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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중인 KDB 산업은행 본사의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정치권 뿐 아니라 금융과 경제 전반에 걸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산업은행 이전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짚어봅니다. 불법적인 강행 추진의 배경과 쟁점, 부산 현지 취재와 전문가 등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말]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 권우성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가면 정책금융 기능도 저하될 거고, 그렇게 되면 기업체들이 굉장히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목적이 뭐냐. 딱 한 가지, '표' 밖에 없어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30여 분 정도 흘렀을까. 자연스레 KDB 산업은행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였다. 원래 자신의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였지만, 살짝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취재진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정치적'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내년 선거를 의식한 '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동걸 전 KDB 산업은행 회장.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박사를 땄다. 전공이 금융경제학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을 비롯해 국책연구기관을 거쳐 노무현 정부 때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5년여 산은을 이끌었다. 2020년 9월, 산은 26년만에 재임에 성공한 은행장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스스로 은행을 떠났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그에 맞게 (공기업 수장은) 바뀌는 게 맞다"고 했다. 

그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사실 지난 정부에서 금융 정책이나 기업 구조조정 등의 과정에서 그는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원칙' 때문이었다. 그에겐 당연했지만, 정치권과 시장의 관행은 달랐다. 산은 부산 이전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그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부산 지역 의원들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은행에도, 기업에도, 심지어 부산에도 아무런 실익이 없다는 것. 그는 실제 자신의 경험담을 건넸다. 이 전 회장은 "과거 LG화학이 매출의 반 이상을 2차전지, 배터리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자금을 요청해 왔다"면서 "우리가(산은) 5조 원을 지원했는데, 아마 100번은 서로 만났던 것 같다. 수조 원의 돈이 나가는데,  만나서 협의해야 한다. 그런 작업을 부산에서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노무현 정부 시절 선물거래소의 부산 이전을 두고서도, 차라리 전문 금융인력 양성을 위해 연구소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털어놨다. 이 전 회장은 "부산 쪽에선 '(산은이 오면) 기업이 올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좋은 인력이 많이 생겨야 좋은 회사들이 간다.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지역 균형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라고도 했다. 

현 정부의 경제운용에 대해서도, 그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철학과 비전의 부재'라고 했다. 이어 "그냥 엠비(MB) 정권의 환생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 전 회장은 "방향성을 모르겠다. 보이는 건 감세와 말도 안 되는 규제 완화뿐"이라며 "보수 언론도 구체적인 정책이 안 보인다고 하지않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라면값이나 때리고, 금리 인하 하라고 협박하고, 그게 무슨 자유시장 경제인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와의 대화는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연구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 권우성
 

"MB의 환생, 비전도 방향성도 안 보여"

- 산은 회장에서 물러난 지 1년 지났다. 그동안 여러 정부에 걸쳐 금융정책 수립·집행에 참여했는데,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 운용·방향에 대해 평가한다면. 

"이 정부는 비전이 무엇인지, 방향성을 모르겠다. 보이는 건 감세와 말도 안 되는 규제 완화뿐이다. 완전 MB의 환생이다. 보수 언론도 구체적인 정책이 안 보인다고 비판하지 않나. 감세는 사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경기 부양 효과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차라리 MB 때처럼 돈 있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아야 낙수효과가 있다고 하든지, 그 얘기는 무서워서 못 한다. 이 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건 대산업 전환에 어떻게 빨리 정착하고 발전시키느냐다. 그 부분에 대해선 별로 안 보인다."

- 미래 먹거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보인다. 

"원전을 다시 한다고 하지 않나. 말도 안 된다. 새 산업을 육성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미래 먹거리 문제일 수도, 우리의 생존 문제일 수도 있다.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차근차근 지속해야 할 문제는 지금 전부 등한시하지 않나. 일부 뜻있는 기업을 제외하면, 기업은 본질적으로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다. 올해 이익, 내년 이익만 따지고 장기 투자는 미룰 수밖에 없다. 그걸 독려하고 지원하고, 밀고 나가는 게 정부다. 

