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영웅의 제복'을 우체국으로부터 받았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이기창·93) 앞으로 온 것이다. 4월에 신청했는데 6.25전쟁 기념일 앞두고 이날 도착한 것이다.
집배원도 제복을 전달하면서 별도로 참전용사가 있는 우리 집에 경의와 축하를 드린다고 말해 무척 인상 깊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제작한 6.25 참전유공자 '명예제복'을 2만 2천여 명의 신청자들에게 21일부터 전달하고 있다.
연갈색 재킷과 청색 하의, 넥타이로 구성된 명예제복을 받아 든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새 옷을 선물 받은 것처럼 기뻐하셨다. 얼마 전 운동복과 운동화를 새 것으로 사드릴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명예제복은 요청한 치수대로 몸에 잘 맞았다. 제복을 갖춰 입은 아버지는 "옷이 날개 같다"라며 흥분하면서 눈가에 약간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제복의 힘'이랄까. 일상 옷을 입을 때와 달리 제복을 입는 순간 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와 처진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노병의 아버지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부동자세를 취하며 참전용사의 기백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리고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전우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이처럼 아버지의 당당한 모습은 내가 어릴 때 보고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1950년 전쟁 직후 입대해 1967년까지 직업 군인으로 복무했다. 이후 지금까지 참전용사로서의 자긍심과 명예를 하루라도 잊은 적이 없다.
아버지가 명예제복을 벗어 옷장에 걸어 놓으시면서 6.25참전유공자로서의 뿌듯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니 자식으로서도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질없지만 구순을 훨씬 넘긴 아버지가 앞으로 이 제복을 몇 번이나 입을지 잠시 생각해 봤다. 외출하는데 고령에다 거동이 힘들기 때문이다.
명예제복을 보며 돌아가신 아버지 전우 몇 분이 갑자기 떠오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만남과 교류를 이어가신 그분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뵙던 분들이다. 제복 입은 분은 이제 아버지가 전우 중에 유일한 분이 됐다.
그래서 명예제복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명예제복 발단이 몇 년 전 초등학생들이 생존하는 참전영웅들 모두에게 명예제복을 해드리자는 손 편지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간 아이디어 빈곤과 참전영웅에 대한 소홀함이 부끄럽기조차 하다.
명예제복을 계기로 6.25 참전유공자뿐 아니라 제복 입은 호국영웅들 누구나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사회분위기가 정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복에는 국가유공자로서의 자부심과 호국보훈의 숭고한 가치가 들어있다. 아버지가 제복을 받고 유난히 반색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인근에 사시는 6.25 참전용사 김재근(90)씨도 전달받은 명예제복이 자랑스럽다면서 "조만간 용인의 아내 묘소를 가는데 이때 멋지게 차려입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제언하면 명예제복에 제모가 없는데 이왕이면 영웅들의 제모도 지원했으면 한다. 제복만 입고 모자가 없으니 노병의 노회한 모습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그동안 행사가 있을 때면 6.25 참전유공자회가 만든 모자를 착용했다.
오늘 6.25전쟁 73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초청된 참전영웅들의 제복은 통일됐으나 모자는 각양각색이었다. 모자를 착용하지 않은 분들도 여럿 보였다. 명예제복은 제모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누가 그렇지 않던가 "모자가 패션의 완성"이라고 말이다.
명예제복은 이제 아버지의 '공식적인 외출복'이다. 우선 가까운 시일 내에 아버지가 현충원을 참배하시도록 도울 계획이다. 정부도 6.25 참전유공자들이 제복을 입고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자주 마련해 주길 당부하고 싶다.
끝으로 국가보훈부는 8월까지 전담 콜센터 (☎1899-1459)를 통해 제복 신청을 받아 11월까지 생존 6.25전쟁 참전 유공자들에게 제복 지급을 완료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