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때였다. 밤에 있을 캠프파이어를 준비하는 선생님을 도왔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는데,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봐라. 저게 은하수란다."
밤하늘에 희붐한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별들의 강, 별들이 모여 우유처럼 흐르는 자국.
"와아!"
고개를 들고 선생님이 가리키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밤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 친구들과 무얼 하며 웃고 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선생님의 한 마디와 숨이 막힐 것 같던 기분만은 생생하게 남았다. 마음속 환등기를 돌려볼 때면 종종 은하수를 보았던 그 밤이 떠올랐고 여러 번 되감아 보는 사이 선명해졌다.
하늘과 하늘 위에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기만의 원리도 돌아가는 존재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구름과 저녁놀, 반짝거리는 별과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바람, 눈(雪)과 비까지.
흐린 날이 이어지다가도 거짓말처럼 맑은 날이 돌아오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된 하루에도 어김없이 해는 진다. 그것들은 내 마음의 상태와 관계없이 고유한 리듬으로 흐른다. 인간들이 무얼 하든, 얼마나 복잡하고 이상한 일을 벌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고 인간의 논리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안에 살아간다는 게 자주 위안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원리 안에서 세상은 변하고 흐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변하거나 흐르지도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불변의 진리라는 게 감춰져 있어 밤과 낮이 오고 계절이 가고 만물이 순환한다.
우리는 인간의 통제 너머에서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자연과 우주로부터 보살핌을 받는다.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름다운 존재를 생각하면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일도 별거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변함없는 것들이 건네는 위로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 유난히 힘겨운 하루가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우울했다. 더위에 모든 게 녹아내릴 것 같았다. 간신히 하루를 견디고 해 질 무렵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는 여중생들, 걱정 하나 없이 해맑게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들, 의자에 앉아 쉬는 어르신들…
구름은 느슨하게 풀어져 흐르고, 푸른빛에서 회색빛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에 저녁 해가 살구 빛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이 넘나들며 단단하게 뭉쳐 있던 한낮의 더위를 풀어냈다. 사람들은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고 저마다의 저녁을 맞았다.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다른 누군가도 그랬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또 같이, 각자 주어진 하루를 버티어 살아낸 후 이렇게 모였을지 모르겠다고. 나만의 고통으로 팽창하던 삶이라는 풍선에서 스르륵 바람이 빠져나갔다. 작아지고 작아져 느슨해졌다.
바람이 오가며 나를 쓰다듬었다. 붉어져가는 하늘이 오늘이라는 하루에 마침표를 찍었다. 넉넉한 저녁이 사람들 사이로 내려앉는데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수고했다고 새로이 올 내일을 기대하라고.
잠잠히 제 할 일을 하는 하늘과 숲을 보며 내게서 고갈되려는 온유한 기운을 회복한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키워 한여름엔 넉넉한 그늘을,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베풀고, 한 해의 끝에서는 자신을 감싸는 옷까지 기꺼이 내려 놓길 반복하는 나무들은 어떤가. 너르게 팔을 벌린 채 한 자리를 지키는 나무를 보면 사소한 일에 투덜거리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지고 만다.
우리 집 작은 화분 속 식물도 소리 없이 자신의 삶을 산다. 식물마다 제 리듬에 따라 키를 키우고 잎을 늘린다. 일주일에 한 번, 화분에 물을 주고 자라난 새 잎을 발견하거나 시들어버린 잎사귀를 솎아낼 때면 이상하게 나를 보살피는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 내가 들을 수 있는 가장 미세한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이고, 세밀한 모양을 보려 눈을 다시 떠보려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가장 키가 큰 휘커스 움베르타는 한 해 동안 손가락 길이만큼 키를 키운 후 여름이 되면 지난해의 잎을 모조리 떨궈 낸다. 그러고나서 가지 끝 뾰족하게 말린 몽우리를 펼쳐 하나 둘, 셋, 넷, 여린 배추 같은 잎사귀를 다시 피운다.
휘커스가 새 잎을 내고 무성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이면 족하다. 거기에 어떤 원리가 숨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엄청난 속도를 생각하면 물을 얼마나 주고 빛과 바람을 얼마나 들이는지와도 상관없는 것 같다. 나의 소관을 떠나 저만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 자신의 진리 안에서 일어나는 흐름, 그래서 조금 기적 같은 일이다.
인간의 일에 전전긍긍하다가도 순리대로 고스란히 펼쳐지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수 있다. 자기만의 원리로 매해 폭풍 성장하는 휘커스에게 감탄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또한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순리로 저마다의 삶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 않을까.
각자의 리듬으로 아름다운 세계
얼마 전 딸아이와 어울려 노는 친구들 몇 명과 근처 공원으로 곤충 채집을 나섰다. 비 내리고 그친 후라 하늘은 개었고 커다랗게 부푼 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비쳤고, 잠자리들이 허공을 촘촘하게 수놓았다.
아이들은 기다란 잠자리채를 들고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녔다. 잠자리는 한자리에서 가만히 날갯짓하는 듯 보였는데 아이들이 다가가면 엄청난 속도와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달아나 버렸다.
쫓아도 소용없어 보였지만 아이들은 잠자리를 따라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순간에 몰두하느라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생기어린 두 눈으로 순간에 녹아들어 갔다. 잠자리도 비슷했다. 아이들의 훼방에도 가뿐하게 방향을 트는 잠자리의 비행은 한없이 홀가분해 보였다. 자신의 속도와 리듬으로 유유했다.
오후의 빛이 베일처럼 드리워진 공원에서 아이들과 잠자리, 색색으로 환한 꽃들이 각자의 리듬과 결로 자유로웠다. 누구도 누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저마다 고유한 상태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 뜻밖의 선물을 받아든 사람처럼 내 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원리에 충실한 존재들이 제각각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세계, 불협화음 속에 완벽하게 아름답기도 한 세상. 우리가 사는 지구가 그런 곳이라는 걸 불현듯 깨닫고는 한다. 자기만의 진리를 따라 흐르는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위로받는 순간이 삶이 우리에게 대가없이 건네는 선물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