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사회에 큰 파장을 던지는 광고들이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그 중 아파트 광고는 유별나다. 짧은 문장 속에 욕망을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각해 보면 독특한 현상이다. 아파트 광고는 절대로 예쁘거나, 경쾌하거나, 편리하거나, 실용적이거나 튼튼함과 같은 집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성질들을 광고하지 않는다. 광고의 내용은 오로지 사치스러움과 계급적 과시일 뿐이다.
아마도 이런 부류의 아파트 광고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유명한 문구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롯데캐슬) 일 것이다. 당신이 사는 지역, 당신이 사는 집, 그 집의 브랜드, 그 집의 가격이 당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선언. 이 선언에는 인격이나 윤리, 명예 같은 가치들이 들어설 틈이 없다. 이 광고 문구는 천박하다는 이유로,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는 이유로 제법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건설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9년 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의 <기생충>에는 두 개의 집이 등장한다. <기생충>에서도 앞의 광고 문구와 같이 주인공 기택(송강호)이 사는 집이 그와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하루에 고작 한두 시간 햇빛을 볼 수 있는 반지하 창, 그 창으로 볼 수 있는 건 주정뱅이가 노상 방뇨하는 모습뿐이다.
4명의 가족이 앉으면 꽉 차버리는 거실과 화장실 변기가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형적인 집. 가난을 재료로 공간을 빚는다면 그것은 기택의 집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집조차 폭우에 완전히 잠겨버린다. 변기는 역류하고 집은 말 그대로 똥물과 빗물로 가득 찬다. 가혹하다고? 가난은 재난의 다른 이름일 뿐이 아닌가.
<기생충> 속의 다른 하나의 집은 박 사장(이선균)의 집이다. 넓은 잔디밭 마당과 그 마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큰 창이 나 있는 넓고 쾌적한 거실. 2층에 있는 각자의 방들. 완전한 부르주아 가족의 프라이버시 공간.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의 다른 어떤 재산도 아닌 '집'을 욕망하고 집착한다. <기생충>은 가난한 기택의 가족이 자신의 반지하 집에서부터 수직의 미로를 오르내리며 부르주아인 박 사장의 저택으로 침투해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문제의 광고 문구
다시 광고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지난주 또 하나의 아파트 광고 문구가 화제가 됐다. 화제라기보다는 사회의 공분을 샀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더 팰리스 73(The Palace 73)이라는 반포동 옛 쉐라톤 팰리스 호텔 자리에 세워지게 될 고급(하이엔드) 아파트 광고였다.
그런데 문제의 광고 문구를 천천히 뜯어보면 문장 자체가 어색하게 쓰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장은 굳이 타동사 '않은'을 사용하며 번거롭게 쓰였다. 이 문장이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우려면 "언제나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쓰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 광고의 문구를 쓴 카피라이터와 더 팰리스 73의 시행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태여 '불평등'이라는 말을 회피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문구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고 문구는 왜 '불평등'이라는 말을 쓸 수 없었는가.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욕망하는 것, 차별을 스스럼없이 염원하는 것, 사회적 관계로서 계급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금기'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평등'이라는 표현을 피했지만 불평등을 욕망하고 있는 광고 문구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 사회에 계급 간 갈등을 다시 환기했다. 이 도발적인 광고는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 되었다.
광고에 대해 정도가 지나친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시행사는 며칠 만에 문제가 된 광고를 삭제하고 부적절한 광고 문구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퍽 자연스러운 귀결이지만 아직도 더 팰리스 73의 시행사와 광고를 만든 사람들의 진심이 궁금하다. '정말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시나요?' 더 팰리스 73의 분양가는 120억~400억 원으로 알려졌다.
<기생충>의 결말
<기생충>은 계급 갈등으로 끝을 맺는다. 기택의 가족은 집요한 계획으로 과외 선생, 집사, 운전기사가 되어 박 사장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계획은 성공적인 듯 보였지만 정작 문제는 기택의 냄새였다.
박 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기택은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지만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냄새가 선을 넘는다. 지하철을 타면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 반지하 방의 냄새, 가난의 냄새. 이 냄새는 거리를 두어도, 접촉하지 않아도 침투하며 제법 관대한 부르주아인 박 사장에게 잠재된 계급 혐오를 드러낸다. 그리고 익히 알려진 결말과 같이 박 사장의 계급 혐오가 드러날 때 기택은 박 사장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