지금처럼이면 우리가 어떻게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나. 제일 무서운 게 탄소 비용에 맞춰 국경을 조정하겠다는 것 아닌가. 중장기적인 기조는 없고, 라면값이나 때리고, 금리 인하하라고 협박하고, 그게 무슨 자유시장 경제인가."

- 최근 산은이 삼일PwC에 의뢰해 금융경쟁력 확보를 위한 부산 이전 타당성을 검토했다. 정부 이전 방침에 긍정적이라고 했는데. 

"산은이 좋아서 의뢰했겠나? (윗선에서) 하라고 하니 한 거다. 이미 결론이 나 있는 보고서를 산은이 낸 건데, 굉장히 비겁하다고 본다. 구색만 맞춰서 1안, 2안 다 사전에 조율했을 테고, 욕먹기 싫으니 산업은행에서 주도적으로 했다는 식으로 보이려고 그런 모양새를 갖춘 거다.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인 선택이다. 왜곡된 정치적 작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산은의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이유는. 

"저는 아직 정책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책 기능을 어떻게 최대화할 것인가, 더불어 금융 발전에 어떻게 도움 되는 방향으로 할 건가,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산은 아니다. 부산이 금융 특화로는 발전할 수가 없다. 서울에 있어도 발전이 잘 안 되는데..."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 권우성
 
"조 단위 대출, 서류만 보고 되겠나...목적은 '표'밖에 없어"

- 산은 노조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80%가 '거래처에서도 이전을 반대한다' 했다고 한다.

"산은은 중소기업·대기업을 상대로 1000억 원, 1~5조 원 이런 규모로 대출해준다. 과거 LG화학이 매출의 반 이상을 배터리로 전환하겠다고 자금을 요청해 5조 원 지원했다. LG에서 고마워하는 게, 그 돈으로 충분하진 않지만 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 굉장히 도움 된다. 그게 산업금융협력자금 1호였다. 이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관련으로 30억달러(약 3조8000억 원) 지원하고, 기후변화 관련 지원도 했다. LS전선 풍력발전에도 1조 원 지원했다. 

이런 거 하려면 LG화학이나 SK하이닉스와 몇 번 만나야 할까. 서류는 수도 없고, 대면은 100번을 했다. 조 단위로 돈이 나가는데, 서류만 보고 되겠나. 만나서 협의해야 한다. 그 작업을 부산에서 한다? 말이 안 된다. 온라인으로 협의한다고 해도 적어도 10여 회, 20여 회는 만나야 한다."

- 협의를 위해 부산과 수도권을 오가는 건 비효율적이다. 

"부산 쪽에선 '그럼 기업이 오겠네'라고 하는데, 안 간다.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정책금융기관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화할지 산업 발전, 금융 발전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아니면 만약 정책금융기관이 필요하지 않다면 차라리 민영화해야 한다. 뭐 하러 자꾸 건드리나. 부산 이전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목적은 딱 한 가지, 표밖에 없다. 굉장히 정치적인 선택이다."

- 이미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일부 금융 공기업이 부산으로 이전했는데, 아직도 많은 직원이 서울로 주말부부를 하며 주거와 업무 등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부산을 금융특화중심지로 만들겠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제가 금감위 부위원장을 맡을 때, 선물거래소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있었다. 저는 실익이 없다고 반대했다. 그때는 선물회사라는 게 따로 있었다. 전산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는데, 어차피 전부 서울에서 거래한다. 나중에 보니 선물회사들이 오피스텔 하나 얻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다 서울에서 거래했다. 안 내려간다."
 
 정부가 KDB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을 강행하면서, 산은 내부직원 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KDB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을 강행하면서, 산은 내부직원 뿐 아니라 금융권 전반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김종철
 
-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그래서 당시 제가 부산에 제안했다. 증권회사와 선물거래소에서 매년 회비를 거둬 대한민국 최고의 선물거래연구소를 만들겠다고 한 거다. 박사 50명쯤 채용해 지역 대학과 연계해 놓으면 그게 나중에 다 보석이 된다. 그게 진짜 금융 발전의 하나의 원동력이 되는 거다. 박사들 요새 취직이 잘 안 된다. 그런데 (부산은) 그거 필요 없다고 했다. 좋은 인력들이 많이 생겨야 좋은 회사들이 간다. 단순히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한들 지역 균형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 산은 회장을 4년 넘게 지내면서 다른 금융기관과 달리 정책금융기관으로서 경험한 것들이 많을 텐데, 상징적인 사건이나 경영성과 등을 말씀해 준다면.

