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
"오늘은 뿌링클 먹자."
"뿌링클 너무 많이 먹었어. 오늘은 마늘치킨 먹자."
"그만해. 메뉴 통일 안 되면 치킨 못 먹어."
또 시작이다. 오늘도 우리집 두 김씨들은 서로 먹고 싶은 것을 먹겠다고 주장 중이다. 메뉴 앞에 나이가 무색하다. 메뉴 통일은 왜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카테고리를 배달 치킨으로 정하는 것도 엄청 오래 걸렸다.
결정이 다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또다시 서로 먹고 싶은 치킨의 종류를 주장하는 중이다. 입은 달랑 셋.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닌데 입맛의 편차가 커도 너무 크다. 배달치킨을 결정하는 일도 이런 지경인데 집 밥 메뉴를 결정하는 일에는 더 어렵다.
내겐 너무 어려운 메뉴 통일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주로 야채나 생선 베이스의 토속적인 메뉴를 좋아한다. 낯선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다. 신혼 여행으로 태국에 갔었을 때도 음식이 낯설어 새우깡과 바나나만 먹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마라탕을 좋아하지만 입이 짧은 초등 고학년 여자 어린이는 고기와 떡볶이, 피자, 치킨, 떡볶이 등 엄마가 해주는 집 밥보다 배달 음식을 더 좋아한다. 엄마가 야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배달 음식을 먹여서 '이 아이에게 엄마 음식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을까'가 의문스러울 정도이다.
뿐만 아니다. 간식 배가 따로 있어서 밥을 먹고 난 다음에도 간식을 꼭 찾는다. 아니 그럼 밥을 더 많이 먹으면 되는거 아닌가? 싶은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밥하기를 담당하는 나는 항상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 샐러드나 야채를 많이 먹고 싶은데 우리집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내 취향의 토마토 치즈 샐러드나, 코올슬로 등등을 잔뜩 만들어 놓고 혼자 먹는다. 다들 이런 걸 좋아라하면 얼마나 편할까 싶지만 다른 김씨들은 손도 대질 않는다.
밥 하는 일에는 식단에 필요한 식재료들이나 간식을 구매하는 일도 포함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시장이 멀기 때문에 뭐 하나 떨어지면 바로 구매하기도 힘들다. 무조건 인터넷으로 배달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재료 구매에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더불어 너무 많은 품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잘 먹일 수 있을까를 머리 터지게 고민하게 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나도 쉬고 싶다. 그런데 내가 먹을 샐러드는 포기하더라도 남편이 먹을 한식 풍의 반찬과 어린이가 좋아라하는 떡볶이까지... 저녁 한 끼 먹자고 음식을 몇 개나 만드는 건지 원. 도저히 이렇게는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다.
누가 밥 차려주면 아무런 불만 없이 잘 먹을 수 있는데… 엄마는 급식도 없던 시절 매일 장을 봐서는 다섯 식구의 밥을 어떻게 삼시세끼 평생 차리셨을까. 정말이지 리스펙이다.
입맛 통일 안 되는 김씨 부녀의 취향에 맞추느라 배달을 시켜버리게 되는 일도 잦다. 음식 배달은 돈도 돈이거니와 쓰레기도 말도 못하게 많이 나온다. 시켜 먹을 때는 편하지만 이래저래 마음과 돈의 부담이 참 크다. 게다가 아무래도 자극적이니까 건강에도 좋지 않겠지.
그렇다고 집에서 밥을 많이 해 먹는 것도 아니다. 아침은 바빠서 대강 먹고, 점심은 직장이나 학교에서 먹으니 함께 먹는 날은 하루에 저녁 한 끼와 주말뿐인 데도 이지경이다. 아이가 크고 자신의 메뉴 주장을 시작한 이후로는 메뉴 선정이 더 쉽지 않아졌다.
메뉴 고민의 해결책
그러던 어느날 블로그 이웃분이 메뉴 때문에 고민하시다가 주간식단표를 만들었다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유레카~! 바로 이거야! 메뉴를 미리 정해놓으면 싸울 일이 없잖아."
정말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일주일에 하루만 메뉴 정하느라 고생하면 되는 식단표. 가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는 방향으로 그렇게 5월의 어느날부터 우리집 식단표가 시작되었다.
역시 처음에는 반발이 있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든다거나 다른 것을 먹고 싶다는 이유 등등이었다. 반발은 다음주에 반영해 주겠다고 조금씩 설득을 했다. 이렇게 메뉴를 일주일에 한 번씩 의견을 수렴해서 출력해 냉장고에 붙여놓고 메뉴를 만들어주었더니, 예전보다 메뉴에 대한 민원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화요일의 아침메뉴 충무김밥. 평소 같았으면 민원이 있었을 법도 하다(너무 맵다, 혹은 국물이 필요하다, 혹은 안 먹는다). 식단표 덕분인지 잘 넘어갔다. 각자의 그릇에 원하는 만큼 덜어서 먹으라고 했더니 더 좋아라 했다. 다음 번엔 셀프로 싸서 먹으라고 해야겠다는 꼼수가 생각났다.
주간 식단표 만들기 팁
1. 집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참고로 메뉴를 일주일 단위로 미리 정한다.
2. 간간히 식구들의 민원을 중간중간에 끼워넣는다.
3. 배달 음식은 일주일에 딱 한 번으로 제한한다(각자의 사정에 맞추어서).
식단표 그 이상의 효과
이제 한 달째 네 다섯 번의 싸이클이 돌고 나니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듯하다. 사실 식단표대로 먹지 못한 날도 있다. 어느날 누군가 식재료를 나눠 주거나 하는 날은 메뉴가 급 변경되기도 했다.
너무 지키려고만 하지 말고 어느정도 융통성있게 유지하는 것이 밥 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이번주 식단표는 이렇다.
나눔받은 미나리로 나물을 만들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국을 해동해서 활용할 예정이다. 마침 이벤트로 받은 치킨 쿠폰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 통 크게 쓰기로 했다. 메뉴 선정을 위해 가족 톡방에서 메뉴 추천이나 레시피도 공유받는다. 조용하던 가족 톡방이 메뉴를 정하는 날이 되면 활기차다.
별것 아닌 듯 보였던 주간식단표 만들기로 메뉴 통일이 조금은 수월해져서 마음이 편하다. 비록 집안 일이 줄어 든 것은 아니지만 민원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나아진 기분이다.
앞으로는 내 입맛만 주장하지 말고 다양하게 먹어보자는 차원에서 식구의 날을 정해서 개인 취향의 음식을 하는 날도 정해보려고 한다. 아마 제일 먼저 생일을 맞이하는 남편이 그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메뉴 통일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시는 분들이라면 주간식단표를 활용해보시길 권해드린다.
>> 제가 제작한 주간식단표를 첨부합니다. 적절히 활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