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시민기자들이 일상 속에서 도전하고, 질문하고, 경험하는 일을 나눕니다.[편집자말] |
박 기자 3 : "일단 저도 제 기사 셀프 공유하고요. 연휴 시작에 맥주 한 캔 하며 삐뚤어져 버리겠슴다."
박 기자 1 : "앗. ㅋㅋㅋ 기자님ㅠㅠ 죄송해요, 삐뚤어지신다는 말씀이 너무 와닿아요. 글쓰기 요노~~~~옴 ㅜㅜ"
박 기자 2 : "전 요놈! 보다 늘 모시고 살아야 할 힘든 분! 이런 느낌이네요. 각자 또 함께 나누는 고민들, 기자님들 덕분에 감사하고 따뜻해요~ 시원하게 한 잔 하시고, 연휴도 잘 보내세요."
<오마이뉴스>에는 다양한 시민기자 그룹이 있다. 시민기자가 된 지 거의 3년이 넘어가는 내가 처음 속하게 된 그룹은, 세 명 모두 박씨 성을 가진('뜨리박'이라 하니 멤버들이 구수하다며 반겼다) 기자들의 모임 '부산갈매기'. 윗글은 그 단톡방 대화 내용 일부를 옮긴 것이다.
박 기자3은 당시 송고한 기사가 등급(<오마이뉴스>의 기사 등급. 잉걸, 버금, 으뜸, 오름 순이다)이 낮다며 불금에 (꼴랑) 맥주 한 캔 마시고 삐뚤어져 버리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사에서 중요한 시의성이 없어도 글이 출중하면 오름 등급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것. '사는 이야기'는 꼭 시의성이 없어도 오름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단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할 수 있는 것은 박 기자3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 글이 좋은 등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실력이 탁월하지 않아서라고 자책하며 그래서 더 등급에 연연하게 된다고 멤버들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나는 글쓰기와 밀당을 하는 것 같았다.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주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가 지난 5월, 최근 '편집을 당하기(!) 전에 편집을 알면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취지로 열린 시민기자 교육(이라 읽고 '정신교육'이라 불러야겠다. 하하하)에 참석하게 되었다.
강사는 현재 편집자로 일하면서 문장 튼튼/교정, 교열, 윤문하는 법을 강의하는 <쪽 프레스> 김미래 편집장이었다. 첫인상은 어딘가 모르게 날카로워 보였고 목소리는 차분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열심히 받아적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시간이 갈수록 이분의 관점이 매우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예사롭지 않았다. 강의를 듣다가 점점 상체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편집하고 나서 새로 생긴 것과 또한 사라진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면 퇴고하는 과정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지금의 나는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나'이기 때문에, 오늘의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여태까지 알던 단어만으론 부족하죠. 그러니 지금 자기가 쓰는 말뭉치가 어느 정도의 볼륨을 갖는 사전인지 계속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자꾸 망각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나만의 사전이 얇아진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국립국어원에 들어가서 새로 생긴 단어, 사라진 단어를 찾아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런 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 그 일을 저 밑바닥까지 찬찬히 들여다본 사람, 치열하게 그 일을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같았다.
나는 질문했다. "도대체 편집(퇴고)의 끝은 언제인가요?"라고. 그는 답했다. "글쓰기의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그 시간을, 자신이 점점 더 나아지게 하는 변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라고. 적확했다. 또 퇴고하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질감'이 내 안에 생기기 때문에 그 과정을 답답해 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다.
편집을 하기 전과 후에 달라지는 자신을 거울로 삼는다니, 아마도 편집자로서 확고한 정체성을 갖는 그만이 내릴 수 있는 단단한 결론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저분은 정말 편집하는 과정을 사랑하는구나.'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또 따라 하고도 싶다. 그래서 나도 내 일을, 내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해 보았다.
'작가들 인터뷰를 보면 자기가 쓴 글이 자식같이 사랑스럽고 애틋하다던데 너는 그랬던 적이 있니?'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잘 쓰고 싶기'만' 했다. 내가 쓴 기사가 독자의 마음에 착 달라붙어 '좋아요'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길, 누가 봐도 '참 잘 쓰네'라는 말을 해 주길 바라는 욕망만 가득했지, 정작 내 글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아껴 본 적이 없었다.
글 쓰는 일이 어색하고, 크게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글이 부끄러워, 어디 가서 글 쓴다는 말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말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김미래 편집장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글에도 그리고 고민만했던 내 마음에도 미안했다. 섭섭했을 것 같았다. 내 글을 찬찬히,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디 고칠 데 없나, 그것만 찾아다녔으니까.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기사 중 아픈 손가락, 좋아요가 하나도 없던 기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좋아요'(<오마이뉴스>에서는 엄지척)를 눌러 단 하나의 엄지척을, 내가 해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기사를 쓸 때 어떤 마음이었고, 얼마나 많이 생각하며 고치고 또 고쳤는지를. 송고 버튼을 눌러 보내 놓고도, 아직 '검토전'이면 회수해서 다시 수정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를.
내 글을 내가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쓰고 못 쓰고와는 다른 문제였다. 내가 쓴 기사가 지난 1년 동안의 <오마이뉴스> 랭킹 30에서 무려 10위에 올라와 있었다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으니, 참으로 무심했음을 고백한다.
이제는 글 쓰는 게 맘대로 안 된다며 불금에 맥주 한 캔에 삐뚤어질 게 아니라, 넘치는 애정을 담아 누가 봐도 좋아하는구나 싶은 눈동자로 내 글을 바라봐야겠다. 앞으로 내 기사에는 내가 제일 먼저 가서 '좋아요'라고 사랑 고백을 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