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한도를 1억5000만원까지 상향하는 정책을 검토 중인 가운데, 하위 90%는 사실상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억원 이상 증여가 가능한 계층에만 혜택을 주는 '불평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장혜영 의원실(정의당)이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한도 상향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1억원 이상 증여 가능한 고소득 가구에만 혜택이 쏠리게 된다.
정부는 지난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현행 10년간 5000만원인 증여세 공제 한도를 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같은 정책은 평균 소득 가구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부유층에만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
신한은행 '2017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들의 자녀 1인에 대한 평균적인 결혼비용 지원액은 6359만원이다. 이를 현 물가 수준에 따라 보정하면 2022년 기준 7217만원인데, 이에 대한 증여세는 현행 세법상 221만7000원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증여세 공제한도가 1억원으로 늘어나면 이 증여세는 면제된다.
"윤택한 가구에만 혜택...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 중단해야"
또 주택과 차량 등 구입 자금이 아닌 예식홀, 예단 등 혼수비용에는 사실상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증여세 면제 한도는 늘어난다. 2023년 듀오웨드에서 최근 2년간 결혼한 신혼부부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평균 혼수비용은 5073만원에 달한다.
신한은행 보고서상 월소득이 800만원인 가구의 평균 지원액은 1억1475만원인데, 2022년 물가로 보정하면 1억3023만원이 된다. 여기서 평균적인 혼수비용을 제외하면 증여액은 7950만원이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증여세는 295만원이다. 정부가 증여세 공제액을 1억원으로 상향할 경우 월소득 800만원 가구는 증여세 295만원을 면제받게 된다는 얘기다.
당시 월소득 800만원은 상위 10% 수준에 해당하는데, 2021년 기준으로는 920만원이 상위 10%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장혜영의원실 쪽 설명이다. 다시 말해, 상위 10% 이상 가구에 증여세 면제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증여액이 커질수록 공제한도 확대에 따른 감면 혜택도 커진다. 공제한도가 1억5000만원까지 상향되면, 결혼자금으로 2억원을 증여하고 혼수비용은 비과세 처리할 경우 감면액은 993만원에 달한다. 또 3억원을 증여할 경우 세액은 현행 2985만원에서 993만원으로 대폭 줄어들며, 이에 따른 감면액은 1992만원이 된다.
장혜영 의원은 "결혼 가구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 결혼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상 부모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윤택한 가구에게만 혜택을 안겨주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끝없이 벌어진 불평등을 더욱 확대하는 각종 감세와 자산가격 부양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며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한도 확대 시도는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