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 관련 윤석열 대통령 발언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능을 불과 5달여 앞두고 문제 출제에 대해 거론한 터라, 현장의 혼란과 불안이 상당합니다. 특히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아예 다루지 않는 비문학 국어문제"라고 콕 집어 이야기를 한 지점에선 이게 과연 '대통령이 할 이야기인가' 의문도 듭니다.
사교육비를 화두로 이야기를 하던 윤 대통령은 그 방안을 언급하며 수능 출제를 꺼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발언은 '대통령'의 체급에 맞지 않습니다.
지난 15일 교육부의 업무보고 뒤에 이어진 이주호 장관의 브리핑 이후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의 해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배제하라"고 말했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은 수능의 일부 문제가 교과과정 밖에서 출제되어 사교육비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현재 한국 대학입시가, 또 교육 상황이 이런 단순한 말로 해결될 수 있었다면 대입 때문에 고생하고 고민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는 드물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면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란 이야기입니다.
당국은 이미 학교 지필고사, 수능, 대학별고사 모두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하라고 많은 행정·재정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까요. 가령 고입과 대입에서 선행학습 영향평가를 하는데 대체로 교육과정 범위를 준수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입시 사교육비는 갈수록 더 늘어납니다. 왜일까요?
한국의 사교육비 작동 원리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조사해 발표한 '2022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부를 잘 할 수록 사교육비가 많이 들고 사교육 참여율 또한 높습니다. 이는 학교공부를 보충하려고가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 하려고 학원을 간다는 뜻입니다. 만약 '보충'이 사교육비 작동 원리라면 성적 뒤처진 학생이 더 학원비를 많이 쓸 겁니다.
정리하면, 단순합니다. 대한민국 '사교육' 혹은 '사교육비'는 대입 시험 문제를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내느냐의 여부나 난이도가 관건이 아닙니다. '경쟁'이 원인입니다. 군비경쟁 같은 겁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정 경지에 올라도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라'가 되지 않습니다. 경쟁을 완화해야 학원 가는 발걸음을 돌릴 수 있고, 부모의 노후소득 당겨쓰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말했어야 합니다. "경쟁 완화 방안을 마련하라." 또는 "학벌사회 해법으로 학력간 학벌간 임금격차 해소방안을 강구하라"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했으면 사람들이 고개 끄덕끄덕 했을 겁니다.
대학서열이나 고교서열을 거론해도 됩니다. 특히 이번 6월에는 교육부의 정책 발표가 몇 개 예정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멀지 않아 글로컬대학 예비지정이 있습니다. 지방대에 5년간 1천억 원을 지원하는 대형사업입니다. "글로컬대학 사업을 계기로 지방마다 서울대급 학교 육성하는 방안을 모색하라. 대학서열 완화와 사교육비 해소에 도움되는지 검토하라"라고 했으면 조금이나마 호응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학벌사회, 대학서열, 고교서열은 왜 말하지 않나
정부는 자사고 외고 존치 문제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입니다. "자사고 외고를 존치시키더라도 추첨 선발 등 사교육비 해소방안을 찾아보라. 일부 학교만 학생선발권 있으면 불공정하다"라고 발언했어도 눈길을 끌었을 겁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학벌사회, 대학서열, 고교서열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2028학년도 새 대입제도 시안이 6월 발표되는데, 한 마디 언급도 없었습니다. 대신 150여 일 남은 수능 출제를 도마 위에 올려 혼란을 자초했습니다.
이 발언이 대통령 체급에 걸맞는지 의문입니다. 대통령으로서 사교육비 관련하여 할 말이 그것 뿐이었다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런 인식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쏠림' 해법도 시험 문제 출제에서 찾을지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아득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레디앙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송경원은 정의당 정책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