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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9일 정부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범사회부처 협업 전략'을 발표했다. 인구·소득 등 데이터를 연계하고 범부처 정책 협력을 통해 취약계층 발굴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8월에 발생했던 비극적인 수원 세모녀 사건을 방지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수원 세모녀 사망 사건은 과거 송파 세모녀 사건과 마찬가지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극심한 생계난을 견디지 못해 벌어진 비극이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 지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복지혜택이 비껴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빚'의 지독함이다. 수원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화성시였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전입신고를 할 수 없었던 사정이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로 내몰았다.

매일 걸려 오는 빚 독촉 전화, 빚 독촉 방문, 월급 압류와 살림살이 압류, 우편함을 가득 채운 압류 통지서들. 이러한 추심의 공포를 피해 복지의 사각지대로 숨어버리게 된다.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불법 추심만이 문제가 아니다. 채권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채권 회수 절차들은 빚돌력막기조차 막혀버린 다중채무자들에게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20여 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유지하는 원인으로 빚의 위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려줘야 한다며, 사금융을 제도화해 빚내기 쉬운 환경으로 만들었다. 정작 저소득층은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 이렇게 빚을 갚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부채 상환을 회피하는, 도덕적 해이가 아닌가 하는 불편한 시선이 덮친다.  

이 가운데 채무 상환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나 제도 개선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채무자들의 고통을 취재하는 것보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불편한 금융사의 입장을 전달하는데 더 열심인 언론들이 부정 여론을 크게 키운다. 

연체 채권 헐값에 파는 금융사는 피해자?

지난해 정부가 소상공인 취약차주들을 위해 새출발기금 대책을 내놓았다. 새출발기금에 대한 언론보도 방향은 금융사의 거센 반발을 대변한다. 쏟아지는 기사 제목만 봐도 금융권의 반발을 짐작할 수 있다. '빚 최대 90% 탕감, 새출발기금 도덕적 해이 논란', '이자 잘 갚으면 바보되나', '은행권 금융시장 왜곡', '2금융권, 새출발기금 대상 제한해야, 일부러 연체 늘릴 수도' 등의 기사 제목이 도배된다.

제목만 봐도 화가 난다. 게다가 기사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고의로 빚을 연체해 채무조정을 신청할 우려'를 제기한다. 금융권은 앉아서 도둑질당하는 것처럼 피해자로 묘사하고 채무자들은 정부의 선의에 기대 도둑질하고 도망가는 사람처럼 부도덕하게 묘사된다.

취약계층 채무자들을 구제하겠다고 하는데 금융사들의 속내를 반영한 언론기사에 달린 댓글들조차 부정적이다.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과 함께 정부가 세금을 들여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노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금융정책 당국은 한발 물러서는 수정 정책안을 발표한다. 원금 감면 심사를 강화하거나 채권을 매입할 때 금융권과 충분히 조율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금융사들의 부도덕한 맨얼굴이 숨겨진다.

부실채권은 이미 금융사들이 헐값에 매도 처리하고 있다. 헐값에 매도하기 전 금융사는 채권자로서 채권 회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빚 독촉 전화, 월급 압류, 자산 압류, 살림살이 압류, 자산 경매 처분 등의 채권자의 모든 법적 권리를 행사한다. 그럼에도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그 모든 채권 회수를 위한 법적 조치에도 상환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이다. 갚을 능력이 됨에도 고의로 상환을 회피하는 일은 소액의 대출로 급전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왜 감당하지 못할 돈을 빌리게 되었는가이다. 이 또한 대부업법까지 만들어 저소득층들이 돈을 빌리기 쉬운 환경을 만든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출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신용 저소득층에게 금융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상환 여력이 없었던 사람들이 돌려막기를 해서라도 갚으려 안간힘을 쓰고 난 뒤 연체가 시작되면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채권자인 금융회사의 책임은 아무도 따져 묻지 않는다. 

금융사행복기금의 부활

최선을 다해 추심했음에도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을 금융회사들은 헐값에 매각한다. 여기서 금융회사들이 일부 손실을 보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채무조정프로그램은 금융회사들이 매각하는 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채무조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채권 추심회사들에 추심 위탁을 하기 때문에 채무자 입장에서는 채무조정보다는 추심 압박에 가깝다.

이렇게 채무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추심을 하고 나면 초과 회수이익이 발생한다. 이 회수이익을 어떻게 쓰느냐를 결정하는데 금융사들의 여론전이 영향을 미친다. 금융사의 반발로 언론에서 쏟아지는 부정 여론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결국 채무조정프로그램을 통한 이익을 금융사에 나눠주게 된다.

현 정부의 새출발기금같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민행복기금을 운영했다. 2013년에 주식회사 형태로 출발한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정부 핵심 공약으로 300만 명 넘는 신용유의자를 구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국민행복기금은 금융사들의 부실채권을 평균 5.5%에 매입해 추심을 한뒤 금융사에 2016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4599억 이상의 배당금을 안겨주었다. 사실상의 금융사행복기금이었던 셈이다. 이를 바로잡은 것은 문재인 정부였다. 주식회사 국민행복기금의 현금 흐름이 좋은 채권 일부를 한국자산관리공사로 매각해 배당을 중단하고 채무조정을 통해 초과 회수된 이익을 서민금융재원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금융사들이 부실채권을 헐값에 매각하는 것은 금융사의 일상적인 부실채권 처리관행이며, 그에 따른 손실은 금융사의 몫이다. 따라서 정부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초고 회수된 이익을 금융사에 배당하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바로 이를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새출발기금은 다시 과거로 회귀했다. 시작부터 금융회사에 백기를 들고 금융회사의 손실을 대신 끌어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정부의 새출발기금에 관한 운영계획서에는 금융회사의 손실을 정부가 전부 보전해 준다고 전제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과 현 정부의 새출발기금은 겉으로는 취약차주들을 위한 채무조정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금융사들이 회수하지 못한 부실채권을 대신 추심해 주고 이익을 보전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선진국의 채무조정제도

언론은 채무자만 나무라고 정부는 손실을 보전해 주는 금융환경에서 금융사들은 채무자보호와 부실 관리의 책임에 대해 무심하다. 그러나 선진국은 전혀 다르다. 사적 채무조정을 법 제도와 함으로써 채무자를 보호함과 동시에 부실채권이 발생할 경우 헐값에 매각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가령 영국은 소비자신용법(Consumer Credit Act)을 통해 연체 발생 시 처리절차, 분쟁해결절차 등을 법으로 규율하고 있고, 호주에서는 소비자신용법(National Consumer Credit Act)에 채무조정(Credit hardship variation)이라는 제도를 명시함으로써 사적 채무조정이 법적으로 강제된다. 

채무조정이란 빚이 지나치게 많아 갚을 수 없는 경우 채무자가 금융사에 'Hardship variation'이라는 문서를 제출할 수 있다. 채무자가 이러한 문서를 제출할 경우 채권자는 반드시 채무자의 상태를 살펴 상환기간을 유예하거나 상환금액을 조정해 주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독기관은 면허취소, 벌금 등의 처분을 할 수 있다. 

선진국들이 금융권에 강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과 비교할 때 대한민국은 금융사에 천국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새출발기금#도덕적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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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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