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검사한다고 키가 커지나."
"왜 우리 아이들을 키와 겉모습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나."
대전시의회가 지난 10일 입법예고한 '대전시교육청 학생 키 성장 지원 조례안'이 논란인 가운데, 대전지역 학부모와 시민단체들이 해당 조례 부결을 촉구했다.
대전복지공감, 대전참교육학부모회,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전교조대전지부, 평등교육실현을위한대전학부모회 등은 19일 오전 대전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의회는 획일적인 성장판 검사 지원조례를 폐기하고, 보편적인 학생 건강 지원 조례를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대전시의회 김영삼(국민의힘·서구2)의원은 지난 6일 국민의힘 소속 시의원 13명의 서명을 받아 해당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조례안의 목적은 "학생의 건강하고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학생의 키 성장 지원에 필요한 사항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육감이 시행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시행계획에 학생 성장판 검사 지원, 키 성장 맞춤형 급식 식단 및 운동 프로그램 개발·운영을 명시하고 있다.
이 조례의 핵심은 성장판 검사비 지원이다. 조례안에 첨부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대전지역 초등학생 전체에 대한 성장판 검사비(X-ray 검사 및 상담비)는 매년 약 37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조례를 대표발의한 김영삼 의원은 후보 시절 핵심공약으로 '대전 학생 평균키 1cm향상'을 내세우면서 "대전 학생 평균키 1cm 향상 프로젝트, 아이들의 숨은 키를 찾아드리겠습니다'고 약속한 바 있다.
김 의원은 "내 아이의 키가 조금이라도 더 컸으면 하는 것은 대부분의 부모 마음일 것"이라며 "아이들의 건강하고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키와 관련된 부분을 공공에서 지원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례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학부모·교육·시민단체들은 "성장판 검사를 한다고 해서 키가 크는 것도 아니며, 시의회가 외모에 따른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조례안 부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김영삼 의원이 발의한 성장판 검사 지원 조례는 학생들의 키가 크고 작음을 기준으로 '정상성'을 규정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와 단체는 "생활습관, 영양상태, 체육활동 등 학생건강과 신체 성장의 주요 요소들은 무시한 채 '성장판 검사' 항목만을 지원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이 막대한 혈세만 낭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자기 자녀 키가 크길 바라는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해결법이 공공이 나서서 성장판 검사를 일반화하고, 성장호르몬 주사를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정치인이 할 역할은 주변 상황 때문에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기 어렵고, 지나친 경쟁 위주의 사회에서 건강한 신체활동을 하기 어려운 학생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전시의회는 김 의원이 대표발의한 조례안을 '대전광역시교육청 학생 건강 지원 조례안'으로 수정하라"고 제안했다. 이들은 "조례의 목적을 전반적인 학생 건강으로 확대하고, 지원 내용도 학생들에게 건강한 급식 제공, 정신적·신체적 진료 지원, 체육활동 지원 등 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도록 하는 조례로 변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회·교육청이 키 작은 아이들에게 모욕감·피해 주는 것일 수도"
이날 발언엔 나선 김영주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대전학부모회 대표는 "개인별 맞춤도 아닌 획일적인 방식으로 성장판 검사를 지원한다는 것은 효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의회와 교육청이 나서서 키 작은 아이들에게 모욕감과 피해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며 "일회성 성장판 검사를 했다고 해서 아이들의 키가 자라는 것은 아니다. 검사 이후 후속 대책도 없는 이런 조례안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희 전교조대전지부장도 "이 조례안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키가 커야 바람직하다는 편견과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 학생의 키는 학생의 건강과 성장의 속도를 나타내는 무수한 지표 중에 하나일 뿐인데, 학생의 건강과 직결되지도 않은 성인 예측 신장 자료 확보를 위해서 교육청이 나서서 전수조사를 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타당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 대표로 발언에 나선 정구철씨는 "신체적 특징이나 외모가 삶의 질을 결정하거나 남을 판단하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육해야 할 학교가 키 성장이라는 목표를 표방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예산지원을 하는 조례는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라며 조례안 폐기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대전시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해당 조례안 입법예고에 반대 의사를 밝힌 시민들의 댓글을 릴레이로 낭독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보통 대전시의회 입법예고 조회수는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으나, 해당 조례안 입법예고는 단 4일 만에 조회수 2700회를 넘어섰다. 의견을 남긴 댓글도 180여 개를 넘었다. 이들 대부분은 조례안에 반대하는 내용이다.
한편, 해당 조례안은 오는 20일 열리는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 상정되어 심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