소재로 멋진 시 한 수 지어보세요."

아마도 속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너무 잘해도 안 되겄어. 못한다고 엄살을 부려야지. 숙제가 점점 많아지네 그려, 잉~' 그래도 가르침에 욕심 많은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 지금처럼만 하시면 가을에 멋진 작품전 할 수 있어요. 어머님들, 사랑합니다.'

월마다 말랭이마을에는 골목잔치가 있습니다. 책방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시낭송잔치'를 하지요, 우리 어머님들이 글방수업 때마다 함께 낭독한 시들을 개인별 장기자랑으로 낭독하도록 기획하고 있습니다. 촛불의 심지를 불태우는 맘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시를 낭독할 그날을 그려봅니다. 잊지 못할 추억 한 장면 만들어 드리고 싶은 이 마음. 당신들은 아실까요. 아마도 아실겁니다.

#손#천양희#말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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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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