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
30년 이상 법조인의 길을 이어가고 있는 향우가 있다. 경남 함앙 서상면 출신 김경수 변호사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그는 대형 비리 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낸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꼽혀왔다.
대검 중수부장, 대전고검장, 부산고검장, 대구고검장 등 화려한 이력을 남기고 2015년에 검사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현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2의 법조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향우 김 변호사를 만나고자 서울 강남으로 향했다.
지난 6월24일 오전 법무법인 율촌 사무실이 있는 강남 파르나스타워에 도착한 취재진을 김 변호사가 반갑게 맞았다. 멀리 고향에서 찾아온 만큼 그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고향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검찰이라는 무거운 조직에 오랜 기간 몸담으며 지켜온 품위가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고향 이야기에는 한없이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김 변호사다.
"저는 고향 함양을 엄청 사랑합니다. 지금도 함양만 가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몸은 멀지만 마음만은 가까운 고향 함양에서 출발한 그의 여정을 들어보았다.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다
김 변호사는 경남 함양군 서상면 대남리 대로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서상에서 자라다 교사였던 아버지가 진주로 발령받으면서 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연세대학교 법대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을 다니며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조직 생활에 대한 자신감과 더불어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점에 있어 검사의 길을 선택한다. 이후 1986년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사법연수원(17기)을 거쳐 1988년 3월 검사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시골 사람들은 생활 특성상 참고 인내하며 단합하는 부분에 있어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직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 검사라는 일이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는 일이고 제가 생각하는 이상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고 판단해 검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임관부터 2015년까지 28년의 검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에 있어 여러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1997년 중수부에 파견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비리를 수사했고 2001년에는 대검 특별감찰본부 소속으로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된 감찰조사도 담당한 바 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씨 비리와 법조브로커 윤상림씨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제가 검사로서 근무한 시기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고도성장이 이루어지고 나름대로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하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88 서울올림픽과 2002 한일월드컵도 열린 특별한 시기이기도 했죠.
한편으로는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가 엄청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당시 저도 검찰 특수부에서 많은 부정부패 수사를 진행했었습니다. 고위공직자, 정치인, 재벌 기업 등을 수사하는 등 많은 기회를 얻었고 그 점에 있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 1960년대,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 1980년대, 1990년대 들어오면서 부정부패의 문제 때문에 나라가 확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런 상황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성공한 편입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검찰의 많은 과오도 있었지만 제가 검사로서의 역할을 다한 그때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어떤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검찰이 시대적 소명을 다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 조직 일원으로서의 검사
검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김 변호사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조사했던 순간과 대검 중수부장 시절 중수부를 약화시키되 지역별 전문 수사 부서를 만들었던 일을 꼽았다.
"제가 평검사 시절에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두 분을 직접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의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뭐냐 하면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을 가진 분들도 같은 인간으로 볼 때 모두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 연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 이런 것들이 엄청 중요하다는 걸 제가 많이 깨달았습니다.
대검 중수부장 시절도 생각납니다. 당시 대검 중수부가 너무도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며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검 중수부의 역할을 약화시키고 금융·정권 조사부, 해양범죄 수사부 등 전국 각지에 지역별 전문 수사 부서를 만들었습니다.
시대가 점점 복잡화되고 고도화될수록 검찰 수사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전문성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 현재 전문 수사 부서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전문화에 역할을 했다는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2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부정부패와 싸우고 조직을 개선하는 등 검찰과 국가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이런 부분들을 인정받아 당시 고검장의 자리까지 오른 김 변호사. 검사 생활을 마무리할 때 후배 검사들이 내부 정보망을 통해 아쉬움을 표할 만큼 검찰 내부에서 인기가 상당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검사 생활에 있어 보람도 있는만큼 아쉬움도 있을 것이다. 최근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는 상황을 바라보는 김 변호사의 마음은 무겁다.
"최근 잘 아시다시피 지난 정권 때 검찰의 수사권 제한 등 이런 문제들이 굉장히 심각하게 논의되었고 실제 입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힘 있는 권력을 가진 검찰이 그야말로 국민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고 오히려 권력을 쫓아갔던 그런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봅니다. 좀 더 국민에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검찰 간부를 지낸 사람으로서 후회스럽고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함양에 도움될 방법 찾고자 노력할 것
오래 몸담았던 검찰의 현 상황만큼이나 지역 소멸 위험에 놓인 고향에 대한 마음도 안타까움이 앞선다. 끝으로 김 변호사는 함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자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저는 고향 함양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함양이 지금 인구가 줄어들고 지역에서 소외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함양을 위해서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우리 출향인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가면 함양에 새로운 기회가 또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대를 갖고 출향인들과 많은 소통을 통해 함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고자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김경민.최경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