"처음 들어갔을 땐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다.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면 당기순손실이 나면서 적립금을 까먹게 된다. 적립금이 제로가 된 상태에서 자본금을 1원이라도 더 쓰면 자본잠식에 들어간다. 완전 자본잠식에 들어가면 은행은 끝이다. 그런데 5~7조 원을 다 까먹고 버텼다고 한다. 그걸 다시 5조 원 적립할 정도로 채우느라 애 많이 썼다. 정부 돈 받은 건 없다.

산은 가서 비용-이익 얘기를 많이 했다. 공적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할 때는, 예를 들어 산은 손실이 100원이고, 나중에 70원 이득을 보더라도, 민간에 50원의 이익이 돌아오면 국가 차원에서 120원 이익이니 하자는 것이다. 욕먹더라도 과감하게 구조조정 하자는 얘기다."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이동걸 전 산업은행장. ⓒ 권우성
 
"구조조정이 산은 손실? 국익 차원서 봐야"

- 산은 구조조정에 대해선 항상 '혈세 투입' 등 비판이 뒤따른다. 

"취임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 산은이 15조 원의 손실을 봤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자꾸만 비판하니 힘들었다. 구조조정은 부작용이 있어도 빨리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도 그간 성과는 많았다. 대우조선해양은 합병에 실패했지만 한화에 팔았고,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도 협의 과정에 있다."

- 대우조선해양 관련으로 아쉬움도 크겠다. 

"대우조선해양 합병 추진 배경은, 우리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전 세계 1~3등 업체를 모두 가진 게 말이 되나. 공부도 하고, 사람들 얘기도 들어 상황 파악을 해보니, 1~3등끼리 싸우면서 덤핑하는 게 문제였다. 선주들이 현대중공업도 부르고, 대우조선해양도 부르고, 삼성중공업도 부르면 뱃값이 10~15% 깎인다는 거다. 3사의 1년 매출이 최소 5조 원 이상이다. 매년 5000억 원이나 손실 나는 거다. 이런 시장구조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대한민국 피 빨아 외국 선주들 좋아할 일을 하나. 공정위원회가 제동을 걸어 끝이 나긴 했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와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했는데, 합병하더라도 계속 지원할 거라고 얘기했다."

- 대한항공-아시아나가 합병하면 독과점 시장이 된다는 지적도 있는데. 

"외항사들도 취항하면 된다. 이익이 안 나니 안 하는 거다. 독과점을 전혀 비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국제적 경쟁도 봐야 한다. (국내에서 취항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는 원래 비싸다. 그럼 외국 항공을 더 열어주면 된다. 사실은 경쟁이 있는 노선인데, 왜곡돼 그런 것이지 합병 문제는 아니다. 외국에선 괜히 시비 거는 거다. 국익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는데, 합병의 이익을 취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독과점 폐해를 컨트롤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다면. 

"산은 회장은 정권이 바뀌면 관행적으로 사임하게 돼 있다. 방법이 있다면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국토교통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산은 회장까지 해서 독립적인 '금융경제산업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장기간 일하게 할 수 있다. 독일의 개발은행이 여러 자회사를 두고 그런 식으로 운영한다. 회장이 15년이나 재임하고 있다. 여야가 국가 경제 차원에서 중립적으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이 크게 변화하지 않게 정치적으로 타협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기후 금융을 하려면 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많은 기관이 같이 참여해 중장기 투자에 나서야 한다. 그런 얘기는 많이 했다. 정말 중요하다. 사실 산은도 신용보증기금 등을 가지고,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관련기사] 
- [기획①] 국힘 입당 전후, 180도 달라진 윤석열 대통령의 '이 말'  https://omn.kr/24zdt
- [기획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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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③]
대통령과 강석훈 산은 회장, 그 장면이 참 위험했던 이유 https://omn.kr/2520z

#이동걸#산업은행#산은#윤석열#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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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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